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난 이후 자신의 이름을 잃어간다’는 푸념을 주위에서 흔히 듣곤 한다. 사랑이 엄마, 박 부장의 아내, 하늘이 할머니… 가끔씩 잊혀지는 자신의 이름이 생각나 서러움에 한숨짓지만 그게 여자의 운명인 듯 나중에는 그게 문제인 지조차 잊어가기도 한다.

그나마 워킹맘으로 살아가면 김우리 과장과 같이 이름 석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흔히들 쉽게 김 과장으로 부르다 보니 자신의 이름 두 글자는 서글프게도 불려질 일이 거의 없다.

바로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 출간됐다. 김진빈 작가의 ‘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라는 책은 ‘바로 잃어버린 엄마의 이름을 찾아주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는 ‘이름’이라고 말했지만 이보다 더 나아가 가족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희생한 작가 어머니의 삶을 보여준다. 작가의 어린 시절 엄마는 자신과 오빠, 그리고 집에 맡겨진 사촌동생에게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던 전업주부였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아빠가 회사 내 구조조정의 첫 번째 피해자가 되면서 엄마는 이 집안의 가장이 된다.

그 때부터 유치원생인 자신에게 엄마는 ‘꼴찌 엄마’가 된다. 유치원을 파하는 오후가 되면 아이들은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린다. 꼴찌 엄마를 둔 아이는 자기 엄마일 거라는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다.

하지만 작가가 어느덧 서른 즈음이 돼 바라본 엄마는 남편의 비위를 맞추고, 아들의 눈치를 보고, 딸의 짜증을 묵묵히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머리핀에 액세서리 부속을 붙이는 쉬운 것부터 일을 시작한 엄마는 안방의 절반 이상을 부업 재료들이 차지할 정도로 쉬지 않고 일했다. 명예퇴직 후 삶을 포기해버린 아빠는 푼돈으로 소주를 사 마셨고 짜증도 늘어갔다. 엄마는 그럴수록 더 욕심을 내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고 오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학습지를 돌리다 운이 좋게 회사에 취직도 했다. 어느 날 자신이 지켜본 엄마의 회사 월급봉투는 충격 그 자체였다.  다른 직장동료들의 월급봉투는 두툼했지만 엄마의 봉투에는 단 돈 천원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몇 년 뒤 알게 된 월급봉투의 진실은 엄마는 매달 고객에게 대금을 수금해 회사에 주는 일을 하는 데 수금을 하지 못하면 월급이 감봉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아끼려고 화장도 하지 않고 스포츠머리를 한 엄마의 머리는 항상 땀에 젖어있었다.

50대가 되면서 엄마는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면서 자신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갱년기가 되면서 울고 웃다가 폐경을 맞은 엄마에게 작가는 ‘이제부터가 진짜 엄마의 인생을 사는 새로운 시작인 거야’라며 자신의 초경을 엄마가 축하해줬던 것처럼 엄마를 축하해줬다. ‘엄마가 오늘을 오늘로 끝내고, 내일이라는 시간을 계획하고, 모래를 꿈꾸며 사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을 잃어버린 삶을 산다고 느끼는 엄마들도 자신의 이름과 삶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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