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이라는 부정적인 어감이
수동적인 이미지 만들어
위커넥트·여자라이프스쿨·그로잉맘 등
단어 바꾸기 위해 노력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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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로 불리는 게 싫어요. 무능하고 무기력한 이미지가 떠올라요.”

“경력단절여성 뜻을 조회해 보니 결혼과 육아 탓으로 퇴사해 직장경력이 단절된 여성으로 나오는 데 상당히 불편하네요. 결혼과 육아 등으로 불가피하게 경력이 단절된 사람들입니다. 수정해주세요.”

여성들이 경력단절여성이라는 용어 사용에 반기를 들고 있다. 경력단절을 겪은 개인부터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까지 새로운 용어를 제시하거나 스스로 용어를 대체해 사용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단절이라는 부정적인 어감과 여성이 만나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만든다”며 “단절보다는 경력 보유의 관점에서 여성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력단절여성은 2008년부터 법령으로 제정돼 수많은 정책 등에 쓰이고 있는 단어다. 결혼‧임신‧출산‧육아와 가족구성원의 돌봄 등을 이유로 경제활동을 중단했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에 나온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정의다.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는 2017년부터 경력단절여성 대신 ‘경력보유여성’으로 모든 용어를 대체해 사용하고 있다. 위커넥트는 경력보유여성의 경제활동과 역량강화를 돕는 채용 플랫폼이다. 그는 “경력단절여성은 일자리 공급자 중심의 단어”라며 “경력보유의 관점에서 이들이 가진 역량 중심의 평가가 필요하다는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경력단절의 원인은 자의보다는 타의에 가까운 근로조건이나 육아 등의 환경 때문인데 경력단절여성은 이를 개인의 원인으로 보는 면이 있다”고 했다.

이재은 여자라이프스쿨 대표는 5년 전부터 용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다. 대체 용어로는 ‘경력유보여성’ ‘경력차단여성’ ‘생애경력여성’ 등을 생각해냈다. 현재는 강연을 나가거나 글을 쓸 때 모두 ‘경력유보여성’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단절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판단에서다. 여자라이프스쿨은 ‘여자들의 인생 학교’라는 의미로, 여성 생애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여성 커리어 개발 교육업체다.

이 대표는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이 경단녀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며 “스스로 경단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위축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요조사를 통해 이런 문제를 깨닫게 된 뒤로 그는 여자라이프스쿨 온라인 홈페이지나 저서 등에 모두 경단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는 “용어가 바뀌어야 일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며 “일자리 창출 등 관련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시현 작가는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경우 자신의 에너지를 사회에서 가정으로 옮겨왔을 뿐인데 사회에서는 이를 단절이라고 규정한다”며 “이들이 재취업을 하기까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단절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의미로 ‘경력이동여성’이라는 단어를 선택해 쓰고 있다”고 했다. 박 작가는 증권회사에서 7년간 일한 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1년 반의 경력단절 기간을 겪었다. 이 기간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 직업 내가 만든다’ ‘나는 지금 휴혼 중입니다’ 등의 책을 썼다.  

이미 10년 넘게 쓰인 탓에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싶어도 마땅한 단어가 없어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는 “경력단절여성은 출산, 육아가 여성들에게 아무런 경력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들에게 출산, 육아가 ‘쓸모없는 일인가?’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게 할 수 있다”면서도 “채용공고를 게시하거나 민감한 사업을 진행할 땐 명확하게 모두가 알고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낫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정연 여성가족부 경력단절여성지원과 과장은 “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된 만큼 향후 관련 용어의 부정적인 어감이나 쓰임에 대해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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