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음악극 새집살이

‘새집살이’의 한 장면. ⓒ아슬란 극단
‘새집살이’의 한 장면. ⓒ아슬란 극단

2월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 강남구 선릉로 파인트리시어터에서 공연한 음악극 ‘새집살이’는 기혼여성이라면 공감할 ‘힐링드라마’로 홍보되었다. 연극은 세 친구의 삶을 통해 결혼생활의 질곡을 보여준다.

이들이 자기 심경을 담은 노래를 부를 때, 객석에서는 더러 눈물을 훔쳤다. 지은혜 연출이 작곡과 극본까지 도맡은 소극장 공연이지만, 배우들의 호연으로 몰입도가 높다. 코미디적 요소도 재미를 높인다. ‘82년생 김지영’ 이후 소규모 창작 음악극에서도 여성서사를 만나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논쟁의 지점들이 존재한다.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 극의 시선에 관습적인 ‘여성혐오’가 끼어있는데, 이는 여성작가라 할지라도 ‘여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상기시킨다. 또한 해방의 전망 없이 현실의 모순을 그리는 이른바 ‘빨래터 페미니즘’이 어떤 한계를 지니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세 친구는 나름 화려하다. 예중·예고를 나와 유학까지 마친 후 큰 무대에 섰던 은애, 서울대를 나와 교수를 하다가 청담동 개업의사 부인이 된 지영, 상위 1%의 연봉을 받는 남편과 음대교수 출신 시어머니를 믿고 둘째를 임신한 수지. 이들이 압구정 레스토랑에서 만나 서로 외모를 품평하고 SNS 허세를 비꼬며 대화를 이어간다.

‘새집살이’의 한 장면. ⓒ아슬란 극단
‘새집살이’의 한 장면. ⓒ아슬란 극단

극이 진행될수록 이들의 참상이 드러난다. 은애는 시부모와 함께 살며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집에서 음악작업을 한다. 그러나 며느리 일을 존중하지 않는 시어머니로 인해 자주 집중이 끊긴다. 여기에 친정엄마와 살고픈 애틋함이나, 남편의 철없음은 보편적인 여성들의 공감을 살만하다. 하지만 수지가 ‘임신이 벼슬’인양 시어머니에게 ‘갑질’을 한다는 설정은 뜬금없다. 저출산의 현실이 말해주듯,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은가.

지영이 남편에게 정신적인 학대를 당하는 광경은 충격적이지만, 없는 일은 아니다. 남편의 인격 파탄이 직업상의 자괴감 때문이라는 설정도 설명력을 높인다. 하지만 극이 현실의 질곡을 보여줄 뿐, 주체의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지영은 끝내 자기 의지가 아닌 운명에 의해 남편에게서 벗어난다. 그는 남편의 부동산과 정자를 물려받는데, 연극은 이를 마치 희망의 단초인양 그린다. 하지만 그의 미래가 뭘까. 유복자를 통해 자신의 공허한 삶을 보상받으려는 돈 많은 ‘미망인’이 아닐까. 그나마 은애가 일종의 ‘화병’을 지렛대삼아, 반지하 셋방으로 분가하는 결말은 실낱같은 희망처럼 읽힌다. 이는 은애만이 사회적 노동을 하는 여성이라는 점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새집살이’의 한 장면. ⓒ아슬란 극단
‘새집살이’의 한 장면. ⓒ아슬란 극단

이 연극의 주제는 뭘까. 기혼여성의 삶이 힘들어도 아이만이 행복을 주리라는 메시지가 극의 전반을 지배한다. 임신과 출산이 축복과 권력으로 제시되고, 불임이나 낙태가 불행이나 죄악으로 묘사된다. 낙태시술을 한 의사가 극심한 죄의식에 시달리는 대신, 시술받은 여성들을 도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모든 장르에서 더 많은 여성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환영할만하다. 아울러 더 활발한 논쟁이 뒤따라야 한다. 무릇,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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