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여자

입방정이 늘 말썽이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꼭 말로 표현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16년 전 처음 분가해서 아파트에서 살 때 이웃에 5∼6살 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와 복도에서 자주 마주쳤다. 언제나 희한한 복장과 말투로 휘젓고 돌아다녀 꼬마타잔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촌스런 분홍색 어른잠옷을 몸에 두르고 힐을 끌며 다녔다. 괴성을 지르며 복도를 기어다니기도 하고 구르기도 했다.

“얘~, 몇 살이니?” 아이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친구 삼아 볼 요량으로 물었다. “남이사, 몇 살이든 당신이 알아서 뭐 하려고 그래?” 당돌하게 대들어 식은땀이 흘렀다. “어머머? 너 어디 사니?” 굉장히 도전적인 대답에 매번 기가 질렸다. “남이사! 몇 호에 살든,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말든! 당신이 뭔데 참견이슈!? 내참!” 대단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대꾸하는 모양인데 환상적인 그 응용력에 놀랬다. 여러 번 강력펀치를 먹고 나서 아는 체 하는 걸 한동안 포기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른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꼬마타잔을 만났다. 중년의 신사와 함께 탔는데 어인 일로 그 아이가 얌전히 있기에 말 한마디 건네다 결국 또 봉변을 당했다.

“이쁘네? 유치원 가니?” “흥∼. 남이사 유치원을 가든 말든!아침부터 재수 없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옆에 있던 젊잖아 보이는 신사한테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아저씨! 이 꼬마 알아요? 뉘 집 아인 지, 버릇이 너무 없어요. 하하하.” 계속 툴툴거리며 몇 마디를 더 했고, 꼬마아이는 계속 혼자 ‘하∼참! 기가 막혀서’하면서 중얼거리다가 내렸다.

“아빠∼ 같이 가!” “아빠???” 얼굴이 갑자기 화끈거렸다. 40중반은 더 넘어 보이는 그 남자의 아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런 실례를 세월이 지난 지금 용인에서도 심심찮게 하니 내 입방정을 어찌할까.

‘어~ 난 저 아줌마, 아니 저 회장님 너무 싫어’하는 말과 ‘저분은 너무 좋아!’ 묻지도 않는데 떠들어대 상대방을 민망하게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상대방이 못마땅하다고 말하면 그저 그런가, 하고 가만있지 못하고 ‘나는 이러저러 좋다’고 떠들어댄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안 그래요?’ 하면서 동의까지 구하니 밉상일 게다.

가족이거나 부부사이인줄도 모르고 좋다느니, 싫다느니 하다가 벼락도 맞고 친구지간인줄도 모르고 마음속을 드러내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 대도시와는 달리 용인의 울타리에서 얽히고 설킨 사람관계를 잘 모르는 데다 얼굴기억까지 못하니 옆에서 누가 알려 줘도 그 때뿐이다. ‘어쩜 이리도 모르는 게 많아’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에구∼ 학원이라도 다녀! 과외수업을 받든지!!”

오늘도 이 소리를 듣고 들어와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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