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칠곡 가시나들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더 피플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더 피플

평균 나이 86세 할머니들의 이야기라고 눈물 흘리는 신파극을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27일 개봉하는 칠곡 가시나들’(감독 김재환)은 힘에 부친 노인들이 소일거리나 찾아다닌다는 편견을 깨뜨린다. 할머니들의 하루는 바쁘다. 서로 모여 수다를 떨고 마을 냇가에서 빨래하다 막걸리도 한 잔 걸쳐야 한다. 이팔청춘이 오래 전 지난 얼굴에는 셀 수 없는 주름이 가득하지만 할머니들은 여전히 팔팔하다.

경북 칠곡군 약목면 복성 2리 배움학교. 박금분, 곽두조, 강금연, 안윤선, 박월선, 김두선, 이원순, 박복형 할머니는 이곳에서 한글을 배운다. 글자는 비뚤비뚤, 포도를 표도’, ‘보도라고 제각기 다르게 쓰지만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까르르웃음이 넘친다.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시()로 만든다. 예를 들어 안윤선 할머니는 공부라는 제목으로 지금 이래 하마 / 한자라도 늘고 조치 / 원투쓰리포 / 영어도 배우고 한 번 / 해보자를 시를 읊는다.

박장대소가 터지기도 하지만 잔잔한 미소도 절로 지어지는 작품이다. 영화에 배경이 되는 사계절처럼 할머니들의 각양각색이다. 10원짜리를 쌓아놓고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저녁에는 TV에 푹 빠진다. 할머니들이 운동기구 사용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겨우 방법을 익히는 모습은 측은하기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든다. 이 쯤 되면 깨닫게 된다. 노인과 젊은이의 일상에는 차이가 없다.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더 피플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더 피플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와 ‘바버렛츠’의 배경음악은 할머니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극대화한다. 할머니들의 삶을 즐겁게 표현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배움학교 주석희 선생님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흥 넘치는 말투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할머니들의 일상만 담은 데 그치지 않는다. 할머니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생계에만 전념했을 뿐 학교에 다닐 기회는 얻지 못했다.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들어 마침내 글을 배운 할머니들이 이제야 일기로 쓰고 자식들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은 시대가 준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작품을 연출한 김재환 감독은 2016년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 라디오에서 칠곡의 할머니가 시를 읽어주는 걸 듣고 ‘칠곡 가시나들’을 기획했다. 그는 “나이가 든다는 건 두려운 게 아니다. ‘재밌게 나이 듦’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노년층에도 현재의 욕망이 있고 설렘이 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100분.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더 피플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 ⓒ인디플러그, 더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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