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다큐멘터리 ‘섹스 동맹 - 기지촌’ 연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이모현 PD

우습게도 세상에는 감추려 하면 할수록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설프게 얹어놓은 선생님의 가발 밑에 감춰진 대머리가 그렇고, 아무리 모른 척하려 해도 표정으로 드러내고 마는 감정이 그렇다. 이 정도의 비밀이라면 귀엽게 넘겨줄 수 있지만 역사 앞에서 반드시 밝혀야 하는 비밀이 있다. 그것도 ‘개인의 선택’으로 포장된 ‘국가적 횡포’라면, 더구나 불평등한 한미 관계를 유지시켜주기 위한 불행한 사생아, ‘미군 기지내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 관한 얘기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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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절된 한미관계에 의해 희생된 미군 기지내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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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동맹-기지촌’ 연출 이모현 PD. <사진·MBC>

지난 9일 MBC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방송된 ‘섹스 동맹 - 기지촌’은 말 그대로 충격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미간의 굳건한 안보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양국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미군 기지내 성매매에 관한 내용이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 정부의 지원 아래 만들어진 ‘군산 아메리칸 타운 - 군대 창녀 주식회사’와 기지촌 정화운동은 역사의 언저리에 묻혀 있던 얘기를 사실 그대로 보여줬다.

방송작가 김인정씨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더 늦기 전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 아닌가 하는 안도감마저 들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기지촌 여성이었던 윤금이씨가 당한 처참한 죽음이 한 불행한 여성의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국가관계 속에서 빚어진 ‘방치된 죽음’이었다는 점, 또한 굴절된 한미 관계와 왜곡된 외교사를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불행한 우리 역사의 증거물인 기지촌과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했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공간 기지촌. 그래서 기지촌을 말할 때면, 미군이 좋아 몸 팔러 들어간 부도덕한 여성들의 개인적 돈벌이로 애써 폄하하려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생생한 육성 증언으로 밝힌 연출가 이모현(36)씨를 만났다. 그는 1991년 문화방송에 입사해 〈10시 임성훈입니다〉, 〈피디수첩〉, 〈TV속의 TV〉, 〈다큐멘터리 성공시대〉, 〈와! e 멋진 세상〉 등 시사교양 분야를 두루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유일한 여성 연출가이다.

- 특별히 기지촌 문제를 다룬 이유라도 있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연출팀에 참여하면서 여성문제나 기지촌 문제에 관해 다뤄보고 싶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하며 현재와 연관된 예민한 부분을 많이 다뤘지만 여성 부분이 빠졌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다.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내가 여성이라 그런지 여성과 관련한 문제들을 다루게 되고 이번 주제는 예전부터 생각해 과감하게 시작한 것이다. ”

-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라면.

“기지촌 정화운동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을 섭외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인터뷰는 물론이고 기억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라 신뢰성을 주기 위해서는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하는 것보다 모습 그대로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 힘들었다. 또한 인터뷰를 한다고 본인들의 삶이 특별히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 거부했다. 그런 점에 있어 인터뷰를 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 기지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는가.

“기지촌 정화운동이나 군산 아메리칸 타운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또한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기지촌을 중심으로 한 성매매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서는 누구나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임을 말하고 싶었다. 절대 빈곤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지촌으로 흘러 들어갔던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남은 건 여전한 가난과 변태적인 미군 범죄에 대한 두려움, 사회의 멸시와 냉대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들의 자리를 필리핀과 러시아의 가난한 여성들이 들어와 똑같은 방식으로 메우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

- 이 프로그램을 보고 정부의 반응은 어떠했나.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올해 처음 방송한 ‘전쟁위기’ 같은 프로그램은 인수위에서 보라고 서로들 권하기도 했다는데 여전히 여성들의 문제는 소외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 군산 아메리칸 타운이나 기지촌 정화운동 관련 담당자와 인터뷰하기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쉬웠다. 그들은 아직도 성매매 여성들은 정부 덕분에 성병을 고쳤고 외화도 벌었다며 자랑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이면에 깔린 ‘성매매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너무 끔찍했다. ”

- 현재 어떤 주제를 준비하고 있나.

“소파(SOFA)에 대한 내용이다. 여중생 사건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소파를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파는 단순한 하나의 협정이 아니라 1945년 이 땅에 미군이 처음 발을 딛은 이후 한미 관계를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1966년 소파 체결 당시 한미 양국의 상호 이해 관계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 투쟁과 전략촵전술, 대타협의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이다.”

동김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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