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등단 50년 맞은 문정희 시인
"여성은 창조의 모태…김소월 한용운도 여성의 어조 있어"
"패거리 문화·편견 있는 한국사회서 정면 돌파"
"최영미 시인 승소? 당연한 귀결"

문정희 시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정희 시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시인에게는 여성성이 있어야 합니다. 인류 보편적인 여성성을 보면 자궁이 여성의 몸에 있잖아요. 창조의 모태잖아요. 김소월이나 한용운, 서정주 같은 시인의 시를 보면 여성의 어조가 담겨 있습니다.”

문정희(72)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년을 맞았다. 그는 “50년이라는 시간은 무의미하다”라면서도 “한국에서 한 여성이 이 땅에 살면서 시를 저버리지 않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50년 동안 쓸 수 있다는 한 가지는 의미가 있다”라고 돌아봤다.

“시는 나의 호흡이에요. 시를 쓰지 않고는 내 건강이나 숨을 유지할 수 없었어요. 시인을 좌절하게 하는 사건들은 많았어요. 힘든 시간과 상처 등이 시의 재료가 됐다는 점에서 내가 강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으로 고민해야 하는 건 창의력의 고갈이나 자기 자신의 문학성의 척박함이어야 했다. 하지만 문 시인이 정말 힘들게 한 건 패거리 문화와 편견이 팽배한 한국 사회와 한국 문단이었다. 그는 “다양한 걸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척박한 땅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힘든 점이 있었다”고 했다.

문정희 시인이 21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5차 윈문화포럼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정희 시인이 21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5차 윈문화포럼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 시인은 이런 현실을 ‘많이 쓰고 많이 읽으면서’ 정면 돌파해왔다. 그는 “어떤 작가도 비단 방석 위에서 쓰진 않았을 거다. 결과가 더디더라도 시 정신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쓴다는 것 자체가 내 삶의 전부이자 기쁨이어야 한다”고 했다.

문 시인은 서른 중반이던 1982년 미국 뉴욕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갔다. 이곳에서 다양한 예술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페미니즘 서적을 읽으면서 여성주의와 만났다. 문단의 평가는 각박했다. 문 시인은 “제가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써도 한국 문학사를 평가하는 사람들은 나를 ‘일부 여성 시 중에서 누가 잘 썼다’ 정도로 언급한다. 다른 여성 시인이 말한 것처럼 백인 중심의 평가를 해놓고 한편 흑인 중에는 누가 났다고 말한 것과 같다. 내가 여성 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다”라고 했다.

문 시인은 그러면서 성추행 의혹을 제기한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고은 시인이 최근 1심에서 패소한 것에 대해 짤막하게 말했다. “제가 최영미 시인께 준비 자료가 부족하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많다고 하더라. (최 시인의 승소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본다”라고 했다.

문정희 시인 약력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오라, 거짓사랑아』 등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목월문학상 등 수상 △현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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