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김지은씨의 호소 “미투 고민해야 하는 사람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
[전문] 김지은씨의 호소 “미투 고민해야 하는 사람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9.01.09 23:16
  • 수정 2019-01-09 2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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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안희정에 징역 4년 구형
“전형적 권력형 성범죄”
1심은 ‘무죄’ 판단
다음달 1일 2심 선고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는 9일 “다시는 미투를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항소심 재판부에 호소했다.

김씨는 이날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변호사를 통해 최후진술서를 전달했다. 검찰은 이날 1심과 마찬가지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라며 “그는 이런 자신의 지위와 권세, 업무상 특수관계를 이용해 피해자 불러내 강간하고 추행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날 최후진술에서 “저에게 미투는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힘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다”며 “말하고 나서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당할지 모를, 그리고 살더라도 죽은 것 같이 살아가야 할, 자살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그간의 고통을 털어놨다. 이어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힘겨웠지만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다시금 참고 견뎌냈다”고 말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김씨를 향해 쏟아진 비난에 대해서도 “성실히 살아왔던 제 인생은 모두가 재판 중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사용됐다”며 “피해자답지 않게 열심히 일해 왔다는 이유였습니다. 살아가기 위해들인 저의 성실함은 일반적인 노동자의 삶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모습으로 평가 받았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재판부를 향해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자신이 가진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며 “막대한 관계와 권력으로 진실을 숨기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의 지엄함을 보여달라”며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판단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호소했다.

다음은 김씨의 최후진술서 전문이다.

피해자 김지은입니다.

마지막 발언의 기회를 허락해주신 재판부께 감사드립니다.

피고인에게 당한 피해 사실을 고발하고, 11개월이 지났습니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 ‘진실’을 말하기까지 저는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피고인은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였고 미래 권력이었습니다. 미래 권력은 현재진행형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정재계에 이르기까지 피고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당연히 차기 대통령이라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피고인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피고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유명세를 함께 누렸고, 외부의 많은 사람들은 피고인과 알고 지내기를 바랐습니다. 사회 곳곳에 관계 맺어 다각도로 생물처럼 뻗어나가는 살아 움직이는 거대 조직, 그 자체가 피고인이었습니다.

그런 피고인을 향해 미투를 한다는 것, “지금 당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안희정 개인에게만 한정된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진 정치적 지위와 관계 맺은 수많은 이들에 맞서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미투는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힘과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고 나서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당할지 모를, 그리고 살더라도 죽은 것 같이 살아가야 할, 자살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죽게 되더라도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의 사과를 듣고 한번으로 끝날 것 같던 성폭행 피해는 반복되었고, 지난해 2월이 되어서야 저는 영원히 도망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번의 피해는 제게 처음과 같았고, 반복되는 굴레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미투를 한 직후 제 가족들까지 언급하며 허위 사실들이 유포되었습니다. 수많은 악플들이 달렸고, 거짓 사진과 글들이 마치 사실인양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이들 중에는 안희정 지사의 측근들도 있었고, 정당의 주요직을 맡은 사람도 있었으며, 팬클럽 회원들도 있었습니다. 최근 한명 두명 유죄 판결을 받아 벌금형에 처해지고 있지만, 2차 피해로 인한 제 삶은 이미 망가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고발할 때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찰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검찰 진술에 성실하게 임했습니다. 마치 제가 가해자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하게 심문 받고 답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 진술의 진실성을 검증 받았습니다. 며칠에 걸쳐 제 휴대폰과 주변 모든 내역들까지 조사 받았습니다. 제 진술이 진실되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검찰이 피고인을 기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자신의 휴대폰을 파기했습니다. 피고인이 떳떳했더라면 왜 그 휴대폰을 파기하고, 파기한 사실도 그토록 숨기려 하였을까요? 아무리 거대한 손이라도 인간의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심 재판정에서의 진술은 16시간이 걸렸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재판 내내 피고인이 기침소리를 낼 때마다 제 심장은 요동치고 정신은 점점 더 혼미해졌습니다. 피고인이 제 바로 옆에서 저를 압박하고 조여오는 것 같아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냈습니다.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참아내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장시간 오한을 견뎌가며 경험한 그대로를 말씀드렸습니다.

