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예방, 여성의 이익
위한 행위 결코 아냐
남성도 성폭력 피해 입어
불필요한 혐오, 대결구도로
비화되는 일은 경계해야

박찬성 변호사
박찬성 변호사

지난 해 크리스마스이브, 우리는 성폭력 예방과 대처를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준거규정을 얻게 되었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바로 그것이다. 1년 후인 올해 크리스마스부터 비로소 시행될 예정이기는 하지만, 시행 이전이더라도 이 법에서 정하는 여러 내용은 성폭력 사안의 처리에 주요한 참고사항이 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우리는 2017년 11월 말까지는 ‘2차 피해’를 구체적으로 예시한 법조항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라고 하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구 남녀고용평등법 규정이, 현행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6항과 같은 상세한 예시규정으로 바뀌어 시행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채 몇 달도 되지 않은 2018년 5월 말엽의 일이었다.

불과 7개월 만에 조금 더 진일보한 2차 피해 정의규정을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새로 마련하게 되었으니, 1년 사이에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음은 사실이다. 더 바뀌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의 이 모든 소중한 변화가 수많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미투의 고귀한 성과물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새 법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심지어 ‘여성폭력’이라고 하는 이 법의 명칭과 내용을 둘러싸고도 거부감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실제로도 성폭력은 반드시 여성에 대한 폭력만을, 언제나 남성에 의한 가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성에 의한 남성 피해사례도 분명히 실재하며, 동성 간 피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 법은 이처럼 성폭력이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만 일의적으로 환원될 수는 없음을 간과하고 있는 흠이 있다.

남성을 피해자로 하는 성폭력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고, 동성 간 피해라 해도 그 상당수는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현상적으로 보건대, 남성 피해사례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근본적으로는 성폭력이 성차에 기반한 폭력이며, 권력적‧위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성별 집단과 열위에 놓여 있는 성별 집단이 존재한다는 구조적 원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사안의 본질에 대한 분석적 통찰은 성차의 존재라는 근본적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지만 특정한 개별 사건의 대응과 해결에 있어서라면 여기서 ‘성차에 기반한 구조적 모순’이 직접적으로 문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바로 눈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피해자 그 자신만이 문제의 유일한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 피해자가 여성이건 남성이건 그 누구이건 간에 말이다.

성폭력은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만 ‘악’인 것은 아니다. 성폭력은 그 누군가에 대해서 가해졌든,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무조건 악이다. 따라서 성폭력을 철저히 예방하고, 발생한 사건에 관해서는 건강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원칙은 특정 성별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더구나 성폭력 예방이 특정 성별의 이익과 결부된 것이라는 오해로 말미암아, 불필요한 혐오와 대결구도로 비화되는 일은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한다.

2018년이 ‘검찰 내 성폭력 폭로’와 함께 시작되었던 것처럼, 2019년은 ‘체육계 성폭력 문제제기’와 함께 한 해가 시작되었다. 이 서글픈 기시감이라니. 성별을 불문한 모든 성폭력 피해자에게 따뜻한 지지와 뜨거운 연대를. 성폭력방지를 위한 노력이 행여 일그러진 혐오로 이어지게 되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성폭력 추방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 단단히 결속된 우리 모두의 마음으로 2019년에도 꾸준히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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