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차 WIN문화포럼
문정희 시인 특강
'문학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문정희 시인이 21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5차 윈문화포럼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정희 시인이 21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5차 윈문화포럼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삶을 신선하고 품격 있게 살기 위해서는 매몰된 상투어나 일상어를 남발하면서 살면 안 됩니다. 현대인들의 모든 삶의 구조가 같아졌습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삶을 산다는 건 상당한 내공과 힘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문정희(72) 시인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5차 윈(WIN) 문화포럼’에서 ‘문학은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문학이 삶에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역사 속 여성 작가들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문 시인은 폴란드 여성 시인 비슬라봐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를 소개했다. 쉼보르스카가 1957년 발표한 이 시는 한번뿐인 인간의 삶을 노래한다. 이 시로 쉼보르스카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문 시인은 “우리가 인생을 한 번밖에 못 산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두 번은 없다’라고 한 표현은 굉장히 시적이다.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폴란드는 독일군의 침공과 유대인의 학살 등 극한의 삶을 겪은 나라인데 폴란드의 시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썼다”고 했다.

문 시인은 이어 일본 시인 이바리기 노리코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6.25전쟁을 겪고 빈곤과 고통에 쌓였을 때 일본 사람들은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여성 시인들과 이야기해보니 패전국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이바리기는 1957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시를 발표했다. 문 시인은 “단순한 서정적이나 낭만주의적 시가 아니라 (세계 제2차대전) 전후 세태의 일본의 정서를 나타낸 중요한 작품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시인이 윤동주에 대해, 식민지에 있는 대단한 청년 시인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말한 사람이다”이라고 했다.

문정희 시인이 21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5차 윈문화포럼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정희 시인이 21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 토파즈홀에서 열린 제45차 윈문화포럼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 시인은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휩쓴 ‘미투’(나도 말한다) 운동에 대해서 “세계적인 혁명”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여성들이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했다. 침묵은 금이라는 말도 있었다. 러시아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침묵으로 일관한 진실은 거짓’이라고 했다. 부당한 걸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다. 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의 70% 전후가 여성이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문 시인은 강조했다.

문 시인은 일제강점기 시절 시인 김명순(1896~1951)을 언급했다. 김명순은 1917년 동인지 『청춘』 공모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돼 21살에 등단한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여성작가 최초로 작품집 『생명의 과실』과 작품집 『애인의 선물』 등 두 권을 발간했다. 소설 20편, 시 79편, 수필 15편, 평론 3편, 희곡 3편, 번역시와 번역소설 3편 등의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진명여학교 시절 소위 이응준과 데이트를 하던 중 성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응준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오히려 김명순은 남성 동료 문인들에게 2차 성폭력에 시달렸다.

문 시인은 김명순의 생애를 추모하기 위해 2017년 곡시(哭詩)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를 발표했다. 그는 이 시를 읊으면서 특강을 마쳤다.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이하 생략)

윈문화포럼은 여성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으로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며, 격월로 명사를 초청해 포럼을 열고 있다. 서은경 윈문화포럼 상임대표의 인사말로 문을 연 이날 포럼은 유연선 회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키워드
#문정희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