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교육개방 반드시 막아야죠”

성신여대 교육운동가 주향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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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살. 한창 취직 준비에 열을 올리거나 처음 맞는 사회생활에 설레일 나이다. 때로는 결혼의 문턱을 넘기도 하는. 그러나 올해 24세가 되는, 1년을 쉬었기에 스스로를 5학년이라고 부르는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주향미씨는 또래 여성들처럼 일과 결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에게는 과연 무엇이 중요한 걸까?

“WTO 교육개방을 반드시 막아야 해요.” 향미씨가 올해의 첫 번째 과제로 꼽은 것은 조만간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WTO 교육개방을 막는 일이다. “3월 31일까지 한국정부는 WTO에 교육개방 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에요. 만약 계획서를 제출한다면 교육개방은 시작된 거나 다름없죠.” WTO 교육개방, 무엇이 문제일까. “교육개방이 되면 다른 나라의 질 좋은 교육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거 같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죠. 돈 벌 궁리로 가득한 외국자본이 들어올 여지만 마련해줄 뿐이에요. 교육의 질도 보장 못해요. 아마 세계 유수의 교육기관들보다는 이름 없고 질 나쁜 곳들이 들어올 거에요.” 향미씨는 정부가, 외국인이면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는 법안도 검토중이라면서 안타까워했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 봤다. “외국의 교육자본이 마구 들어오면 우리는 비판 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게 될 거에요. 이미 우리는 문화적인 식민지잖아요? 거기다 나라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까지 식민지가 된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고 봐요.” ‘교육백년지대계야’라는 옛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향미씨는 “멕시코는 3∼4년 전에 교육을 개방했다가 그 전에 공짜였던 교육비가 7500배나 올랐어요. 우리나라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봐 걱정돼요.” 날카로운 지적이다.

나라의 미래를 우려하는 향미씨의 걱정은 오래 전에 시작됐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참여했던 학생회, 총학생회 활동은 자연스럽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었던 것. 성신여대 총학생회장, 교육학생연대 공동상임대표, 전국학생연대회의 임시 의장 등 그가 맡고 있는 직책만도 한둘이 아니다. “WTO 교육개방을 막는 것과 더불어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고 있어요. 새 판을 짜고 싶거든요.”

다부지게 말하는 그도 흔들릴 때가 있다. “자기를 가꾸는 데 신경 쓰고 미래를 설계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을 돌아봐요.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그런 내부의 동요가 제일 힘들죠.” 그래도 “세상을 바꾸는 데 한 걸음 동참하고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향미씨. 행동하는 그의 향기가 아름답다.

“고물수집 취미가 발명왕 만들었어요”

발명특기자로 중앙대학교 입학한 한아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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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걸이 건조대’를 들고있는 한아름씨.

“발명과 함께 커왔어요.”

초등학교 시절, 웅변을 너무 잘해서 웅변 특기생으로 대학에 갈 생각까지 했다는 한아름(20)씨. 그가 ‘웅변’이 아닌 ‘발명왕’이라는 이름을 걸고 중앙대학교 새내기가 됐다. 지난 2월 영동여고를 졸업한 아름이는 지난해 중앙대학교 2학기 수시 모집에서 기계공학부에 발명특기자로 합격하는 행운을 안았다. 그러나 우연이 아닌 준비된 행운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집 근처 고물상이나 폐차장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집어오곤 했어요. 고물 수집이 취미였죠.” 특히 아버지가 운영하는, 주유소 옆 폐차장은 아름씨의 어린 시절 놀이터이자 지금의 작업장이기도 하다. 그렇게 주워온 고물들은 모두 발명 재료로 쓰였다. ‘과학상자’라는 모형만들기 재료로 적극 활용한 것. 발명반에 들어가 ‘발명노트’를 쓰면서 아름이의 발명 작업에 불이 붙었다. 그의 발명 역사에 첫 작품으로 남을 ‘삼각걸이 건조대’가 이 때 만들어졌다. “가족과 놀러갔는데 빤 옷이 축축해서 다시 입기가 불편했어요. 그래서 옷걸이와 건조대로 쓸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들었어요. 여행갈 때 아주 쓸모있죠.” 한번 일기 시작한 불길은 멈출 줄 몰랐다. ‘미끄럼 방지 및 충격흡수 장치가 있는 목발’‘배력 장치를 응용한 대걸레 빨순이’‘미끄럼 방지 및 충격흡수 장치가 돼 있는 목발’ 등 많은 발명품이 쏟아졌다. 특히 ‘접촉면이 넓어 잘 닦이는 대걸레’는 실용신안등록을 받아 상품 가치를 인정받았다. 상복도 연이어 터졌다. 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 발명이야기대회 등 발명과 관련된 왠만한 대회는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발명가에게 ‘고난’은 약방의 감초. “대회가 코앞이면 야간자율학습을 빠져야 했고 방학은 대부분 발명하는 데 보냈어요. 공부할 시간이 적으니 성적도 당연히 별로였죠. 과연 내가 발명으로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의심이 들 때면 그냥 수능 공부를 할까도 많이 생각했어요.” 그러나 힘들 때마다 “사람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따로 있다. 친구들이 수능시험을 공부할 때 나는 발명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남과 똑같은 삶은 싫다.’ 아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간직해온 좌우명이다. 좌우명은 그대로 현실에서 빛을 발했다. “전국 발명대회에 나가려면 교내 대회에서 상을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영동여고에는 발명대회는커녕 발명만 조차 없었죠.” 입학하자마자 담임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을 쫓아다니며 발명대회를 만들어달라고 졸랐다는 아름이. 처음에는 별스럽게만 생각하던 학교도 끝내 그의 성화에 손을 들었다. 3년 동안 아름이 혼자만 참가했기에 외로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처음에는 관심이 없던 선생님이나 친구들도 나중에는 무엇이든 불편하다 싶으면 아름이를 찾아왔다. 어느새 아름이는 영동여고의 유명인사가 돼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사람들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해요. 발명은 똑똑한 사람만 하는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에요.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김치찌개에 어떤 재료를 더 넣으면 맛있겠다는 그 생각이 바로 발명의 시작인걸요.” 나중에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 획기적인 부품을 만들고 싶다는 아름이. 자기의 특성을 잘 살려 주입식 교육에 당당히 맞선 청년 발명가의 미래가 기대된다.

