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영 /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지난 주 시정의 화제는 대북송금을 둘러싼 정치적 시비를 제외하면 단연 개그우먼 이경실이 남편의 야구방망이에 전치 4~6주의 중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처음 일간지는 이를 사회면 한 귀퉁이에 가십거리처럼 보도하다가 이후 사건의 의미를 되새김하는 사설, 기획기사를 내놓았다.

방송은 9시뉴스에서 가정폭력의 보편성과 심각성을 보도하는 외에 가정폭력에 소극적인 공권력(경찰)의 태도를 문제삼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나 다소라도 세상물리가 튼 우리 여자들에게 이 사건은 충격적이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5개 공중파 연예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재기발랄한 입담을 펼치며 월수입이 5천만원 가량인 잘 나가는 스타도 매맞고 사는 많은 대한민국 여자들 중 하나였음을 확인하는 것 이외의 다른 감회는 없었다. 또 그녀가 평소 유별난 부부금실을 과시해 왔다는 사실도 그다지 배신감을 주지 않았다. 대외용으로 화목한 부부관계를 위장한 채 피멍든 속내를 다독이며 사는 고소득, 고학력의 여성들이 많다는 것도 상식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성역’없는 가정폭력의 무차별성과 보편성을 다시 확인하는 이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터질 때마다 짚어야 할 일은 짚어야 하는 것이 가정폭력 문제이다. 오늘의 되짚기 주제는 가정폭력을 ‘살다보면 있을 수 있는 일’로 간주하거나 ‘법이 아닌 가정에서 부부끼리 해결하는 것이 옳다’는 식의 도착된 도덕의식이 공공연히 ‘사람 사는 이치’로 운위되고 있는 우리의 집단적 미망(迷妄)에 관한 것이다.

가정폭력을 범죄가 아니라 정상적인 ‘인간사’로 간주하는 것은 섬뜩한 범죄와 폭력에 익숙해진 탓에 칼과 망치까지 동원되는 부부싸움 따위는 ‘일거리’로 여기지 않는 검찰, 경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다수가 가정폭력을 정상시하는 엽기적인 담론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도착된 상식은 가정을 보금자리, 둥지, 귀소, 안식처, 스위트홈으로 규정하고 그래서 법으로부터, 공권력으로부터, 외부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집단적 미망과 뿌리깊게 연루되어 있다.

가정(결혼)은 순결하고 완전한 사랑의 공간이며 피로 맺어진 절대의 사적 공간이므로 외부의 어떤 간섭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는 이 집단적 미망은 가정을 외부의 시선, 공적 감시기관의 관리, 사법기관의 통제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미망으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부부싸움을 비롯한 제반 가정내 폭력문제를 당사자는 물론 이웃이나 친지가 고소, 고발하는 것도 정도를 넘는 행위로 비난받으며 더구나 공권력이 이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며 되려 일을 키운다는 비난과 자책에 직면한다.

가정에 대한 이 집단적 미망이 결국은 가정내의 약자에 대한 폭력을 방관하도록 부추기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님을 가정폭력이 번번이 확인시켜주고 있음에도 그러한 것이다. 적지 않은 우리 이웃에게 가정이 모욕, 학대, 굴종, 폭력이 일상화된 공간에 불과하다면 사회는, 법은, 공동체는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을 제공하는데 불과한 허구의 가정관련 미망을 포기하는 대신 가정을 구성원간의 평등한 권리가 행사되고 보장되는 인간적인 공간으로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가정폭력은 당사자는 물론 친지, 이웃, 지역사회의 감시와 적극적 고발을 통해 폭로, 공개되어야 하고, 공권력에 의해 방지, 처벌되어야 하며 법에 의해 응징되어야 하고 공공복지기관의 관리 하에 조정되는 문제적 대상으로 현실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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