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참사를 보며, 사람들마다 이 생각 저 생각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계약은 불연재로 해놓고 실제로는 활성 재료가 쓰이고 있는 현실을 보며, 가부장제 경제의 정수이며 우리에게는 IMF 주범의 하나로도 지적된 바 있는 이른바 올드 보이 네트워크(old boy network : 주류사회 구성원들의 혈연, 지연을 근간으로 한 나눠먹기)의 굳건함을 떠올렸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아무리 일손이 부족해도 모니터를 제대로만 봤더라면…’하며 지하철 실무자들의 해이함을 원망했을 것이다. 또 이 모든 생각들이 다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참사를 보며 새삼 가족의 붕괴를 떠올렸다. 성실하게 살던 한 가장이 어느날 병으로 사회생활이 어렵게 됐다.

몸의 아픔은 몸의 아픔으로 끝난 게 아니라 마음의 아픔을 가져왔고, 아마도 그 아픔을 함께 해 주는 이들이 주변에 없었던 그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게 분노하게 됐나 보다. 소통되지 않는 이런 아픔이 지금도 도처에 널려 있는 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나같은 사람은 “그래, 내 목숨은 내 목숨이 아니지. 내가 닿을 수 없으나 그러나 한 하늘 아래 호흡하고 있다는 그 끈으로 연결된 그 고통은 그와 나를 어느 순간에 폭파시켜 버릴 수 있는 거야”라고 체념하며 사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체념하기 싫어서 ‘가족이 있잖아, 그 사람한테는 가족이 있었잖아’라고 은근히 그 가족을 원망해 본다. 그러나 가족이 희망을 품을 만한 소통의 장이 되기가 만만치 않음을 나 자신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오후 6시가 되면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나선다. 집에 도착하면 7시 10분 쯤, 부리나케 저녁 차려 먹고 치우면 8시에서 8시 반 쯤. 이 때부터 둘째 아이의 학습 지도가 시작된다.

공개수업 날 아이는 처음으로 10을 넘어 올림을 하는 덧셈을 배웠다.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주어진 20문제 프린트물. 5분, 7분, 8분 만에 다 풀었다고 손을 드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우리 애는 끝내 주어진 시간에 다 못 풀었고 주변 아이들의 “얘는 아직까지 못 풀었어요”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아이는 보름을 “나는 바보야”를 되뇌이며 엉엉 울기까지 했다. 그 일을 경험하고 나는 ‘더 이상 선생님은 없구나. 그래 걱정마. 엄마가 선생님이 되줄께’라고 다짐을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내주기 시작한 내 숙제. 아들은 잘 따라 주었고 1년을 그 생활을 통해 이제는 학원에 안 다니고 학습지를 안 해도 ‘하나만’ 더 맞으면 상을 탈 수 있게 된 자기를 자랑스러워 한다.

그런데 이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나와 아들 그리고 딸은 소중한 걸 잃었다. 어느 날 밥먹고 대화가 시작되면, 나는 서로 자기 말을 들으라는 두 아이의 성화에 시달리며 아이들의 학교 생활, 친구관계, 선생님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얘기를 정신없이 들어주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뿔사 10시를 넘어 11시가 다 돼 간다.

오늘 학습지 체크, 영어 테이프 듣기 체크는 날아갔다. 딸애는 학원 숙제가 있을 텐데, 지금부터 하면 언제 자려나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오래 얘기 듣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가 엄습한다. 후회, 그런데 이게 후회할 일인가? 사실 나는 매일 이러고 싶은데, 그리고 아직은 3학년 올라가는 아이에게 책도 더 읽어주고 싶은데….

어느 때부터인가, 풍부한 대화가 힘든 우리 가정 생활이 됐다. 그리고 가정에서 보살펴지지 않은 고통은 어느 순간 사회를 향해 폭발한다. 가족이 서로를 돌봐주는 마음을, 그 여유를 상실했을 때 대체 어떤 형태의 어떤 천문학적 숫자의 복지 투자가 이를 대체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가 소통의 사생활까지 어렵게 하는 그 사회가 잘 돼가는 사회라고는 말할 수 없다.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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