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법이 바뀌었다더니, 아직도 그대로라고요?
[기고] 법이 바뀌었다더니, 아직도 그대로라고요?
  • 박찬성 변호사 ‧ 포항공대 상담센터 자문위원
  • 승인 2019.01.04 06:00
  • 수정 2019-01-02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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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굴욕감·모욕감
유발하는 언동을 성희롱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현행 법
박찬성 변호사
박찬성 변호사

서글픈 현상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교원이 학생에게 가하는 것 이외에 거꾸로 학생이 교원에게 성희롱 피해를 입히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교육활동 침해 행위 고시’에서는 교사의 정당한 교권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다.

복잡하고도 길게 써 놓은 이게 뭘 가리키는 걸까? 다름 아닌 성희롱이다. 하지만 이처럼 우리 법령은 이를 성희롱이라고 직접 지칭하지는 못한다. 왜일까? 우리 법에서 성희롱을 규정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협애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법은 성적 굴욕감·모욕감을 유발하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언동을 일반적인 성희롱 개념으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법은 업무·고용 등의 관계에서 지위를 이용하였거나 또는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성적 언동만을 성희롱이라 정의한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입법개선을 통해서 이른바 ‘길거리 성희롱’에 대해서도 형사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단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심지어 ‘길거리 성희롱’은 법률상의 성희롱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업무·고용상의 관계에 있지 않은 동네 아저씨가 길 가는 피해자에게 추잡한 소리를 늘어놓더라도 우리 법은 이를 성희롱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터무니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성적 혐오감을 주는 행위라 쓰고도 성희롱이라 읽지 못하는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성희롱은 근본적으로는 성별에 기반하여 발생하는 차별의 문제다. 그리고 부당한 차별은 우리 헌법이 엄격히 금지한다. 헌법은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철폐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헌법의 하위규범인 법률은 중대한 성차별의 하나인 성희롱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의 모든 성희롱 현상이 아니라 ‘업무․고용 등’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만을 한정적으로 규제하고 있을 뿐이다. 큰 틀에서 본다면 이건 헌법 위반에도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성희롱에 대해 정하고 있는 기본적인 법률로는 ‘국가인권위원회법’, ‘남녀고용평등법’, 그리고 ‘양성평등기본법’이 있다. 나머지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우리 사회의 각 영역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인권침해의 문제를 최대한 폭넓게 다루고 해결해야 마땅할 국가인권위원회에서조차도 업무․고용 등의 관계라는 협소한 틀에 갇혀 있어야만 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소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라도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라는 제한적인 관계성 요건, ‘공공기관 종사자, 일반 기업체의 사용자․근로자’라는 한정적인 행위주체 요건은 과감하게 생략할 것, 그 대신에 ‘지위를 이용하였거나 업무와 관련, 또는 그 밖에 합리적 제3자의 관점에서 명백히 성적 굴욕감 또는 모욕감을 줄 수 있는 객관적 언동을 하였던 경우를 성희롱이라 한다’라고 새롭게 정의해 둘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바꾼다면 누가 보더라도 당연히 성희롱이라 할 수밖에 없는 내용임에도 일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문제 때문에 법률상의 성희롱으로 포섭하기 어려운 난점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미투로 뜨거웠던 한 해가 지나고 우리에게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라고 하는 새 법이 생겼다. 이 법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2018년 12월 24일에 공포되어 우리에게 왔고, 1년 후인 2019년 12월 25일부터 새로 시행될 예정이다.

큰 기대를 안고서 열어 본 법전(法典)이건만, 솔직히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성희롱의 법적 정의에 대해서 그러하다. 새 법에서는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 성희롱’을 여성폭력의 한 가지로서 규정한다. 이 밖에 새로운 내용은 담아두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관계 법률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은 입법상의 공백이 앞으로도 여전히 계속되리라는 뜻이다. 새해에는 조금 더 꼼꼼한 보완과 개선 입법이 뒤따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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