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결혼한 부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걸 알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있다. 당장 결혼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곧 개봉하는 영화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원제 Just married)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거기다 좀 더 보태자면, 신혼을 이미 치룬 이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 그리하여 엉겁결에 불려나온 한 부부가 마주 앉았다. 선현경(33)씨와 그의 남편 이우일(34)씨다. 선현경씨는
에 이들 부부의 일상을 다룬 만화를 연재하면서 틈틈이 동화책 일러스트를 그리지만 주로 여섯 살 난 딸과 남편을 돌보는 여자고, 이우일씨는 과거 동아일보에 ‘도날드 닭’을, 현재 에 만화를 연재중인 만화가로 최근 낸 <김영하와 이우일의 영화이야기>란 책이 잘 팔려 흐뭇한 ‘래퍼 지망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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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왼쪽), 선현경씨 부부.

이우일(이하 이) : 브리트니 머피? 진짜 이쁘더라.

선현경(이하 선) : 응. 그런데 <처음 만나는 자유>랑 너무 다른 거 같아.

: 그런데 누구 많이 닮은 거 같애. 누구지?

: 멜라니 그리피스 닮은 거 같지 않아?

: (여배우 미모에 지대한 집착을 보이다가 기자의 저지에 멈칫)그 영화가 생각나더라. 왜 마이클 J 폭스가 귀신이 눈에 보이는 걸로 나온 건데. 뭐더라? 맞다. <프라이트너>. 거기서 마이클 J 폭스가 어떤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가 레드 와인을 마셔. 그런데 귀신이 된 죽은 남편이 옆에서 그러는 거야. 자기 부인은 화이트 와인만 마셨는데? 그러자 여자가 그래요. 자긴 원래 화이트 와인을 안 좋아한다. 그런데 남편 때문에 화이트 와인을 마셨다. 보면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맞춰주는 게 많은 거 같아요.

: 맞아요. 제가 원래 순대국을 못 먹어요. 냄새 나고. 그런데 오빠가 순대국을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요즘은 먹게 됐어요.

: 우리집은 현경이가 나한테 맞춰주는 거 같아. 그런데 영화 보면 여자가 부자집인데 그거 별로 안 내세우는 걸로 나오잖아요. 만약 여자가 부자고 세게 나와서 그걸 남자가 순순히 받아들였다면 여자한테 질질 끌려다니구 그랬을 건데,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보면 그러잖아요. 남자가 완전히 여자 종이잖아? 그런데 영화가 좀 교조적이고 짜증나는 장면이 있어.

: 맞아.

: 결혼이란 다 그런 거구, 중간에 이탈리아 귀족을 만나잖아요. 조상이 마키아벨리라는. 그럼 처세술 이야기를 해줬어야지. 난 뭔가 깨는 이야길 해줄 줄 알았어. 그런데 뭐야? 조연 캐릭터들이 영 꽝이야. 새라 쫓아다니던 피터도 그렇고.

: 결혼은 처음 몇 달이 제일 힘들어요. 우리도 많이 싸웠잖아? 거기다 결혼 다음날 떠났으니. 결혼 하고 나서 살면서 겪을 일들을 여행 갔다와서 1년이나 지나서 또 겪은 거야. 물론 가서도 많이 싸웠지만요.

: 여행 다니는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구요. 우리처럼 여행하다 찢어진 경우 많이 봤다. 조심해라. 영화가 그 전형적인 케이스죠. 그리고 그게 있는 거 같아. 우린 8년이나 사귀었어도 똑같아. 그전엔 아무리 오래 사귀어도 연인인 거야. 결혼은 완전히 다르고.

: 우리 처음 여행 갔을 때도 찢어져서 왔잖아?

: 맞다. 결혼 전이지? 결혼 전에 보름 동안 여행을 갔어요. 그런데 돌아올 때 비행기서 말도 안 했어. 헤어져서 공항 찾고. 비행기가 경유해 오는데, 싱가포르 면세점서.

: 서로 따로 움직인 거에요. 그런데 비행기표가 나한테 있는데 오빠가 안 오는 거야.

: 맞다. 왔다갔다 하는데 방송이 나오더라. 이우일씨를 찾습니다. 13번 창구로 나와주세요.

: 번호도 생각나. 썰틴.

: 영화에서 그게 감동적이었어요. 영화 막판에 고생했던 이야길 하는 거. 맞아요. 그게 가장 기억이 나. 좋았던 기억보다 싸웠던 기억, 찢어졌던 기억.

: 맞아. 옛날에 싸웠던 거. 임신했을 때요? 물론 그때도 그랬어요.

: 현경이가 한밤중에 홍대앞 88우동이 먹고 싶다고 그러는 거예요.

: 제가 입덧을 안 했어요. 그런데 먹고 싶은 게 그렇게 많은 거예요. 그런데 어느날 한밤중에 그게 그렇게 먹고 싶대. 그런데 오빠가, 됐다, 그만 자라. 그러는데.

