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 ‘Twent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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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줄 알아? 할 수 있어? 내가 소리를 아, 지르게 만들 수 있어? / 자신 있어? 해본 적 있어? 나 같은 여자를 여보, 하게 만든 적 있어? / 자, 우, 이렇게 만들 수 있어? 자, 아, 이렇게 해줄 수 있어? / 자신 있어? 할 수 있어? 그럴 수 있다면 어서 날 데려가, 뭐하고 있어?”

명백하게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 가사들은 박지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녀에게 쇼 비즈니스는 쇼 비즈니스일 뿐이며, 그녀는 ‘일’에 충실하는 것이 엔터테이너로서의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박진영에게로 돌아간다.

박진영은 한국 R&B 음악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존재인데, 그의 음악 자체가 매끈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인 태도가 흑인 음악에 닿아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수만의 SM이 HOT나 SES를 통해 한국화한 R&B를 가요의 주류로 만들어 놓았다면, 박진영은 미국적인 R&B 팝의 정서를 옮겨오는 데 주력한다. 끈적한 리듬감, 과장된 바이브레이션 위에 성적으로 도발적인 가사들이 얹혀지고 자극적인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진다.

미국 흑인들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름’은 백인 엘리트의 것이었고, 그렇기에 폭력과 섹스가 거부감 없이 음악 속에 스며들면서 그것이 흑인 음악 정체성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흑인 음악의 태도까지를 수용한 것이 박진영이다. 하지만 박진영 자신의 개인 음반에서 보이던 이런 색채들은 박진영이 키워온 가수들인 god나 비, 별 등에게서는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아직 한국의 청자들은 흑인적인 끈적한 정서에 익숙해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였을까?

유일한 예외는 박지윤이다. ‘하늘색 꿈’을 부르던 소녀 박지윤은 박진영을 만나 그의 손을 통해 성인이 되었다. 그녀는 3집에서 함께 작업한 박진영의 덕분에 ‘더 이상 소녀가 아닌’ 큰 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고, 박진영은 충분히 자신의 색채를 투영할 수 있는 가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에서는 ‘할줄알어?’라는 곡을 첫 싱글로 뽑아내며 좀 더 강한 성적인 도발을 보여준다. 박지윤은 기꺼이 남성의 환상의 대상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처음에도 말했듯이, 박지윤은 그것이 ‘일’이며 ‘연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녀 음악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에 앨범의 방송불가판정심의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호들갑스러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할줄알어?’ 한 곡을 제외한 전체 앨범은 얌전한 편이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박지윤의 썰렁한 유머 멘트들은 아직도 그녀의 소녀성을 부추기고 있고, 그녀가 작사, 작곡했다는 몇몇 곡들은 80년대 풍의 이별 발라드이다. ‘가져요’나 ‘시작’과 같은 곡들은 개성이 강한데, 테크노 쪽의 ‘가재발’과 힙합 쪽의 ‘가루다’와 MC Smiley가 자신의 음악성을 가미해 주었다. 이 두 곡은 어이없는 가사와 힘 없는 박지윤의 랩 실력만 아니었다면 성공적인 트랙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울음반.

코코어 ‘Super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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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어는 소위 홍대앞 클럽밴드의 가장 큰형 뻘인 밴드이다. 오랜 기간 대체로 꾸준히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음악적인 성과면에서도 가장 칭찬할 만한 일관성을 유지하고있다. 그들의 음악은 기타의 노이즈와 자폐적인 성향의 가사, 읊조리거나 터뜨리는 보컬을 중심으로 한 90년대 중반의 그런지-얼터너티브를 기반으로 삼아왔다.

지난 앨범 ‘Boyish’에서는 묵묵히 기타만 치던 황명수의 도약으로 좀 더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었는데, 느린 속도와 조용한 기타, 차분한 암울함을 주조로 했던 황명수의 음악은 이번 앨범 ‘Super Star’에서 더욱 전면에 나선다.

예전 코코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곡은 ‘오늘 밤에 우리 둘이 나쁜일을 벌이자’ 정도 뿐이고, 첫 곡 ‘신세계’에서부터 이국적인 전자음들이 등장하며 이전의 코코어답지 않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디테일들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쉽게 코코어의 음악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7년을 넘게 함께 해온 음악 동지들의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보여지는 팀워크일 테고, 코코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새 앨범이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T Entertainment.

Dixie Chicks ‘Home’

컨트리 음악은 촌스럽다. 영화 <리버 피닉스의 콜잇러브(The Thing Called Love)>는 ‘컨트리 음악은 솔직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한 영화인데, ‘슬플 땐 슬프다고 하’는 것이 컨트리 음악만의 매력이라는 클럽 여주인의 대사가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니 촌스러울 수밖에. 그 정서라는 것은 싸게 만든 성인가요의 가사들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도 태진아의 ‘사랑은 아무나 하나’ 같은 노래는 10대까지도 포괄하는 아무나 부르는 노래로 발전하기도 하고, 가요라면 청소년을 상대로 한 댄스음악이라도 이 트롯만의 느낌이 조금씩 배어야만 히트할 수 있다는 속설도 있다.

그것은 미국의 컨트리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Garth Brooks나 Shania Twain 등의 컨트리 뮤지션은 전통의 음악에 팝이나 록을 합성시켜 새로운 젊은 팬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Dixie Chicks는 이들의 뒤를 잇는 컨트리 팝스타이지만, 앞선 선배들과는 노선을 달리한다. 가사가 아닌 악기의 편성 따위는 좀 더 전통을 따르고 있어서 전통적인 컨트리계에서도, 팝을 소비하는 층에서도 두터운 호감도를 얻고 있는 것이다.

Dixie Chicks는 이번 앨범으로 세 번째 올해의 컨트리 앨범 부문 그래미 상을 받았고, 이는 이들의 음악이 뒤늦게 우리나라에 수입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타이틀 곡이랄 수 있는 ‘Landslide’ 한 곡만 들어보아도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앨범이다. Sony Music.

<황우현 객원기자/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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