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켈리 클레멘츠 유엔난민기구(UNHCR) 부대표
25년간 난민·실향민 지원
UNHCR 여성 최고위직

아시아 최초 난민법 만들고
난민지위협약 가입한 한국
제주 예멘 난민 이슈 이후
무지·두려움·혐오 수면 위로

폭력 피해 한국 찾은 난민들
수용국 법질서 지켜야 한다는
사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여성 할례 등 ‘젠더 박해’도
난민 인정 사유에 포함해야

한국을 방문한 켈리 클레멘츠 유엔난민기구(UNHCR) 부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을 방문한 켈리 클레멘츠 유엔난민기구(UNHCR) 부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난민은 한국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을 찾은 켈리 클레멘츠(53) 유엔난민기구(UNHCR) 부대표는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민이 인도적인 구호나 보호의 대상 뿐 아니라 자산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난민 중 상당수는 전문직 종사자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난민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어 자신의 나라를 떠나 국경을 넘은 사람이나 분쟁 혹은 일반화된 폭력 사태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

지난해 난민은 한국에서도 뜨거운 이슈였다. 내전으로부터 피신한 500여명의 예멘 난민신청자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도는 무사증 제도를 통해 매년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받는 휴양섬이지만, 갑작스레 난민 신청이 늘자 난민이나 무슬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한국에선 파장이 일었다. 난민에 대한 무지와 낯설음은 두려움과 혐오를 낳았다. 그 사이 예멘이 2015년 시작된 내전으로 인구의 70%인 2000만명이 식량 부족 상태이며 자국을 떠난 이들이 19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는 이들이 섬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출도제한을 했고, 세 차례 심사를 통해 난민신청자 484명 중 2명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412명에 대해선 인도적 체류 허가를 결정했다.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를 지내다 2015년부터 UNHCR에서 일하고 있는 클레멘츠 부대표는 방한 기간 여성기업인 등을 만나 난민 문제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3년 전 한국을 찾았던 그는 “그동안 상황이 많이 변했다”면서 “(예멘 난민 이슈에) 한국 국민도 많이 놀랐지만 정부도 많이 놀란 것 같다. 다수의 난민이 도착한 것에 대해 정부의 준비가 미흡했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클레멘츠 대표는 난민에 대한 이해 부족이 결국 이들을 ‘테러리스트’나 ‘잠재적 성범죄자’로 간주하는 혐오정서로 연결됐다고 분석했다. 난민이 왜 예멘을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 한국에 일시도착한 이들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오해와 편견, 공포는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3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제주 예멘 난민 이슈로 논란이 거셌습니다. 유엔난민기구 차원에서는 이번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비교적 큰 규모의 난민 신청자가 제주도에 도착하면서 한국 국민과 정부 모두 놀란 것 같습니다. 다수의 난민에 대한 준비도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과 의정서 가입국인 한국은 난민 심사에 관한 튼튼한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난민 심사 관련 법적인 제언과 예멘 난민을 위한 물자를 제공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적극적으로 난민들을 지원하면서 물자 제공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412명은 벌써 직업 활동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커뮤니티도 형성되면서 이를 통해 초기에 있었던 난민 관련 우려가 많이 불식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난민 이슈가 성별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국가 출신 난민을 받아들이면 여성들이 성범죄 등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였는데요.

“난민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생겨난 오해와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에 도착한 난민들이 어떤 곳에서 왔는지, 왜 예멘을 떠나야 했는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생각으로 한국을 찾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예멘 내에 실향민이 200만명이 넘고 7만5000여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국민의 90%가 다른 국가나 단체의 구호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난민 신청자가 누군지 더 나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대부분 폭력 상황을 피해서 자신의 국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난민입니다. 오히려 폭력을 피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들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경우들 말입니다. 어제 한국 법무부 담당자를 만났는데 예멘 난민 중 범죄와 연루된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난민은 수용국가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국민보다 범죄률 낮은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은 난민협약 가입국이고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만들었지만 난민 인정률은 3%대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입니다. 난민 인정률이 낮은 이유로 제도 미비가 원인으로 꼽히면서 정부는 난민심사관을 늘리는 등의 개정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난민 인정률의 수치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난민 보호가 제대로 적용되는가 입니다. 올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난 연말 유엔 회원국들은 ‘이주 글로벌콤팩트’를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난민 재정착과 민간 부문에서 난민 지원에 관핸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알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난민 심사관 수 증가 등 제도 보완과 함께 시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 난민이 많이 발생하는 국가의 난민 지원과 국낸에서 난민 지원과 재정착을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유엔 ‘이주 글로벌콤팩트’(Global Compact For Safe, Orderly and Regular Migration·GCM)는 이주민 인권보장에 관한 비전과 기본원칙, 23개의 세부 목표와 각국의 조치 등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유엔 총회에서 한국을 포함한 유엔 회원국 164개국이 GCM에 동의했다.

