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여성헌법’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한국은 1984년 가입, 내년 40주년 맞지만
유엔, 한국정부에 53개 우려 및 권고사항 제시
가정폭력·온라인성폭력 2년 내 보완하고
경찰관 성별 분리 모집 폐지 권고,
낙태 비범죄화·차별금지법 제정도 제시

22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최고인권사무소 본부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8차 국가보고서 심의'에 참석 중인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수석대표로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월 22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최고인권사무소 본부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8차 국가보고서 심의'에 참석한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수석대표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성평등을 촉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분출될수록 오히려 성차별이 어디 있느냐며 비난하는 목소리, 이른바 백래시도 강해지고 있다. 정말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없을까. 세계경제포럼 등 성불평등을 드러내는 각종 지표도 뉴스가 되지만, 국제적 기준에서 우리 사회 성차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이다.

‘국제여성헌법’ 혹은 ‘여성권리장전’이라고 불리는 이 협약은 1979년 채택된 이후 각국의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협약에 따라 4년마다 각 국가의 보고서를 심의·권고 한다. 2018년 3월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여성차별 실태에 대해 53개의 최종 견해문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2년 내에 이행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주요 권고사항과 그 밖의 권고사항 등이 담겼다. 성매매부터 정치적 활동, 교육, 고용 등 다양한 분야의 차별 개선 방안을 망라하고 있다.

위원회는 주요 권고사항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합당한 가정폭력 범죄의 해결 및 처벌(상담조건 기소유예 폐지 및 화해·중재를 통한 해결 금지, 가해자의 법적 처벌 보장 등) △온라인 플랫폼 및 유포자에 대한 상당한 경제적 제재 등을 포함한 온라인 성폭력 예방조치 강화 △예술흥행비자(E-6-2) 제도의 모니터링 강화 및 임시체류비자(G-1) 취득 제도 보완 등에 대해서는 2년 이내에 이행 상황을 보고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 외에도 위원회의 일반 권고사항은 30개가 넘는다. △고위직 여성 대표성 △형법 297조 개정 및 배우자 강간 범죄화 △직장 내 성희롱 관리 △탈북 여성 지원 △위안부 피해자 배상 등이다.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의 이행 상황 점검은 국내 법으로도 정하고 있을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양성평등기본법 제11조에 따라 국무총리실 산하 양성평등위원회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등 대한민국이 체결한 여성 관련 국제조약 이행 점검에 관한 사항’을 심의·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이 1984년 협약에 가입한 다음 1986년부터 총 8차례에 걸쳐 국가보고서 심사와 개선 권고를 받은 만큼 차별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협약 내용은 1979년에 채택된 이후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시대 상황을 반영해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권고의 양과 내용도 매번 달라진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심의대응 한국 NGO로 참가한 한국여성단체연합 오경진 활동가는 “여성인권 의제가 예전엔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것까지 넓어지고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면서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차별을 포함하고 디지털 성폭력 등 젠더 폭력의 개념을 넓혀가고 있다”고 전했다. 미세먼지 증가가 특히 임신 여성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쳐 사망률을 증가시킨다는 우려도 이번 권고조항에 포함돼있다.

반면 정부가 개선 권고를 받고도 이행하지 않는 것도 많다.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강간을 판단하도록 형법 297조의 개정 및 배우자 강간의 범죄화라든가, 낙태 비범죄화 등이다.

여성단체들과 여성 국회의원들이 지난 3월 27일 국회에서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8차 한국 정부 심의대응 NGO활동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여성단체들과 여성 국회의원들이 지난 3월 27일 국회에서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제8차 한국 정부 심의대응 NGO활동보고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조항과 권고는 정부보다 시민사회단체의 관심이 더 뜨겁다. 인권의 관점에서 정부를 감시하고 제도와 정책 변화를 촉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유엔의 심의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NGO들이 공동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유엔에 제출하고 팀을 구성해 심의가 진행되는 스위스 제네바까지 날아간다.

