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비자의 마음 읽기]

가질 수 없는 너, 하울과 언박싱의 위로

하울언박싱이라는 용어에 익숙한가? 딱히 자주 써왔던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요사이 여성 소비자들에게 이 두 단어는 설렘을 안겨주는 단어가 되었다. 20대에서 40대 여성들이 열광한다는 콘텐츠에는 화장품 하울’, ‘럭셔리 하울’, ‘명품 언박싱이라는 표현이 꼬리처럼 붙어 다닌다.

하울(haul)힘들게 끌다 혹은 많은 양, 언박싱(unboxing)상자에서 꺼내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봐서는 두 단어 사이에 공통점은 없다. 그러나 이런 이름이 붙은 콘텐츠들은 화장품이나 명품(가방, 신발, 의류 포함)을 잔뜩 사서 새 상품을 개봉하는 영상들이 대부분이다. 유튜브 확산 초기에는 먹방, 영화나 책 소개, 화장하는 법을 알려주는 등의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살림하는 방법, 정리하는 방법, 아이랑 잘 놀아주는 방법, 이유식 만드는 방법 등 콘텐츠 더 다양해졌는데, 이제는 쇼핑을 잔뜩 하고, 쇼핑 박스를 하나하나 개봉하는 과정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특이한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이다.

 

출처: 유튜브 캡처
출처: 유튜브 캡처
출처: 유튜브 캡처
출처: 유튜브 캡처
출처: 유튜브 캡처
출처: 유튜브 캡처

이전에도 가전제품이나 휴대폰을 구매해서 개봉하고 포장상태나 제품 특징들을 설명하는 영상들이 있었고, 유명한 스타일리스트가 신상 의류나 가방을 사온 경우 개봉하면서 특징을 설명하는 영상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이 같은 열풍이 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먼저 현재 인기를 끄는 명품 하울(혹은 명품 언박싱) 영상들의 주인공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이들은 그 영역에서의 전문가이거나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의 셀럽’들이 아니라, 그저 개인 방송을 하는 좀 특이한 소비자일 뿐이다. 이들은 상품을 구매하고 개봉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와 같은 두근거림, 우리가 내지를 것과 같은 감탄사와 기쁨의 괴성을 쏟아낸다.

하울 방송이 성행하면서 과소비를 조장한다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는 비판이 많다. 돈 많다고 자랑질 하는 콘텐츠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그런데 한 편, 수백만원을 호가한다는 그 명품 가방이 내 것이 아니면 어떤가? 내가 그 가방을 살 만큼 여력이 없으면 또 어떤가? 사실,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져서 괴로워진다면 안 보면 그만이다.

“2810만원 명품하울”, “8000만원 명품하울” 등의 제목들로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유튜버들의 언박싱 영상을 보는 수백만의 소비자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마치 내가 다 먹지 못할 엄청난 음식들의 먹방을 보면서, 내가 살지 못 할 화려한 저택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에서 다하지 못 하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주변에 하울 영상을 즐겨 본다는 여성들에게 정말 대리 만족이 되느냐고 물었다. “ 정말로 대리 만족이 되니 보는 거지요. 가방이 꼭 갖고 싶거나 한 것은 아니고, 내가 정말 가지고 싶은 걸 가지게 된다면, 아마도 저렇겠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괜히 사치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런 콘텐츠에 대해 심리적 거부감을 가지는 건 아닌가? 여성 소비자들이 그런 영상을 보고 특정 상표의 특정 가방을 가지려고 노력 한다기 보다는 내가 꼭 가지고 싶은 무엇을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경제적으로 모두가 어렵다고 느끼는 팍팍한 생활 중에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상품을 사고, 행복해하면서 상품을 개봉한다. 심지어 전문가들의 어려운 말이 아니라, 마치 옆집 친구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주고, 다른 상품들과 비교도 해준다. 그것이 명품 브랜드건, 화장품이건, 휴대폰이건, 애완동물 용품이건 간에 내가 관심 있는 것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대리만족감을 주기도 하고, 미래에 내가 이루고 싶은 내 소비의 좋은 정보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라면? 하울 영상을 보면서 질투가 나거나 영상 속의 물건을 사기 위한 지름신이 내렸다면, 과감히 영상을 보지 말 것을 권한다. 다만 함께 기분이 좋아지고 관심 상품에 대한 세부 지식이 늘었다면 내 정신건강을 해치지 않은 선까지만 보는 것이 좋겠다.

기업이라면? 개인 크리에이터 중에는 기업의 협찬을 받아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상품홍보에 유리한 정보만 제공하도록 요청하는 하는 정보왜곡 현상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개인 크리에이터들 역시 자신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염두에 두면서 중립적인 방송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구혜경. 여성신문전문리포터로서 재능기부
충남대학교 소비자학과교수. 국내 대기업에서 화장품마케팅업무를 10여 년간 수행한 바 있다. 현재는 소비자정보, 유통, 트렌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충남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sophiak@cnu.ac.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