1심이 끝났고,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매일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피해 사실을 모두 잊어버리고 고통을 이겨내고 싶었지만, 2심에서 다시 진술해야 했기에 기억조차 지워버릴 수 없었습니다. 2심 본 항소심의 진술을 위해 지난 12월 21일 법원으로 오기까지 차라리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 이 세상을 외면할 수 있다면 편하지않을까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2심 재판부에서 진술하였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힘겨웠지만 피고인의 범죄 사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다시금 참고 견디어내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24시간 업무 중인 비서에게 상사의 지위는 24시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그것을 고의적으로 성범죄에 이용한 가해자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합니다. 성실히 살아왔던 제 인생은 모두가 재판 중 가해자의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피해자답지 않게 열심히 일해 왔다는 이유였습니다. 살아가기 위해들인 저의 성실함은 일반적인 노동자의 삶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피해자다움과 배치되는 모습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일을 그만 두고 캠프에 간 것은 팬심에 의한 것이었고, 근무 시간의 제한 없이 일에만 매진해야 했던 것은 피고인이 좋아서였다는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변에 이야기해도 도움 받지 못해 이후 전혀 티내지 못했던 것은 피해자다움과 어긋난다는 이야기로 해석되었습니다. 전임 남자수행비서들이 꾸준히 일상적으로 해왔고 수행비서의 기존 업무 중 하나였던 숙소 예약은 관계를 원해 한 셀프호텔예약으로, 피고인이 갑자기 기존 일정을 취소하고 식당에 가겠다고 하여 급히 통역인 부부와 함께 동행한 레스토랑은 단둘이 간 와인바로 바뀌었습니다.

만약 당시 정상적인 노동자로서의 삶을 보장받기를 요구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피해자다운 것이 업무를 외면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사는 것일까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하루의 업무가 절실했던 제가 당장 관두고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을까요? 평판이 존재하는 정치 영역에서 이미 안희정 사단으로 꼬리표가 붙은 제가 어디에 가서 직장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피고인측이 쏟아내는 거짓, 왜곡된 주장들에 이쯤이면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매번 새롭게 상처받고 찢겨집니다. 그동안 지독히도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피고인과 주변 사람들의 반성 없는 태도에 괴로웠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저와 잘 지내던 동료이기도 했습니다.

피고인이 제게 했던 성폭행 직후의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다음 범죄를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 죄송하다.’고 미투 직후 게시글을 작성했지만,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고인은 이 내용을 부인하였습니다. 아직까지 피고인에게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지 못했습니다.

제게 피고인은 처음부터 일을 그만두는 순간까지 직장 상사였습니다. 한번도 이성의 감정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일반 직장인들이 가지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 애사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은 저와 이성적인 관계였다고 말합니다. 언론에 이런 관계를 입증할 사진이라고 언급한 사진은 수행 업무 중 뒤에 서 있던 모습이었습니다. 업무상 가까이 서 있던 모습을 연인관계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하였습니다. 피고인에게 연인 관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누가 제게 미투를 상담한다면 저는 선뜻 권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미투를 말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지난 11개월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함께 진실을 말해주는 분들이 겪은 수많은 어려움을 보아왔기에 이 과정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전해줄 것입니다. 제가 그 고통 속 다행히도 생존해 있을 수 있는 건, 미약한 저와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였습니다. 숱한 외압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목소리를 내주는 분들이 계셨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미투를 고민하는 분께 제가 겪은 그 동안의 일들을 모두 말씀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판장님.

부디 사건의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해주시어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판단을 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아무리 힘센 권력자라도 자신이 가진 위력으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막대한 관계와 권력으로 진실을 숨기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의 지엄함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다시는 미투를 고민해야하는 사람이 이 땅위에 나오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간절히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19. 1. 9.

피해자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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