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장세용 구미시장
대학 교수 출신 사회운동가
경북 기초단체 중 유일한
진보 진영 소속 단체장

주민 평균 37세 ‘젊은 구미’
지난달 여성친화도시 재지정
대중교통·공립 유치원 늘리고
남성들 성평등 인식 개선 나서
보수적 산업 도시 편견 깨고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장세용 구미시장은 “소리 없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진보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싶다”면서 “반대 편을 잘 설득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구미시
장세용 구미시장은 “소리 없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진보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싶다”면서 “반대 편을 잘 설득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구미시

보수 텃밭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가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선언했다. 지난 2월 20일 여성친화도시 재지정 현판식을 가졌다. 장세용(65) 구미시장은 “이번 여성친화도시 재지정은 민·관이 협력해 함께 이뤄낸 성과”라며 “이번 재지정을 발판삼아 앞으로 여성들이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부담이 아닌 행복이 되는, 여성친화도시로 거듭나 시민 모두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도시 브랜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구미시는 ‘젊은 도시’다. 시민 평균 연령이 37세로 30대 이하 인구가 인구의 55%다. 우리나라 인구 전체 평균 연령인 42세보다 5세 가량 젊다. 젊은 도시의 특성상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동안 구미시는 ‘생산’ 인프라 확보에만 관심을 쏟다보니 지역주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때문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유일한 더불어민주당 단체장인 장 시장의 당선은 변화를 바라는 청년 지역주민들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안전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요구는 성평등 확산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산업 도시 이미지를 지닌 구미시가 여성친화도시 조성 사업에 적극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구미시는 지난 5년 간 CCTV 확충, 택시 안심귀가 서비스, 무인택배함 설치 등 범죄로 부터 안전한 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유엔여성(UN Women)의 성평등 캠페인 ‘히포시(HeForShe)’에 구미시청 남성 공무원 80여명이 참여하며 성평등 인식 개선을 약속했다. 장 시장은 국장 5명 중 안전행정국장, 복지환경국장 두 자리에 여성을 임명하며 여성 대표성 확대에 힘을 보탰다.

장세용 구미시장 ©구미시
장세용 구미시장 ©구미시

자유한국당 일색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던 구미시가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또 다른 배경에는 장기 불황이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는 삼성전자와 LG레이 분야 생산라인을 파주로 이전하고,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생산시설을 베트남으로 옮겼다. 대기업 이탈은 곧바로 지역 경제 불황으로 이어졌다. 구미산단 수출 비중은 2005년 국내 전체의 10.7%에서 지난 5%로 하락 추세다. 고용 인원도 2015년 10만2240명에서2017년 9만5153명으로 줄고 있다.

장 시장을 만나기 위해 구미시청을 찾은 2월 21일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시에 투자의향서를 공식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와 SK하이닉스가 120조원을 투입해 조성하는 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인시 원삼면 일대(448만㎡)가 유력해졌다. 구미시가 사활을 걸었던 SK하이닉스 유치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장 시장은 “구미시가 정주 여건이 악화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해외와 타지로 떠나갔다”며 “기업 입장은 존중한다. 다만 SK를 유치하기 위해 준비를 못해놓은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제 회생을 위해서는 지역상생형 일자리가 절실하다는 게 장 시장의 판단이다. 장 시장은 “정부가 구미 경제 회생을 위해 지역상생형 일자리, 구미국가산단 특별지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등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의 꿈이 좌초되면서 구미시는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주 여건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 시장은 “구미의 대중교통은 시내버스가 유일한데 그 마저도 수송분담률이 20.9%에 그친다”며 “시민들의 이동 편의와 환경 문제를 생각해서 트램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통 문제 개선과 함께 국공립어린이집 확충으로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 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3월 중 민간어린이집 한 곳이 국공립으로 전환해 개원할 예정이다. 장 시장은 “여성들은 다양한 육아 복지를 요청하고 학교 진학 문제에 대해서도 요구가 많은데, 그동안 제대로 대처할 틈이 없었고, 구미가 외면적으로는 살기 괜찮은 도시라는 평판에 안주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은 무상급식, 무상교복 등 국가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복지를 즉각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세용 구미시장 ©구미시
장세용 구미시장 ©구미시

장 시장은 당선 초기 박 전 대통령의 추모제 참석 여부와 시청 새마을과 폐지 논란으로 보수 성향 단체들과 충돌했다. 취임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그는 “소리 없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진보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싶다”면서 “반대 편을 잘 설득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장 시장은 LG와 삼성이 떠나간 이유가 된 ‘조건’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대기업이 들어온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의 경제 틀로 돌아가 구미 경제의 부흥을 이끌기 어렵다”는 얘기다. 첨단IT 도시로서 인프라를 쌓는 동시에 도시재생을 통해 문화관광 자원을 마련, ‘기본이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게 장 시장이 내민 구미시의 청사진이다.

장기 불황을 겪고 있지만 구미의 힘은 여전히 우수한 산업 인프라와 인력이다. 50년 동안 축적된 산업기술 노하우와 420여개의 기업 부설 연구소 등 첨단 IT 산업 인프라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장 시장의 판단이다.

장 시장은 “시민들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지방자치,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는 도시가 돼야 한다. 생산하는 산업도시이자 예술을 누릴 수 있는 문화도시로 거듭나야 한다”며 “아직 마땅한 문화예술공연장이나 전시실 조차 없다”고 말했다. ‘기본이 없다’는 게 분석이다. 그는 “신사업의 동력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문화관광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 ‘기본이 있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 노력을 시민들도 알아주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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