2018년 2월 22일 제네바 유엔최고인권사무소 본부에서 진행된 심의에서 한국 정부 대표단이 위원들에게 답변하는 과정에서 미흡한 내용과 무성의한 태도 때문에 질타 받았음을 한국에 알린 것도 이들 NGO 참가단이다. 여성가족부, 법무부, 고용노동부, 교육부, 외교부, 보건복지부, 인사혁신처, 경찰청 등 8개 부처가 참가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고 제16대 국회의원과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연숙 전 정무 제2장관은 차별철폐협약을 ‘마술지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여성 정치 참여 확대에 획기적인 기회가 된 2004년도 정당법 개정은 당시 정치지도자들에게 이런 CEDAW의 조항을 설명하고 얻어낸 쾌거”라며 “그것만 잘 활용하면 못할 게 없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에 50% 여성 할당을 추진할 때 당시 위헌이라며 거부하는 한나라당 수뇌부에 CEDAW에 차별을 없애기 위해 잠정조치를 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찾아 제시한 결과,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장 2019년도에 위원회에 4개 핵심 권고에 대한 중간 이행상황을 보고해야 하지만 얼마나 개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NGO들은 정부가 목표를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이행하도록 점검해야 하지만 양성평등위원회는 1년에 회의를 2번 여는 등 유명무실하고, 담당 부서인 여성가족부 국제협력과가 가진 권한 역시 타 부처에 이행을 요구할 수준이 못 된다며 안타까워한다.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최종 견해문 ©여성신문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최종 견해문 ©여성신문

2018년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한국 정부 심의·권고

-여성 및 여아의 삶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도록 에너지·기후 정책 시행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및 필요한 인적·물리적 자원 배치
-지방 정부의 성별영향분석평가 제도 강화, 및 필요한 인적·물리적 자원 배치
-성인지예·결산협의체의 법적 근거 마련 및 필요한 인적·물리적 자원 배치
-국가인권위원회 성평등 부서 기능 강화를 위한 충분한 인력 및 예산 확보
-공립 학교·대학 내 고위직의 여성 대표성 강화를 위한 조치 시행
-동의 여부로 강간을 판단하도록 형법 297조의 개정 및 배우자 강간의 범죄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형사소송 남용 예방을 위한 조치 시행 등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효과적인 관리·감독 체제 확립
-학교·대학·군대 등 공공기관 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보장
-탈북 여성들에 대한 상담 등을 위한 적절한 재원을 탈북여성센터에 제공할 것
-팔레르모 의정서 기준에 상응하는 포괄적 인신매매방지법 제정
-여성·여아 인신매매 범죄자에 대한 처벌 및 범죄 예방 강화 조치 마련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하여 피해자·생존자등의 의견을 고려할 것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생존자 등의 권리 보장 및 적절한 배상의 즉각 추진
-여성 대표성 확대를 위한 비례대표제 강화 및 여성할당제의 강제이행 조치 마련
-여성경찰관의 성별 분리 모집 폐지
-여성과 평화, 안보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의 효과적 시행 보장
-이주 여성의 귀화 절차 기간 축소 및 한국 배우자의 신원보증서 제출 폐지
-연령을 고려하고 과학 및 사실에 기반해 국가성교육표준안을 개정할 것
-남녀고용평등법의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 조항의 시행 및 제재 강화
-공·사기업에서의 임금 공시제 시행
-근로기준법에 기반한 단시간· 아르바이트· 계약직 노동자들의 보호 강화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을 위한 건강 관련 법제도 개선
-건강보험 등 트랜스젠더 여성의 의료 접근권 보장 등
-낙태 비범죄화 및 수술 이후 질 높은 지원 체계 마련
-가정폭력 피해자의 이혼 결정 이전에 강제로 화해나 조정절차 금지
-자녀 양육권 소송 과정의 사법부 구성원에 대한 적절한 의무교육

-비혼 동반자 관계에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 경제적 보호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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