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 그림으로 옷을 입히니 골목길이 화사해졌죠”
“전봇대에 그림으로 옷을 입히니 골목길이 화사해졌죠”
  • 채윤정 기자
  • 승인 2019.01.17 15:58
  • 수정 2019-01-18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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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독산 4동 공동체 마을
2015년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희망동' 선정
재활용 통해 쓰레기 문제 해결
공유주차, 공유상자, 공유우산 등 공유 실천
마을 애정 가득한 주민들
골목 개선에 팔 걷어부쳐
서울 금천구 독산4동주민센터 앞에서 (왼쪽부터) 조영진 마을 사업 전문가, 육연숙 독산4동 주민자치위원, 안지성 금천마을공동체센터장, 주은경 전 독산4동주민센터 마을자치팀장이 독산4동을 뜻하는 ‘4’를 손가락으로 표시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독산4동주민센터 앞에서 (왼쪽부터) 조영진 마을 사업 전문가, 육연숙 독산4동 주민자치위원, 안지성 금천마을공동체센터장, 주은경 전 독산4동주민센터 마을자치팀장이 독산4동을 뜻하는 ‘4’를 손가락으로 표시하고 있다.

30~40년 된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지역이 재개발돼 자기가 살던 집을 허물어지고 20층이 넘는 최신식 아파트가 들어서기를 꿈꾼다. 이와 반대로 자신들이 살던 골목에 대한 강한 애정 때문에 주민들이 직접 나서 골목을 깨끗히 정리하고 예쁘게 새단장해 살맛나는 골목으로 꾸민 마을이 있다. 서울 금천구 독산4동 공동체 마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0.59㎢ 면적에 인구 1만6472명이 거주하는 독산 4동은 대표적인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로 꼽히는 데 도시재생은 신도시 위주의 확장으로 상대적으로 낙후된 기존 도시에 새 기능을 도입해 쇠퇴한 도시를 부흥시키는 도시 사업을 말한다. 이 마을의 골목길은 금천구청 및 독산 4동 주민센터 등 정부와 마을 주민이 힘을 합쳐 일궈낸 성과다.

독산 4동의 한 카페에 이 마을을 변화시키는 데 힘을 보탠 여성 전사 4명이 모였다.

올해 초 금천구청 독서문화팀장으로 발령나기 전까지 독산 4동 주민센터에서 마을자치팀장으로 3년간 근무했던 주은경(49)씨는 직접 마을 현장을 발로 뛰다 보니 주민들의 개인 사정까지 꿰고 있을 정도로 마을 전문가가 됐다. 주 팀장이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마을 어르신들이 “빨리 이 마을 동장으로 와야지”라고 말을 건넨다.

와인 소믈리에였던 조영진(44)씨는 임신을 한 후 심한 입덧에 시달렸다. 그 상태로 금천구 시흥동에서 분당까지 출퇴근이 불가능하다보니 자연스레 경력 단절이 됐다. 출산 후 아이가 있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이후 시흥동에서 선배엄마로서 육아 상담을 해주는 ‘우리 동네 보육 반장’으로 일했다. 그러다 계약직 공무원에 뽑혀 독산4동과 인연을 맺게 됐고 2015년 7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마을사업 전문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독산4동을 포함한 10개동을 관장하는 금천구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하필이면 전봇대 옆 주택에 거주하다 보니 가정주부인 육연숙(49)씨의 집 앞에 쓰레기가 담긴 하얀 봉투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집 앞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감시하며, 주민센터에 자주 건의를 했고 더 적극 나서야겠다는 생각에 아예 8통 통장을 맡았다. 또 2017년 생긴 주민자치회의 주민자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일요일에는 독산 4동 새터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목사인 금천구 마을공동체센터 안지성 센터장(48)은 청소년들을 위해 활동하다 2017년 6월 센터장으로 발탁됐다. 안 센터장은 “목사이지만 지역에 도움이 필요한 일을 맡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며 “처음에는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들을 위한 공부방을 했는데 당시 보살핌 받지 못한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서도 여전히 방치된 것을 보고 새터교회 공간에 청소년단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4동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작은도서관에서 마을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금천구 독산4동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작은도서관에서 마을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독산 4동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15년부터이다. 서울시에서 7월부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에 참여할 구를 모집했다. 독산 4동은 운 좋게도 주민이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희망동’에 선정됐다. 금천구는 전문 상담을 맡을 사회복지 주무관 55명, 마을 어르신과 아이들 건강을 챙길 방문간호사 19명, 동네 프로젝트 기획을 도울 마을전문가 7명 등 총 81명의 인력을 충원했다. 이들이 10개동을 나눠서 담당하고 있다.

