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마련, 모두의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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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시간약속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이 또 있을까? 오후 3시에 전화한다고 말했으면 분명히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오전 11시에 만나자고 했으면 카페 문을 열고 11시 5분 전에 들어오는 사람… 그녀가 바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탄현마을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는 서은희(38) 씨다. 작은 체격에 반듯한 인상, 날카로운 눈매가 일에 있어서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 분야가 대충대충 할 수가 없는 직업이에요. 아파트나 단독주택, 상가 등의 매매나 전·월세를 중개하고 계약하게끔 주선하는 일이라서 매사에 빈틈 없고 완벽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지요.”

일찍부터 부동산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두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3년 전에야 이쪽 분야로 뛰어들게 됐다는 그녀는 보람도 있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광범위하게 일을 다 소화하기 힘들고 근무시간에도 제한이 많습니다. 게다가 가정도 같이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서 힘이 듭니다. 하지만 주부입장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 중개업은 남자보다 여성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봐요. 집을 보여주는 주부들도 부담을 안 느끼고, 또 주고객들도 여성이라 서로 편하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 부동산 실무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사소하며 자질구레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대부분의 남자 중개업자들이 견디기 힘들어하지요”.

전남 광산군 동하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전남여상을 나와 국민은행이 출자한 상호신용금고에 창업직원으로 당당히 취직을 했다. 일 욕심이 많아 비서실 2년, 창구 1년, 전산직 1년 등 각 분야를 섭렵했으나 신용금고가 제2금융권이라 여성차별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한다. 옷차림, 얼굴화장까지 일일이 남자상사로부터 지적받아야 했다. 그것까지는 겨우 참을 수 있었으나 고객 앞에서 남자상사가 억지로 그녀에게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분을 못 이겨 근무 중에 기절을 해버렸다. 그 뒤로 못된 남자상사는 그녀를 포함한 다른 여직원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그 사건으로 서씨는 직장에서 스타(?)가 되었다.

일상적인 여성차별도 못마땅했으나 여직원이 결혼하면 인격적인 모욕을 주면서까지 사표를 쓰게 만드는 회사 분위기에 질려 그녀는 과감히 사표를 내던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다 형부의 회사에서 만난 남자와 29세 때 결혼해 지금은 큰딸 주희(9)와 작은딸 여진(7)이를 기르며 네식구가 알콩달콩 살고 있다. ‘뱃살공주’ 큰애는 언니 노릇을 톡톡히 해서 ‘집안의 기둥’이고, ‘예쁜 여우’ 둘째는 자신의 일을 척척 알아서 하고, 아침마다 벌떡 일어나는 ‘집안의 알람시계’다.

“어릴 때 부모님이 쌀가게를 해서 우리 6남매를 키우셨어요. 그래서 항상 가난했고 생활력이 강했던 엄마는 맨날 일만 하셨어요. 너무 고생만 해서 여유나 베푸는 것을 잘 모르는 분이라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어렸을 때 나는 절대 가게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건만 나 역시 내가 싫어하는 엄마 모습이 돼버린 것 같아 우리 딸들에게 미안할 적이 많아요.”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 날마다 스트레스를 받지만 특별히 따로 해결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다는 그녀는 저녁식사 후 남편과 단둘이 소주 한 잔 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푼다.

“진짜 용기 있고 똑똑해 보여서 오숙희씨를 참 좋아했어요. 제가 책 읽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요즘은 내 인생을 조금씩 도둑 맞는 것 같아요. 마음의 거울(책)을 볼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내 자신이 너무 싫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두 딸이 큰 힘이 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 있으면 예쁜 친구 둘이 생긴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지요”. <혼불>과 <고요한 돈강>을 감동적으로 읽었다는 서은희 씨, 그녀의 작은 소원은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다.

유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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