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에버영코리아 정은성 대표
네이버 지도 블러링 등
콘텐츠 모니터링 업무
직원 평균 연령 63세
여성이 절반

청년 못지않게 IT 능숙한
시니어들 업무 성과도 우수
직원은 정년 걱정 없이
평생 직장 자긍심 갖고
파트너사 네이버도
위탁 업무 지속적으로 늘려

시니어 전문 IT회사 에버영 코리아의 정은성 대표이사
시니어 전문 IT회사 에버영코리아 정은성 대표

네이버가 제공하는 지도에는 ‘거리뷰’ 기능이 있다. 실제 거리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실사지도 서비스다. 거리뷰에선 행인 얼굴이나 자동차 번호판같은 사적인 부분은 모두 희미하게 지워져 있다. 이 블러링(뿌옇게 처리하는 것) 작업은 모두 평균 연령 63세 전문가들의 솜씨다. 에버영코리아에 소속된 이들은 5년째 이 일을 도맡고 있다.

에버영코리아는 정은성 대표가 지난 2013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회적기업”을 목표로 세운 정보통신(IT) 전문기업이다. 네이버 거리뷰 블러링 비롯해 네이버 동영상·이미지 콘텐츠 등을 모니터링해 부적절한 게시물을 걸러내는 일도 여기서 한다.

에버영코리아 구성원의 평균 연령은 63세로, 최고령자는 85세다. 출범 당시엔 55세 이상만 채용했지만 입사 연령 제한을 없앤 지금도 전체 직원 90% 이상이 시니어다. 이 가운데 여성이 절반 가량이다. 시니어 정보통신(IT) 전문기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다. 정 대표는 “나이 차별 없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입사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정년도 없앴다”며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갖줬지만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시니어들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이·성·학력 차별 없는 기업’을 꿈꾸며 에버영코리아를 창업한 정 대표는 원래 학계와 정치권에서 활동한 정책 전문가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컬럼비아대학교 국제관계학 석사, 뉴욕시티대학교 정치학 박사, 하버드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한국에 돌아와선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 정책연구위원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시절 5년간 청와대 통치사료비서관으로 일했다. 토스에듀케이션, 세로토닌문화 등을 창업해 사업가로 변신했고 2003년 용접전문기업 현대종합금속 사외이사로 인연을 맺은 뒤 현재는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에버영코리아 임직원 수는 400명을 넘는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63억원이다. 직원들이 건강에 맞춰 근무 시간을 4시간에서 6시간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해 매출 규모에 비해 임직원 수는 많은 편이다. 직원 대부분이 시니어다보니 복리후생도 남다르다. 컴퓨터 화면을 오랫동안 봐야 하는 업무 특성상 1년에 1회 안과 검진을 제공하고, 직원이 환갑·고희를 맞으면 경조금을 지급하고 손주가 태어나도 축하금을 준다. 직무 만족도가 높다보니 이직률은 5~6%대로 상대적으로 낮다. 정년이 따로 없는데다 시니어를 뽑는 IT 기업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입사 경쟁률도 높다. 입사 요건은 까다롭지 않지만 입사 지원자는 서류전형과 면접 외에 실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고, 신조어나 은어를 알아야 유해 영상물을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은성 에버영 코리아 대표이사(사진 윗줄)가 12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본사에서 (사진 왼쪽부터) 유소란 신사업개발팀장, 이운희 QC(Quality Control, 업무 품질관리), 이용무 총무팀장과 업무회의를 하고 있다.
정은성 에버영 코리아 대표이사(사진 왼쪽 두번째)가 12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본사에서 (사진 왼쪽부터) 이용무 총무팀장, 유소란 신사업개발팀장, 이운희 QC(Quality Control, 업무 품질관리)와 업무회의를 하고 있다.

네이버는 이전까지 중국에 맡겨 왔던 지도 거리뷰 블러링 작업을 사회공헌 차원에서 에버영코리아에 맡겼다. 정 대표는 “시니어가 업무에 숙련되기까지는 청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블러링 작업을 시작한 시니어들은 중국 청년들 못지 않은 생산성을 냈다”며 “일단 업무에 숙련된 시니어들은 일처리가 꼼꼼해 이후 네이버 이미지, 동영상 등 콘텐츠 모니터링도 추가로 위탁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창업 6년차를 맞은 올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에버영코리아의 가장 큰 화두다. 회사 설립 취지와 정관 모두 사회적기업이지만 정부 인증을 받지 않아 아무런 지원 없이도 매년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경쟁해야 하는 업종 특성상 새로운 사업 발굴은 필수불가결하다. 정 대표는 이미 에버영피플이라는 자회사를 세워 신사업을 20여개 구상해왔다. 그는 “올해는 새로운 사업을 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회적기업가이자 전문경영인으로 뛰는 정 대표는 최근 한국비콥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 몸이 세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지만 어렵사리 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세상을 위한 최고(best for the world)의 기업’이라는 비콥의 개념에 공감해서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B랩(B-LAB)’이 2007년 시작한 비콥은 사회적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수여하는 인증 마크다. 기업의 지배구조, 임직원, 고객, 지역사회와의 연계, 환경 등 5가지 분야에 대해 평가하기 때문에 인증 받기가 까다롭다. 미국 아이스크림 회사 벤앤제리(Ben&Jerry’s), 세계 최대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starter)’, 친환경 의류제품 업체 파타고니아(Patagonia), 국내 최대 카셰어링 기업 쏘카(Socar) 등이 비콥 인증을 받았다.

정 대표는 “크고 돈 많이 버는 기업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회적기업을 목표로 뛰어온 만큼 앞으로는 비콥위원회 활동을 통해 사회적기업 생태계 확산을 위해 힘껏 뛰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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