“수지가 누구냐구요?”

이화여대 수지침 동아리 ‘오!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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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수지’ 수지가 누구냐고? 여느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부르는 광경이라고 미리 단정하면 곤란하다. ‘오! 수지’는 이화여대 간호과학대학 내에 있는 수지침 동아리 이름. ‘오! 수지’ 회원들은 이화여대 종합사회복지관에 쑥뜸 혹은 금연초를 태우는 듯한 냄새를 진동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서양의학을 배우는 간호과학대학에서 동양의학으로 알려져 있는 수지침을 배운다니 조금 이상하다. “지난 2001년에 ‘오! 수지’라는 동아리가 생긴다는 광고를 봤어요. 수지침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아플 때 안마를 해주거나 다른 방법으로 돕기를 좋아하기도 했던 전력도 조금 작용했죠.” “어릴 때부터 고질병이 있었어요. 변비요. 변비에 수지침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들어왔어요. 정말로 많이 좋아졌어요.”

저마다 동아리에 들어온 이유를 신나게 늘어놓는다. 친구들이 “무슨 그런 동아리를 다 하냐”고 놀린다면서도 표정은 마냥 즐겁다. 고리타분하다는 친구들의 놀림도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 좋아서 하는 거니까.

이 참에 수지침에 대해 들어봤다. “1971년 우리나라에서 개발했어요. 몸에 놓는 침하고는 다르죠. 정식 이름은 고려수지요법이에요. 손에 침을 놓는 것만으로 몸 구석구석을 치료할 수 있어요.” 이 모임의 2대 회장인 배나영씨의 설명이다. 침을 놓을 줄만 알면 끝나는 걸까? 아니다. “공부할 게 많아요. 단순히 침만 놓는 게 아니거든요.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알려면 경혈 같은 것도 배워야 해요.” ‘오! 수지’ 회원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꾸준히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들은 수지침을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달 한번씩 이화여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처에 사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수지침을 놓아드리고 있다. “학교 근처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아요. 특히 여자분들이요. 우리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그분들도 잘 아세요.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외로우시니까 손녀딸 보는 마음으로 찾아오시는 거 같아요.” 친손녀 보듯이 잘해주시는 어르신들을 만나고 나면 이 활동이 그분들에 대한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배나영씨다. “동아리에 처음 들었을 때는 봉사활동에 안나갔어요. 그러다가 한 번 참가하게 됐는데 그 뒤로는 빠짐 없이 나가고 있죠.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거든요.” 올해 ‘오! 수지’를 이끌 선장으로 뽑힌 정윤경씨의 수줍은 고백이다.

“간호사라고 하면 주사 놓는 거만 떠올리는 분들이 많죠. 간호사는 의사를 도와주는 일 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돌봐주는 것도 중요해요. 어르신들의 혈압을 재거나 침을 놔드릴 때 정말로 조심스럽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환자의 입장을 저절로 생각하게 돼요. 간호사의 기본 자질을 여기서 습득하는 것과 다름없죠.” 정윤경씨는 이 활동이 그래서 더 만족스럽다.

‘고려수지요법과 간호학을 접목시켜 주위 분들에게 봉사한다.’ ‘오! 수지’가 만들어질 때 세운 동아리 지침이다. 그러나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다. 이미 그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조혜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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