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서 결혼·출산·남친 묻는
성차별 질문 여전

여성 44%, 남성 22%
채용 성차별 겪는데
대규모 실태조사도 없어
채용 단계별 성비 공시·
여성 면접관 확대 필요

9일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2019년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가 열려 구직자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월 9일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2019년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가 열려 구직자들이 채용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결혼 여부 물어보고, 결혼 했으면 임신 계획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금융·보험업 인사담당자 A씨의 말이다. 면접에서 결혼 여부와 임신 계획을 묻는 것은 엄연히 현행 법 위반이다. 그러나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은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 업체는 직원을 채용할 때 기혼 여성은 배제한다. A씨는 “(채용 시) 제한 조건은 기혼 여성분들. 야근이 많다 보니 특히 애 있는 분은 저녁에 애 때문에 가봐야 한다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고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노동시장 성 격차 해소를 위한 전략개발’ 보고서에서 인사담당자 15명을 심층 인터뷰에서 드러난 채용 성차별의 현주소다.

“임원이 결혼한 여직원은 채용하지 말라고 해요. 기존 여직원이 육아 때문에 빨리 귀가하는게 별로 였나봐요.” 인사담당자 B씨도 결혼한 여성 직원을 회사 차원에서 꺼린다고 밝혔다. 기존 여성 직원들의 근무 태도나 성과가 새 직원을 뽑을 때 영향을 미쳤다. 인사를 담당하는 C씨는 면접에서 “야근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다고 했다. C씨는 그 이유에 대해 “(여성 직원이) 몇 번 야근을 못버티고 나가는 경험이 쌓였다”고 했다.

여성 합격률이 높다보니 아예 성별로 면접을 따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D씨는 “여성들이 합격률이 높아 남녀 면접도 따로 본다”며 “(남녀) 섞어서 보면 남자 직원에게 점수가 안나온다”고 했다. 성별을 구분한 면접은 남성을 뽑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 연구진은 처음으로 채용 과정에 대한 대규모 실태조사도 벌였다. 종사자 30인 이상 업체 1000곳과 20~49세 구직경험자 2000명을 조사했다. 채용 성차별 논란이 이어졌지만 채용 과정에 대한 대규모 실태조사가 이뤄진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를 보면, 구직경험자 가운데 33.2%가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성별로 보면 여성의 44.2%, 남성의 22.4%가 성차별 채용을 겪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남녀를 구분하거나 특정 성을 우대한다는 비율이 70.8%, 임신·출산 관련 질문은 43.4%, 결혼 형태에 따라 제한을 두는 비율이 38.9%에 달했다.

면접 과정에서 여성은 결혼과 출산 유무와 계획(58.6%), 결혼·출산 이후에도 계속 회사를 다닐 것인지 여부(60.2%)와 관련한 질문을 남성(보다 두배 이상 많이 들어야 했다. 나이에 따른 업무 가능성(67.2%), 직장에 다른 성별의 직원이 많은데 근무하기 불편하지 않겠는지(42.3%), 커피 심부름 같은 외적 업무 수행에 관한 질문(20.8%)도 남성보다 더 많이 받았다.

이보다 앞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여성·노동단체가 ‘젠더갑질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여성 노동자 282명 가운데 46.5%가 입사 당시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팀은 여성이 입사부터 임금, 승진, 업무 수행 등 일터에서 겪는 차별과 성적 괴롭힘을 ‘젠더갑질’로 명명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는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못 박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에서 탈락시킨 혐의로 법정에 선 KB국민은행은 고작 벌금 500만원을 받았다. 공공기관과 은행 등 민간기업에서 성차별 채용을 한 사례는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진은 “여성차별의 근원은 인사제도, 조직문화”라며 채용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 규모의 대표성 있는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채용 단계별 성별 비율을 공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면접 단계에서 여성 면접관 참여를 늘리기 위해 일정 비율을 법으로 정해 공공부문, 대기업이 반영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2017년 기준 실무 면접에 참여한 면접관 등 인력은 평균 4.1명으로 이 가운데 여성은 0.9명(22%)이었다. 최종 면접·임원 면접에 참여 인력 3명 중 여성은 0.5명(16.5%)으로 더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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