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기관지서 기사 발견
국사학자 장도빈의 부인
유족이 서훈 신청 안 해 공훈 없어

독립운동가 김숙자
독립운동가 김숙자(KBS 3.1절 특집 다큐 캡처)

“평안북도 영변경찰서에서는 요사이 정치범을 검거하든 중 참으로 조선독립운동의 여성의 거괴를 검거하였는데 이 여자는 원래 경성 누하동에서 사는 김숙자라 하는 여자로 금년이십세 된 터인데 일찍이 상당한 지식도 닦았으며 또한 신교에 열심하는 터인데…”

독립자금을 모으다 검거된 교육자 김숙자(1894∼1979)의 검거 소식을 알리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기사가 최근 발견됐다.

1921년 6월 24일자 매일신보에는 ‘여자 정치범 검거, 독립운동의 거괴 김숙자’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거괴’란 ‘우두머리’를 뜻한다.

김숙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절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탑골공원에서 독립을 요구했고, 이후 영변으로 돌아와 교사로 근무하다 1920년 언론인이자 국사학자인 장도빈과 결혼했다. 장도빈은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김숙자는 덜 알려져 있다. 김숙자의 부친은 광복군 사건으로 투옥 생활을 했고, 동생 김응원은 임시정부 국내 조직인 연통제의 책임자로 활약하고 의열단에서 활동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이 신문은 영변군 숭덕학교 교사인 김숙자가 “평양 선교사와 의논해 강화회의에 제출할 조선 부인 1만명 연명서와 취지서 짓기를 맡았다면서 “그의 끓는 피와 더운 정신으로 글을 짓고, 그 뒤에는 동지와 연락해 재무부장·통신부장이라는 명목을 만들고 스스로 회장이 됐다”고 설명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1921년 6월 24일자 기사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1921년 6월 24일자 기사

 

그러면서 “거액의 돈을 모집해 평양 선교사 모씨에게 주었던 바, 그 선교사는 그간에 또한 정치범으로 검거돼 지금 옥중에서 신음하는 중”이라며 “김숙자는 오히려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자못 암중비약을 계속하다 경찰에 검거됐다”고 덧붙였다.

석방 후에는 다시 교편을 잡으면서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김숙자의 3·1운동 이후 행적은 대한애국부인회 평안남북도 조직 책임을 맡고 회원들과 군자금을 모으다 발각돼 1921년 구속됐다는 정도만 알려졌으나, 이 기사를 통해 그가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했음이 확인됐다.

신문 기사를 찾아낸 박환 수원대 교수는 “이번 자료는 여성 항일운동 네트워크를 찾는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사를 통해 대한애국부인회 평북지부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드러났기에 앞으로 평북 지역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교수는 “김숙자의 후손이 서훈 신청을 하지 않아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지 않았다. 정부가 여성 발굴을 말로만 강조할 게 아니라 매일신보같은 중요한 자료부터 기초적인 조사를 실천조사하는 진지한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