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다 /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작가
노유다 /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작가 ⓒ이정실 사진기자

작년 이맘때 흑인 페미니스트인 타라나 버크의 미투 운동에 대해 조망하는 것으로 세상 읽기의 첫 칼럼을 열었다. 기존 권력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대학이나 정부 정치권에 연계도 없으며 하다못해 출판계에서도 하나의 ‘점’에 불과한 레즈비언 출판인이 무려 ‘세상’ 읽기에 목소리를 보탠다는 것이 스스로도 얼마나 신기하고도 기묘한 일이었던가를 마지막 아홉 번째 칼럼을 쓰면서도 되새김하게 된다.

기존 체제에 순응하길 거부하는 작가·보헤미안·페미니스트·퀴어 그 외 무엇이든 사회적 반항아들에게 목소리가 부여되는 사건은 대개 ‘혁명’과 관계가 있는 것이고 그 혁명이 진보로 이어지든, 더 나은 실패의 역사로 남든, 지금의 세상 변화가 소셜네트워트서비스(SNS)와 서로 뗄 수 없는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중 젠더와 인권 감수성을 기반으로 역동적인 정체성 정치가 일어나는 트위터라는 가상 영역이 내가 굳이 속해 읽고자 한 세계의 일부였다. 자기만의 방 대신 누구나 자기만의 트위터 창을 가질 수 있으므로. 동일한 의제에 관심을 가진 여러 익명의 세계에 섞이면서 감히 희망의 징후를 엿본 순간들도 있음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예컨대 지난 한 해 동안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숱한 성폭력 가해자들이 공론화를 통해 세상에 널리 공개된 일은 증거주의에 입각해, 가해자에게 유리한 법 제도의 한계를 밟고 전진하는 ‘페미니즘 혁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찍이 수전 팔루디가 백래시(backlash·반발)로 명명한, 페미니즘 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수십억 세계 여성의 구조적 불행을 소비하거나 헐값에 매도하려는 시도들은 이미 반복적으로 존재해 왔다. 익명이나 필명을 사용하는 것을 소통의 핵심 원칙으로 삼은 트위터는 전 세계 사용자의 평등한 소통을 지향하고자 한 본래 의미와 달리 돈과 권력이 개입한 여론 조작과 정치 공작의 장으로 악용되기 쉽다.

트위터에 접속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익명으로 존재하는 수상한 몇몇 혐오 계정을 이미 오랜 시간 보아 왔다. 여성의 역사상 가치와 단계로 존재했던 유수 담론인 ‘급진적 페미니즘’의 이름을 시궁창에 빠트리는, 조직화된 그룹핑 체계를 통해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에 준하는 폭력을 행하고 성소수자 혐오, 장애 혐오, 정신질환 혐오, 가난 혐오 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부 여론 생산자들이 과연 여성이며, 여성을 위해 활동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된 것은 그 공격이 상대적으로 더 소외된 여성을 대상으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모든 범죄와 맞서며 관련 사안에는 동참하나 정체성이나 의견이 다른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 대한 2차 가해에는 스스럼없는 그 계정들의 ‘수상한 정의’를 자가당착, 혹은 자기혐오에 가까운 소통 불능의 나르시시즘쯤으로 여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그 계정들에서 박근혜 복권이란 거대한 반동을 목격하며 마지막 짜낸 분석에의 의지마저 그야말로 ‘짜게’ 식어 버렸다. 여성의 역사와 페미니즘을 도구화해 자본과 권력에 다가가고자 하는 힘에의 의지였을 뿐. 그들 중 일부는 보수 정치와 특정 종교에 여성과 페미니즘을 헐값으로 팔았다는 맹비난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지난 연말부터 움직씨 출판사는 앨리슨 벡델의 두 번째 그래픽노블 『당신 엄마 맞아?』을 준비하고 있다. 책은 엄마와 딸에 대한 정신 분석학적 여성 서사로 모든 여성은 반드시 앞장선 한 여성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모든 페미니스트는 필연적으로 ‘어머니’ 또는 ‘여성’이라는 우상을 지날 출구를 찾아 헤매게 되며 그 출구 밖 자신과 오롯이 마주해야 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역시 어리석은 우상으로부터 놓여나 혐오로부터 자유로워진 더 급진적인 자신과 마주하길 빈다.

새해 들어 영국·뉴욕의 출판사 버소(Verso)의 주도로 전 세계 10개 국어 동시 출간되는 『99% 페미니즘』 한국어판의 발행을 맡았다. 감당할 수 없는 주거비, 가속화된 젠트리피케이션, 여성 빈곤, 저임금, 기후변화, 인종주의에 맞서 1% 여성의 승리 모델을 위한 페미니즘이 아닌 전 세계 수억의 99% 여성 변화를 위한 공동 행동을 모색하는 것이 99% 페미니즘의 핵심이다. 지난해 세계여성의 날 국제 여성 파업(International Women’s Strike)을 이끌어 낸 여성 정치철학자이자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낸시 프레이져, 신시아 아루자, 티티 바타차리아가 공동 선언문에 가까운 이 책을 썼다.

가정폭력뿐 아니라 시장과 빚,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와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되는 ‘단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다’는 99% 여성 선언문에는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 퀴어 여성을 차별하는 정책으로 인한 폭력, 이민을 범죄로 규정하는 국가 폭력, 백인이 아닌 여성, 무슬림 여성, 노동 계급과 실업 여성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적 공격에 전면 반대하는 저항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움직씨 출판사가 전 세계 수억 여성을 위한 진짜 급진적 싸움을 시작한다는 99% 페미니즘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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