한국을 방문한 켈리 클레멘츠 유엔난민기구(UNHCR) 부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을 방문한 켈리 클레멘츠 유엔난민기구(UNHCR) 부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 난민법은 ‘젠더 박해’를 난민 인정 사유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최근 캐나다로 망명한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라하프 무함마드 알쿠눈의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알쿠눈은 사우디에서는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없고 허가 없이는 일도 할 수 없어 탈출했다고 밝혔지요.

“한국은 난민 협약국이고, 의정서 가입국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변화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젠더 박해의 경우, 특정한 사회적 집단에 소속돼 있다는 난민 인정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국 정부 권한이기는 하지만 유엔난민기구는 젠더 박해가 난민 인정 사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현행 난민법은 난민이 될 수 있는 사유로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 등 5가지를 꼽는다. 젠더 박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젠더 박해란, 난민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출될 수 있는 할례·성폭력·성매매·조혼·아내상속제도·반군에 의한 강간 등을 말한다.

-이번 방문에서는 한국 여성 기업인들과 처음 만남을 가졌습니다.

“세 분의 남성 CEO도 계셨는데 대부분 여성 기업인이었습니다. 한국 기업들과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마련된 모임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난민은 계속해서 증가하면서 현재 25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세계 130개국 450개 지역에서 1000개의 파트너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난민은 인도적인 구호나 보호의 대상 뿐 아니라 자산이라는 점을 기업인들께 말씀 드렸습니다. 난민의 상당수는 전문직 종사자로 이들이 기업에도 기여할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은 난민을 채용하고 전문성을 키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대중에게 난민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창구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배우 정우성씨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홍보대사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지지와 함께 악성댓글 등의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정우성씨 같은 공인이 유엔난민기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주면 난민에 대한 인식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개인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의 한 마디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정우성씨를 지난 12월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로힝야 난민을 만나고 그들의 충격적인 상황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심정의 변화가 된 상태였습니다. 현장에서 난민을 만나는 것이 정우성씨 활동에도 큰 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25년간 난민과 실향민 지원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신다면.

“굉장히 많은데, 지금 떠오르는 사람은 멕시코시티에서 만난 17세 소년입니다. 엘살바도르 갱단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친 소년이었는데 첫 인상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얼굴과 눈을 보면서 사람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두고 탈출해 버는 돈을 모두 집으로 보내는 그 소년이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갔습니다. 그 친구를 보면서 유엔난민기구의 일이 왜 중요한지, 이들의 삶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도 이제 난민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혼란과 낯설음이 큰데, 한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세상에 너무 작은 기여는 없습니다. 학생이든, 사장이든, 집안의 가장이든 이웃과 지인들에게 난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난민을 위한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켈리 클레멘츠 유엔난민기구 부대표

지난 25년간 난민과 국내실향민에 관련된 업무에 종사해온 난민 구호 전문가다. 미국 출신으로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학교에서 국제학 학사와 도시학 석사를 받았다. 1993년부터 3년간 주제네바 미국 대표부에서 외무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이후 국무부 차관 특별보좌관, 럽·신생독립국 및 미주지역의 선임 긴급구호 담당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는 미 국무부 산하 인구·난민·이주국의 부차관보를 역임하며 아시아 및 중동 지역의 인도적 이슈 업무를 담당했다. 부차관보 재임 시절, 전세계 난민, 분쟁 피해자, 취약한 상황의 이주민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전략 계획, 정책 개발, 재정 자원 관련 업무를 주도했다. 2015년부터 유엔난민기구에 합류했으며 현재 여성으로는 기구 최고위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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