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미술관 ‘여성의 일’ 전시회
11명의 작가가 선보인 여성의 불안과 희망
아름다움에 가려진 멍 자국, 좀비 같은 여성 등
“‘조용한 목소리’로 현시대에
반응하는 여성작가들의 작품”
2월 24일까지

노승복 작가의 '1366 프로젝트'는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은 매 맞은 여성들의 멍 자국을 사진으로 확대한 작품이다. ⓒ서울대미술관
노승복 작가의 '1366 프로젝트'는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이 사진은 매 맞은 여성들의 멍 자국을 사진으로 확대한 작품이다. ⓒ서울대미술관

미술관은 조용했지만, 벽에 걸린 전시품들은 여성들의 고통과 불안을 외치고 있었다. 팔이 잘린 마네킹이 담긴 그림부터 피범벅이 된 여성의 모습은 여전히 여성들의 버거운 현실을 말해주는 듯했다.

지난해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운동이 거세게 불면서 한국 사회에서 여성주의 운동은 격변기를 맞이했다. 많은 여성이 거리로 쏟아져 성평등을 외쳤다. 지난달 27일부터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여성의 일’은 현재 격렬한 여성주의 움직임의 반대편에 선다. 조용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로 여성이 처한 현실을 담는다. 고등어, 노승복, 리금홍, 박자현, 양유연, 임춘희, 장파, 정정엽, 정혜윤, 조혜정, 홍인숙 등 11명의 작가가 모였다.

지난 11일 방문한 전시회장에서 가장 선명하게 들어온 작품은 노승복 작가의 ‘1366프로젝트’였다. 분홍색과 보라색이 가득 담긴 정사각형의 작품은 얼핏 보면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 속에 감춰진 진실을 알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1366’은 ‘여성폭력 긴급 전화번호’이다. 노 작가는 매를 맞아 생긴 여성의 멍 자국 사진을 확대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여성’하면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의 단면을 비판한다.

박자현 작가의 '무제'. '20대 비정규직 여성'의 불안함을 담았다. 사진처럼 보이지만 점묘화다. ⓒ서울대미술관
박자현 작가의 '무제'. '20대 비정규직 여성'의 불안함을 담았다. 사진처럼 보이지만 점묘화다. ⓒ서울대미술관
장파 작가가 그린 '여성기'. 여자의 성기는 남자의 욕망 충족 대상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대상이기도 하다. ⓒ서울대미술관
장파 작가가 그린 '여성기'. 여자의 성기는 남자의 욕망 충족 대상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대상이기도 하다. ⓒ서울대미술관

박자현 작가의 작품은 처음에는 마주하기가 무섭다. 팔이 잘리거나 눈에 초점이 없다. 마치 좀비 같은 같다. 얼핏 보면 사진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점묘화다. 박 작가가 '20대 비정규직의 여성'을 주제로 한 그린 작품이다. 이는 고용 불안에 노출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여성을 뜻한다. 김태서 학예연구사는 "점묘화는 노동집약을 뜻하기도 한다. 수 많은 점을 찍어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점은 뭉쳐있으면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바람이 불면 날아간다. 여성들의 불안을 뜻한다"고 했다.

여성의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작품도 있다. 미술관 한쪽 벽에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모양체가 잔뜩 그려져 있다. 장파 작가가 그린 여자의 성기다. 성기이지만 위화감이 들기보다는 궁금증이 생긴다. 모양도 다양하다. 여성의 성기는 남성의 욕망 대상이지만 여성 스스로에게도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성기에 있는 수많은 돌기는 눈을 뜻한다. 욕망의 대상을 적극적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전시회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여자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 등의 티셔츠가 걸려 있다. ⓒ김진수 기자
전시회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여자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 등의 티셔츠가 걸려 있다. ⓒ김진수 기자

전시된 미술품이 무겁게 느껴질 것 같다면, 전시회장인 3층으로 올라오기 전 2층에 전시된 물품들에 집중해보자. ‘여자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 등의 페미니즘 문구가 쓰인 티셔츠와 민서영 작가의 『쌍년의 미학』,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 등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의 일부분을 볼 수 있다. 시민들을 중심으로 여성운동이 적극적으로 시작한 2016년 이후 한국사회에 퍼진 콘텐츠들로 꾸며져 있다. 젊은 감각이 느껴지는 이 콘텐츠를 접하고 나면, 미술품을 접할 때 무겁기보다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전시는 오는 2월24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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