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가족 넘어서자”
돌봄 기반의 친밀한 공동체로
주거, 의료, 세제, 상속 등 보장
생활동반자법 제정 필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글쎄’

 

다양한가족
다양한가족

 

통계청의 2018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동거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56.4%로 처음 절반을 넘었다.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응답도 처음 30%를 넘었다.

가족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다양한 가족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사회 전면에 등장한 평등의 가치도 우리 사회에 ‘가족이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가족이 가부장제로 인해 불평등하게 작동해왔다는 문제 제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결혼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가 출산율을 높인다는 유럽의 사례도 다양한 가족 논의와 맞물려 곧잘 인용된다.

여성신문은 ‘다양한 가족’ 연재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과 친밀한 관계에 주목하고, 이들의 삶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지 목소리를 전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다양한 가족을 가족정책 대상으로 포함해 복지제도를 확대하고 가족 구성의 선택권을 인정하는 등 개인의 시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혈연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을 넘어 개인과 선택권에 기반해 가족의 개념과 범위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인식과 형태의 변화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이미 보편적인 흐름이다. 법 테두리 내에서도 2인 부부가족, 한부모 가족, 재혼가족, 국제결혼가족, 조손가구, 기러기 가족, 주말부부, 1인 가구 등으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제도 밖에서는 사실혼, 이성 및 동성 동거커플, 생활공동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중 보편적인 가구 형태로 자리잡은 1인 가구는 561만 8677가구로 28.6%를 차지하고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지난 연말 발표한 ‘미혼남녀의 혼인 이혼 인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남녀는 보편적인 미래 결혼 형태로 ‘사실혼(동거)’(46.1%)을 예측했다. 이어 ‘기존 결혼제도 유지’(32.7%), ‘졸혼’(10.6%), ‘계약 결혼’(7.8%), ‘이혼’(1.8%) 등을 꼽았다. OECD 국가 이혼율 9위라는 높은 이혼율 속에서도 특히 결혼 20년 이후 황혼 이혼 비중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7년 결혼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은 전체 이혼의 31.2%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에 담긴 가족에 대한 국가의 인식은 ‘가족 위기, 가족 해체’에 머물러 있다. 반면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은 불행한 가족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스웨덴 가족정책 관료의 발언은 가족 역시 관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드러낸다.

동거를 법제화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진선미 의원이 19대 국회인 2014년 당시 발의를 추진하다가 중단한 ‘생활동반자법’은 성별에 관계없이 동거가족의 사회복지, 주거, 의료, 세제, 상속 등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등 다양한 가족형태를 구성할 권리를 담고 있다.

이어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심상정 당시 정의당 후보가 ‘동반자등록법’ 공약을 발표했으며, 2018년 지방선거에서 김종민 당시 정의당 서울시장 후보와 신지예 당시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동반자 관계 증명 조례’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만큼 제도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많다는 의미다.

외국에서는 동성간의 동거와 결혼을 제도화해나가는 국가가 늘고 있다. 동성혼은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가 법제화한 이후 26개국에서 도입했다. 프랑스는 2000년 ‘팍스법’으로 불리는 ‘시민연대협약(Pacte civil de la solidarite·PACS)’을 제정해 동거 커플이 출산한 자녀에게도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와 동일한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대만은 2017년 동거혼을 법제화했다. 일본에서는 지자체별로 동성파트너십 등록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온적이다. 여성가족부는 국회와 논의해 건강가정기본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변화의 범위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남인순 의원의 개정안에 따르면 ‘가족정책기본법’으로 개정하고 ‘사실혼’을 혼인·혈연·입양과 함께 ‘가족’의 형태로 포함한다. 민법이 아닌 해당 법개정만으로는 사실혼에서 문제가 되는 상속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족구성의 다양성 논의에 앞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면서 “기존의 가족개념을 넘어서는 가족이라는 실체 또는 추상적 공동체에 대한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족구성의 재구축 방식은 법이 일정의 가족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다양화를 인정하는 것이다. 가족의 다양화를 인정하는 방식은 가족을 돌봄을 기반으로 한 친밀한 공동체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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