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 지난해 여성 관련 법안
앞다퉈 발의했지만 국회 통과는 '나 몰라라'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 등 여성 법안들 처리 시급
여성단체들, 기자회견 등 개최하며 법안 통과 촉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미투 법안을 발의만하고 논의조차 하지 않는 국회를 규탄하는 ‘임기내내 직무유기, 국회를 규탄한다!’ 기자회견이 열려 미투법안 조속 처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1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미투 법안을 발의만 하고 논의조차 하지 않는 국회를 규탄하는 ‘임기내내 직무유기, 국회를 규탄한다!’ 기자회견이 열려 미투법안 조속 처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미투(#MeToo)’ 운동의 여파로 많은 여성 법안들이 앞다퉈 발의됐지만 정작 국회 통과가 시급한 대다수 여성 법안들이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올해 국회로 미뤄졌다. 이에 올해 여성 법안들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성 단체들은 지난해 11월과 12월에 기자회견을 잇따라 개최하며 임시국회 등을 통해 여성 법안의 빠른 처리를 외쳤지만 이 같은 목소리는 결국 외면당했다.

올해 시급히 처리돼야 할 여성 법안들로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 ‘성차별·성희롱 금지법’,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 등이 꼽힌다.

우선 지난해 10월22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전 부인 살해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졌지만 2017년 말 발의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은 여전히 잠자고 있다.

특히 여성단체들은 가정폭력처벌법인 1조인 목적조항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개정하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꼽고 있다. 특례법의 목적을 명기한 제1조는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고미경 한국 여성의 전화 상임대표는 이에 대해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은 피해자의 인권 문제가 아닌 가정의 문제로 보는 한계가 있다”며 “지난 3월 UN여성차별위원회에서 이미 이 법의 개정을 권고한 바 있어 이 법안 개정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등이 지난해 11월27일 발표한 ‘가정폭력 방지대책’에도 목적조항 개정이 아예 포함되지 않아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이 12월4일 국회 앞에서 아동·청소년성보호를위한법률(아청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제공
시민단체들이 12월4일 국회 앞에서 아동·청소년성보호를위한법률(아청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제공

두 번째로 그동안 입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성차별·성희롱 금지법’ 제정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성차별·성희롱 금지법은 헌법 제11조 성별에 의한 차별 금지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실체법이다.

정부는 2005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을 성급하게 폐지해 10년 넘게 입법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남인순 의원과 김상희 의원 등이 ‘(가칭) 성차별·성희롱 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지만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세 번째로 지난해 법무부가 5월10일 입법예고 후 차일피일 미뤄왔던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빠른 처리에 대한 요구도 높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2014년 297건에서 2017년 436건으로 3년 만에 1.5배 가량 증가했는데 이는 스토킹 과정에서 일어난 폭행이나 강간은 제외된 건수이다.

예고안에서는 스토킹 범죄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현행법상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으나 10만원 이하 벌금, 구류형으로 처벌되는 데 사실상 거의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이와 함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아청법)’도 법사위에 계류 중이어서 통과가 시급한 법안으로 분석되고 있다.

성범죄 피해 청소년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근거는 현행 아청법 때문이다. 이 법에서는 ‘피해 청소년’은 성매매 피해를 입은 것으로 규정하는 반면, ‘대상 청소년’은 성매수 대상이 된 것으로 간주해 보호처분을 해 사실상 처벌로 인식돼 왔다.

여성단체들은 개정안을 통해 성매매 피해 청소년을 ‘성구매 대상 청소년’이 아니라 ‘성착취 피해 청소년’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이 술과 담배를 구입할 때 미성년으로 보호받아 업주만 처벌받는 것처럼 성매매 피해 청소년에게 자기 책임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미례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아청법은 지난 2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무부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또 각 부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핑퐁 논쟁만 이어져 올해는 빠른 처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미투’ 관련 1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는데 이 건도 서둘러 처리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현행 형법 제297조 강간죄 규정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 한다’고 돼 있어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 한다. 1992년 대법원은 판례로 폭행·협박의 정도를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으로 제시해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외에 지난 8월 정부 산하 첫 위안부 연구기관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가 출범했지만 관련법이 없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남인순의원이 이미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어 이 법안도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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