독산 4동 주민센터는 또 전국 최초의 민간인 동장을 모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황석연 동장이 2016년 1월 민간인 동장으로 취임해 2년간 근무한 후 퇴임했는데 주은경 팀장이 현장 업무에 투입됐다. 그 당시 황 전 동장은 1층 민원실 구석으로 동장 자리를 옮겼다. 3층은 동장실 벽을 허물고 아예 주민들이 편하게 회의를 할 수 있게 했다. 또 2층에 있던 어린이 작은도서관이 리모델링을 마쳐 아이와 부모들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게 공간으로 변신했다. 주민센터는 골목길을 변화시키는 일을 주도할 마을총회를 설립하기 위해 손편지를 돌리면서 홍보해 관심 있는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는 노후한 단독 주택이 대부분이다 보니 쓰레기를 자기 집 앞에 버리는 문전수거 방식으로 처리되는 데 거리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청소업체가 쓰레기를 치우는 비용만도 연 2억8000만원이 소요되자 황 전 동장이 직접 골목에서 쓰레기 분리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육연숙씨를 포함한 주민들의 노력 끝에 골목 60여군데에 ‘재활용 정거장’을 마련했다. 또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 3시~9시까지 쓰레기를 분리 업무를 담당할 ‘도시 광부’ 60여명을 모집했다. 도시 광부는 폐품에서 유용한 자원을 캐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특별하게 지어진 이름이다. 대부분이 60대 이상인 도시 광부에게 매달 40만원을 지급하는데 독산 4동에 65세 이상 어르신이 3982명이나 되다 보니 경쟁도 치열하다.

재활용정거장에서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있는 도시광부 양영숙 씨. 독산4동에는 60개의 재활용정거장이 운영되고 있어 매주 화·금요일에 각 정거장마다 도시광부들이 재활용 쓰레기 분리 안내와 작업 등을 진행한다.
재활용정거장에서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있는 도시광부 양영숙 씨. 독산4동에는 60개의 재활용정거장이 운영되고 있어 매주 화·금요일에 각 정거장마다 도시광부들이 재활용 쓰레기 분리 안내와 작업 등을 진행한다.

이 날 재활용 정거장에서 분리수거를 진행하던 양영숙(65)씨는 “오늘 같은 추위에 6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야 하는 점이 힘들고, ‘왜 분리해야 하느냐’며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러나 많은 주민들과 친분도 쌓고 골목이 깨끗해져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 지역의 재활용률이 서울시 평균보다 2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좁은 골목길에 차들이 쌩쌩 달리다 보니 위험해 큰 화분을 골목의 시작과 끝에 설치해 차들이 이 화분을 끼고 돌면서 속도를 낮추게 했다. 또 거리 곳곳을 버려진 의자 위에 화분들을 올려놔 예쁘게 거리를 장식했다.

한 골목길에는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가 큰 문제가 됐다. 동장과 주민들이 아무리 전단을 떼어도 새 전단지가 붙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 골목에 35년을 산 이수정(71)씨가 전봇대에 그림을 그릴 것을 제안했고, 그 위에 코팅을 해 전단지가 붙지 않도록 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칠을 맡을 자원봉사자가 절실할 때 직접 나섰다. 그는 “10년 이상 된 우체통도 심하게 녹 쓸어 전봇대와 함께 칠하기로 했다”며 “동네의 친한 사람들에게 같이 하자고 해 여성 4~5명이 칠했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고 말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을이 예뻐진다는 생각에 신이 났고 페인트하는 모습을 사진도 찍으며 즐겁게 일했다고 말한다. 최종 작업에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꽃을 전봇대에 그려 넣었다. 그 결과 골목길도 알록달록 화려해졌지만 전봇대에 단 한 장의 전단지도 보이지 않는다.

골목 전봇대에 무분별하게 붙은 전단지를 차단하기 위해 전봇대에 그림을 그릴 것을 제안한 이수정 씨는 독산4동에서 35년째 거주하고 있는 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원주민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골목 전봇대에 무분별하게 붙은 전단지를 차단하기 위해 전봇대에 그림을 그릴 것을 제안한 이수정 씨는 독산4동에서 35년째 거주하고 있는 이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원주민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마을에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지다 보니 문화 행사에 대한 요구도 늘어났다. 2017년부터 차량을 통제하고 골목에서 초등학생부터 청년들,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참여하는 ‘골목 운동회’를 1년에 1번씩 개최한다. 주은경 팀장은 “여기 먹자골목에서 아침부터 단체줄넘기, 동네한바퀴, 팔씨름, 줄넘기 등을 같이 하며 웃다보면 마을 주민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어우러진다"고 말했다.

현재 독산 4동 주민자치회장을 맡고 있는 강신환(69)씨는 2014년 마을을 바꾸기 위한 논의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 한 이 마을의 산 증인이다. 강 씨는 물놀이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들이 여름에 물놀이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마침 한 성당에서 주차장을 대여해줘 큰 풀을 설치하고 2~3주 동안 물놀이장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4~6명의 물놀이 안전요원이 배치돼야 해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도 컸다”고 설명했다. 물놀이장은 이후 이 동네의 여름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주민자치회에는 39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여성이다.

독산4동 골목길을 바꾸는 일을 처음에는 관이 시작했지만 그 권한을 주민들에게 기꺼이 내주면서 마을 주민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중심이 됐다. 그 결과, 마을 주민들이 서로 마주칠 때마다 깍듯이 인사하고, 집안 안부도 묻고, 따뜻한 음료도 나눌 수 있는 향기 나는 마을로 바뀐 것이다.

 

강신환 독산4동 주민자치회장이 11일 독산4동주민센터 앞에 설치된 공유상자에 안 신는 신발을 넣고 있다. 공유상자는 재사용 할 수 있는 물건을 나눠 쓰기 위해 설치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신환 독산4동 주민자치회장이 11일 독산4동주민센터 앞에 설치된 공유상자에 안 신는 신발을 넣고 있다. 공유상자는 재사용 할 수 있는 물건을 나눠 쓰기 위해 설치됐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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