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이 남자, 이 여자를 뛰어넘어
[여성논단] 이 남자, 이 여자를 뛰어넘어
  •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승인 2019.01.12 06:05
  • 수정 2019-01-11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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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정부 지지율 감소 당연
남성도 가부장 사회의 피해자
구조적인 경제적 불평등 지워져

편가르는 저들을 뛰어넘어
가부장적 억압 함께 싸우길

 

이영자.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작년 말부터 이십대, 영남, 자영업자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 현상에 대해 박지원 의원이 붙인 이름이다. 보수 언론과 정당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영자를 호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십대 남성에 집중했다. ‘이영자’보다 ‘이남자’의 변심이 더 심각한데 그 이유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평등 정책이라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은 아예 ‘이남자’를 타깃팅해 노골적으로 구애하고 있다. 현재 이십대 남성이 당하는 역차별이 ‘공정사회’를 발목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워마드가 신적폐라며 해당 사이트 없애는 것을 2019년의 목표로 삼았다. 목표가 소박하기 짝이 없기도 하거니와 수전 팔루디의 책 『백래시』의 한 페이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이십대의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 감소는 당연한 결과다. 젠더가 문제가 아니다. 현재 청년세대는 미래에 희망을 품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는 소득/자산 불평등, 살인적인 주거문제, 실업률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올해 청년 일자리 예산은 축소되고, 경제 민주화나 토지 정의를 향한 민주당의 공약은 사라졌다. 지지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채용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채용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십대 여성이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비판적 지지처럼 보인다. 웹하드 카르텔, 낙태죄 폐지, 안희정 항소심 등 작년에 풀지 못한 여성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그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지켜보고 있는 와중인 것이다.

이 상황에서 보수정치권이 ‘이여자’에 맞서 ‘이남자’를 꺼내들었다는데 분노한다. 이삼십대 남성이 권력자라서가 아니라 그들 또한 가부장 사회의 피해자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받고 있는 구조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동생을 보며 또 아버지를 보며, 또 남자친구들을 보며 남성이 받는 고통이 적지 않음을 느낀다. 아버지는 갓 초등학교 들어간 남동생을 태권도 학원에 보냈다. 남자애가 비리비리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남자라면 이래야지, 이 정도는 벌어야지 가부장제가 정해놓은 남성성에 맞추어 평생 스스로를 재단해왔다. 군대는 또 어떤가? 군부대 내 인권은 형편없으며 수많은 이들이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을 정도로 끔찍한 폭력의 현장이다. 작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미투의 발화자였다. 문화 예술계에서, 군대 내에서 수직적인 위계질서 아래 성폭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발하는 주체였다. ‘이남자’라는 정체성은 이 모든 것을 삭제시킨다.

최태섭 평론가 『한국남자』에서 지적했듯 지배자-남성들은 혐오를 부추기며 피지배자-남성에게 여성이라는 좋은 먹잇감을 던져주고 있다. 결국 ‘이남자’는 지배자-남성들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막는 동시에 피지배자-남성을 이용하는 수단이다.

이남자와 이여자를 구분짓는 저들의 언어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이천년대 초반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의 첫 졸업생은 “학교는 늙은 아버지같다”며 무능하고 늙은 권위 아래 수많은 학생들이 복종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학교는 돌봄의 감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상위 학생만 관리하고 그 외에는 없는 것인냥 취급한다. 철저한 서열화는 대다수의 청소년들에게 열패감을 안긴다. 수년간 올라서지 못하면 깔아 뭉게진다는 생존 의식이 체화된다. 이십대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에서부터 시작된 전 사회적인 문제다. 잘 들여다보면 이십대 여성도 피해와 고통의 줄세우기에 더 익숙하다. 여권이 올라가면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감각과 페미니즘에 성소수자, 장애인 인권을 섞으면 여성은 사라진다는 감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일련의 흐름은 생물학적 여성만을 여성으로 한정했던 2018년 광장의 한계에서 시작한 것일 수 있다. 주디스 버틀러는 페미니즘의 ‘여성’은 닫힌 개념이 아니라 열린 개념이라고 말한다. 올해 생물학적 여성이 아닌 페미니스트들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길 희망한다. ‘이남자’, ‘이여자’라고 구분지어 편가르는 저들의 말을 뛰어넘고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는 가부장적 억압과 성폭력 문화에 함께 싸우면 좋겠다.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 나는 여성이자, 성소수자이자, 다리가 부러졌을 때는 장애인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대학을 가지 않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했으며, 아시아인이다. 또한 정체성은 유동적이다. 나는 청소년이었다가 지금은 청년이지만 결국 노인이 될 것이다. 비인간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가해자일 수 있고, 또 성폭력의 경험이 있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왜 내가 흑인 남성의 삶과 연결될 수 없단 말인가? 지금 당장의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정체성이 아니라 맞닿아있는 교차점에 주목하면 거기서부터 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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