[정진경 칼럼]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정진경 칼럼] 조선의 딸, 총을 들다
  • 정진경 사회심리학자
  • 승인 2019.03.05 06:55
  • 수정 2019-03-05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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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딸, 총을 들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의병 고애신이 연상되는 이 제목은 실제로 일본침략에 맞서 싸운 24인의 여성 독립투사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의 제목이다(정운현 저). 초등학교에서 항일투쟁에 대해 배울 때, 남자는 김구, 안창호 선생님, 이준 열사,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 훌륭한 분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여자는 왜 ‘선생님, 열사, 의사’가 없는지 궁금했다. 분명히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가 태극기를 들고 뛰쳐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고 배웠는데, 여자는 왜 유관순 ‘누나’ 밖에 없을까. 그리고 나에겐 ‘언니’인데 하고 생각했었다.

올해는 3.1 혁명과 임시정부 100주년. 그 의미를 새겨 여성 독립투쟁사를 조금 공부해보니, 수많은 여성 독립투사가 있었음에 놀라고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동하여, 여태 그분들의 이름도 모르고 지낸 것이 죄스럽기까지 하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는 이분들의 장렬한 활약상을 담고 있다. 어린 여학생에서 노인까지, 양반집 안주인에서 천민이던 기생까지 각계각층의 수많은 여성들이 독립투쟁에 참여했고, 그 활약은 모든 분야에 걸쳐있다. 양반집 막내딸로 유복하게 태어난 남자현은 평생을 무장투쟁에 바쳤는데, 61세에 권총과 폭탄을 지니고 하얼빈에서 일본군 육군대장을 처단하려다 체포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숨을 거두었다. 그 외에도 무장투쟁에 참여한 이들은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일본왕궁을 폭격하려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된 권기옥, 순사와 친일파를 암살한 ‘대한독립청년단’의 지도자 조신성, 조선의용군으로 최전선에서 활약한 김명시 장군, 광복군의 오광심, 조선의용대의 이화림과 박차정을 비롯한 여성 대원들 등 다수가 있다.

수원 3.1 혁명을 주도한 김향화와 전국 각지의 기생들도 사회에서는 천대받는 신분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떨쳐 일어나 독립만세를 외쳤다. 함경북도 명천의 동풍신을 비롯한 전국의 수많은 어린 여학생들도 만세시위에 주역으로 나섰다. 부인들은 반찬 가짓수를 줄이자는 부인감찬회, 가락지를 빼자는 국채보상탈환회, 패물폐지부인회 등을 조직하여 나라 빚을 갚으려 노력했다. 독립투쟁을 하는 아버지, 남편, 아들과 함께 활약한 여성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집안의 재산을 털어 임시정부와 의병활동에 자금을 보내고, 정보수집과 조직화, 비밀문서와 무기운반을 담당하고, 임정의 어려운 살림을 도맡아 운영하고, 남겨진 부모와 자식을 돌보는 등, 이들의 간난고초는 끝이 없었다.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들도 독립투쟁의 주역으로 나섰다. 일본과 미국에 유학했던 김마리아는 김정화, 나혜석 등과 함께 여성 항일단체를 만들고 2.8 독립선언에 참여하면서부터 항일투쟁을 하다, 광복 1년 전 53세에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지조, 항일투쟁의 내용과 공적, 그 무엇으로 보나 ‘선생님’으로 불렀어야 마땅한 분이다.

이런 영웅들의 넘치는 이야기를 왜 우리는 역사 시간에 배우지 못했을까. 이걸 배웠더라면 우리의 역사수업은 얼마나 감동이 있었을까. 정부가 훈·포상을 수여한 여성 독립유공자는 2018년 298명이다. 전체 독립유공자의 2% 밖에 되지 않는다. 위 책의 저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항일투쟁의 공적이 묻히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현실을 비판하면서, 이제라도 학계와 보훈당국이 적극적으로 여성 독립투사들의 공적을 발굴하고, 그 이름을 역사에 기록하고, 포상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나라의 독립과 존엄을 유지하려면 역사부터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선조들의 희생 위에 세운 나라에서 나는 분단상태나마 평화기에 태어나 독립한 민주국가에서 자유롭게 우리말을 쓰며 살고 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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