: 내가 운전을 못한다는 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였지. 차도 없고. 그런데 영화보면 그건 부럽더라. 걔네는 그래도 하나가 잘 살잖아? 여행 가서 막막하면 비빌 데나 있지. 우린 거지였잖아.

: 오빠. 그건 참 똑같았어. 영화보면 남자가 베니스 가서 미국만 찾잖아요. 미국 바 가서 스포츠 보고. 오빠도 그랬어요.

: 제가 미국 만화를 좋아하잖아요. 심슨 같은.

: 그래도 그렇지. 유럽엘 가서 미국 만화만 찾는 거야. 계속 뒤지고. 유럽서 미국 만화 사려면 값도 얼마나 비싼데. (…)

: 성격요? 저는 덜렁덜렁 대는 성격이구요. 오빠는 되게 꼼꼼해요. 지하철을 타도 제가 하도 지하철 표를 잃어버려서, 이젠 아예 오빠한테 지하철 표를 맡겨 버려요.

: 안 그러면 잃어버려. 가방도 맨날 찾아요. 그리고 제가 성격이 디게 급해요. 약속이 있으면 30분 전엔 가야 하고.

: 전 조금 늦게 가도 상관 없다 그런 스타일이구요. 그거 갖고 둘이 예전엔 많이 싸웠는데, 뭐 이젠 서로에게 맞춰가는 거 같아요.

: 근데 아까 그 장면서 진짜 웃었어요. 남자가 헤밍웨이 광장서 “저 비둘기들이 미쳤나?” 우리도 비둘기 싫어하거든요. 베니스 광장서 비둘기 말도 못하게 많았어요.

: 비둘기 정말 싫어. 우리가 베니스 서너 번 갔나?

: 응. 그 생각도 났다. 남자가 섹스 못 했다고 스트레스 받잖아. 우리도 여행가서, 섹스고 나발이고 없거든. 바닥서 자고 그랬어요. 옛날 배낭여행이란 게 뭐.

: 빈곤하게 갔었어. 그리고 진짜 이탈리아 남자들. 영화에서 여자가 이젤에 걸려서 넘어지잖아요. 그러니 남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일으키고. 진짜 이탈리아 남자들은.

: 정말 유난히 껄떡대.

: 남부로 갈수록 심해요. 어떤 남자가 오빠한테 혀 내밀고.

: (남자가?) 네. 남자가요. 혀를 낼름낼름.

: 오빠한테 그러는 거예요.

: 척 다리에 손 올려놓고 쓰윽 쓰다듬질 않나. 으흐.(이하 흥분한 이탈리아 이야기 생략)

: 결혼하고 처음 한 달이 제일 힘들었어.

: 런던에 딱 떨어져갔고, 오빠가 맨날 “엄마가 보고 싶다” 그러는 거예요. 지만 엄마 있냐? 나도 엄마 있는데.

: 앗. 이런 이야긴 처음 하는데. 내가 그랬나?

: 자기들이 원해서 여행 왔는데 불안하더라구요.

: 앰하니 여행 온 건 아닌가, 돌아가면 뭐하나. 하지만 그것도 딱 두 달 지나니까 초월하드라구. 사는 게 이런 거구나.

: 하지만 뭐, 결혼 안 한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맞아.

: 인생이 미니멀해지잖아? 책임질 것도 없고.

: 맞아. 꼭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 현경이가 결혼 전에 일한 게 아니에요. 얘가 도예과를 갔으면 도예를 열심히 하던가. 막 도예하다가, 갑자기 유리공예 한다고 한참 그러고. 찌그러진 컵 하나 만들어갖고 와서 “예쁘지?” 그러잖나. 또 글 쓰겠다고 그러다 지금은 만화 그린다고 또 그러고. 재주가 많은 건지, 재수가 없는 건지. 넌 결혼 안 했으면 개날라리 됐을 거야.

: (웃음)결혼해서 저는 도리어 자유로워진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딴 남자한테 신경 안 써도 되구. 예전엔 모든 남자한테 신경이 갔는데, 지금은 뭐... 쟤, 괜찮네 하구 지나가구 말구.

: 정말?

: 응. 진짜. 그런데 여자랑 남자랑 너무 달라서 힘든 거 같아. 난 이렇게 하면 저는 미안하다 그러겠지. 그러고 보면 저는 딴 생각하구 있어요.

: 싸울 때도 성격이 있어요.

: 예. 우린 정반대예요. 난 싸우면 그 즉시 다 풀어야 해요.

: 난 대강주의자야.

: 화가 나서 싸우면, 오빤 문 잠그고 틀어박혀서 안 나오고, 난 지금 다 풀자구 열쇠 다 찾아서 문 따구.

: 아니, 그게 그때 풀려요? 좀 지나서 이야기하자고 해도.

: 전 그때 다 풀어야 해요. 두고보질 못해요. 그런데 웃긴 게, 나중에 보면 서로 자기가 져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 아니, 내가 지고 있던 거 아니었나?

: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긴 힘든 거 같아요. 보자기로 덮어둔 상태랄까.

: 맞아. 이거저거 다 끌어다 착 덮어둔 거지. 확 들추면 큰일나지 않나?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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