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한글 배워 시 쓴 할머니 다룬 다큐 연달아 개봉
‘시인 할매’·‘칠곡 가시나들’
“잘 살았다. 잘 견뎠다” 시 구절 심금 울려

‘시인 할매’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시인 할매’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사박 사박 / 장독에도 / 지붕에도 / 대나무에도 / 걸어가는 내 머리위도 / 잘 살았다 / 잘 견뎠다 / 사박 사박”(‘시인 할매’ 윤금손 할머니의 시 ‘눈’)

할머니들이 쓴 시(時)가 스크린에서 울려 퍼진다. 서툴지만 인생의 긴 여정이 담긴 시를 주제로 한 두 편의 영화가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내달 5일 개봉하는 ‘시인 할매’는 한평생 까막눈이었던 전남 곡성군 서봉마을의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운 뒤 시를 쓴 이야기를 담았다. 2009년 이곳의 ‘길 작은 도서관’ 김선자 관장은 할머니들이 책장에 책을 거꾸로 꽂아두는 것을 보고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할머니들과 시를 썼고 2016년 124편의 시가 담긴 시집 『시집살이 時집살이』를 출간했다. 다큐멘터리는 고난 속에서도 한 평생 순응하며 살았던 할머니들의 사연을 전한다. 오로지 자식 걱정에만 매달리거나 부모님을 떠올리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흐른다.

‘시인 할매’를 연출한 이종은 감독이 2016년 할머니들이 출간한 ‘시집살이 時집살이’를 읽은 게 계기였다. 시가 탄생한 배경이 궁금했던 이 감독이 할머니들을 찾아가 3년 간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하며 완성했다. 이 감독은 30일 언론시사회에서 “이 시대의 어머니들이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딸과 엄마, 할머니가 함께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양양금 할머니는 “글을 몰랐는데 시 까지 쓰고 김선자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칠곡 가시나들' 한 장면. ⓒ인디플러그·더 피플
'칠곡 가시나들' 한 장면. ⓒ인디플러그·더 피플

“사랑이라 카이 부끄럽다 / 내 사랑도 모르고 사라따 / 절을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 그래도 뽀뽀는 안해밧다”(‘칠곡 가시나들’ 박월선 할머니의 시 ‘사랑’)

내달 27일 개봉을 확정지은 ‘칠곡 가시나들’도 한글을 배운 칠곡군의 일곱 할머니의 이야기다. 평균 나이 86세 할머니들이 생전 처음 한글로 사랑, 공부, 자식 등 인생에 대한 짧은 시를 쓴 과정이 담겨 있다. 할머니들은 2015년 시집『시가 뭐고』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2016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받아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박힌 서툰 글씨로 툭툭 던지는 할머니들의 시에는 유머 넘치는 삶의 통찰과 지혜와 담겨 있다. ‘트루맛쇼’, ‘MB의 추억’, ‘미스 프레지던트’ 등 사회 고발성 작품을 주로 연출한 김재환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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