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정책연구원,
기본소득 9가지 모형
시뮬레이션 돌려보니

모든 경우의 수에서
상대적 빈곤율 개선 효과

매월 50만원 지급 경우
남성 빈곤율은 6.4%
여성 빈곤율은 12.5%

지난해 11월 20일 열린 ‘팔도 여성농업인과 함께하는 2018 국민행복나눔 김장축제’에서 참가자들이 김장을 하고 있다.  ©뉴시스
기본소득 지급 대상과 지급액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빈곤 위험에 처한 인구 비율을 가리키는 상대적 빈곤율을 개선하는데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빈곤율 개선 효과는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basic income)을 도입하면 빈곤이 개선될까? 기본소득 지급 대상과 지급액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빈곤 위험에 처한 인구 비율을 가리키는 상대적 빈곤율을 개선하는데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저소득층, 취약계층으로 갈수록 개선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빈곤율 개선 효과는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여성 빈곤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동일한 기본소득을 지급했을 때 남성은 빈곤선 위로 올라가는 계층이 많은 반면, 여성은 기본소득을 지급해도 지속적으로 빈곤선 아래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시뮬레이션 결과가 기본소득이 성별 불평등을 확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현재 남성과 여성 간에 소득배분에 있어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증적 결과”라며 “기본소득 제도를 통해 상대적 빈곤율을 상당부분 낮출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은 재산, 소득 고용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양극화로 심화되는 빈곤 문제를 완화하는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떠오르며 최근 정치권에서 도입을 두고 본격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정책 과제’ 보고서를 통해 기본소득 제도 9가지 모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발표했다. 설계된 9가지 모형은 시뮬레이션에 앞서 시민 1504명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많이 선택한 대상과 금액으로 구성했다.
모든 국민, 65세 이상 노인, 19~29세 청년 등 3가지 유형으로 지급 대상을 정하고, 급여액은 1인 가구 최저생계비(50만1632원), 최저생계비의 절반(25만861원), 1인 가구 중위소득의 50%(83만6052원)으로 정했다.
이번 조사에서 기본소득 도입 전 전체 국민의 상대적 빈곤율은 21.1로 남성은 17%, 여성은 24.5%였다. 먼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상대적 빈곤율은 모두 감소했다. 지급액 규모가 커질수록 상대적 빈곤율 감소폭도 컸다. 그러나 지급액 수준 세 가지 경우 모두 남성의 상대적 빈곤율 하락폭이 여성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매달 50만원이 지급되면, 남성의 상대적 빈곤율은 62.2% 떨어져 6.4%, 여성은 50.9% 하락해 125가 됐다. 25만원일 때는 남성 23.3%, 여성 16.7%로 남성의 빈곤율 변화가 더 컸다.
65세 이상 노인도 결과는 비슷했다. 전체 상대적 빈곤율은 48.9% 였으나 남성은 41.7%, 여성은 53.3%로 성별 격차가 컸다. 기본소득이 지급된 후 모든 경우에서 상대적 빈곤율은 하락했고, 지급액이 클수록 하락도 컸다. 50만원을 지급했을 때 남성의 상대적 빈곤율은 19.4%까지 떨어졌으나 여성은 30.7%에 그쳤다.
19~29세 청년들의 기본소득 지급 전 상대적 빈곤율은 6%로 낮은 수준이다. 남성 6.3%, 여성 5.8%로 성별 차이가 크지 않았다. 기본소득 50만원, 83만원을 각각 지급했을 때 상대적 빈곤율은 1% 밑으로 떨어졌다. 25만원을 지급해도 변화율은 60%를 넘어섰다. 청년 층에서 성별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우리나라 인구를 소득 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제일 가운데 위치한 사람의 소득인 중위소득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중위소득 50%를 빈곤선으로 잡고,
비율이 감소할수록 빈곤율이 개선된 상황을 뜻한다. 

<여성 50% “성별분업 완화 안될 것”>
“일하는 시간 줄이고 
육아·가사 더 한다”
돌봄 책임 부모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체계 필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시민 1504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8.9%가 기본소득 도입에 전반적으로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증세 여부와 사회보장제도 축소 여하에 따른 ‘조건부’ 찬성이지만 기본소득 제도 도입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증세되지 않고 기본 사회보장제도의 변화가 없는 경우에만 찬성’이라는 응답이 34%로 가장 많았고, ‘증세 되더라도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축소가 없는 경우에만 찬성’한다는 응답(25%)이 두 번째로 많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10.3% 였다. 우선 지급 대상으로는 65세 이상 노인(43.9%)을 가장 많이 꼽았고, 뒤 이어 모든 국민(22.3%), 19~29세(13.2%) 청년 순이었다. 적절한 급여는 월 50만원(40.8%)에 이어 83만원(22.7%), 25만원(22.4%) 순이었다. 
응답자 중 취업자 66%는 ‘기본소득과 상관 없이 현재하고 있는 일을 하겠다’고 답했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더 확보한다’는 응답자는 12.6% 였다. 여성의 경우, ‘근무시간을 줄이고 가사·육아시간을 더 확보한다’는 응답한 비중이 10.3%로, 남성(3.9%)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기본소득 논의의 한 축을 이루는 게 노동의 젠더 불평등 문제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기본소득 도입으로 여성의 무급가사노동과 돌봄노동 가치의 보상적 성격을 갖게 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의욕이 저하된다고 주장한다. 무급가사노동에 안주함으로서 성별분업을 고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기본소득 지지 학자들은 기본소득은 돌봄노동을 가치 있는 활동으로 인정하고 임금노동의 의존도를 줄여 궁극적으로 성별분업 완화하는데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의 성별분업 완화 효과에 대해 물었다. 응답자의 47%는 기본소득 도입이 가정 내 성별분업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으로 봤다. 남성 응답자의 30%는 ‘남성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어 가사·육아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17.9%에 그쳤다. 또 ‘여성이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므로 가사노동이 고착화 될 것 같다’고 답한 남성은 10.4%, 여성은 15.3%로 여기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여성들은 기본소득이 해소되기는 어렵다고 보는 경향이 컸다.
연구진은 “기본소득 제도가 성별분업을 포함한 성평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 제도 뿐만 아니라 장시간 근로 문화 개선, 다양한 모성보호 제도 및 일·가정 양립 제도의 실질적인 활용 등 근로문화의 변화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며 “돌봄의 책임을 부모가 공유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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