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평범한 일상인가
‘누구’의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누가 희생되는가 라는 질문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항소심 공판이 열리는 21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안 전 지사가 출석하자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항소심 공판이 열리는 12월 21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안 전 지사가 출석하자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하루 만에 해가 저물고 새 연도가 시작된다는 연말연시는 극적이고도 평범하다. 2018년의 키워드로 미투를, 올해의 판결로 안희정 1심 무죄를 꼽는 언론의 특집과 각종 시상을 보며 한편으로는 1월 첫 주에도 계속되는 각종 사건 대책위원회 회의와 일정을 살핀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위력 성폭력 2심 재판은 두 번의 준비기일을 거쳐, 12월과 1월 세 번 공판을 하고 2월 1일 선고를 예정하고 있다. 평범한 노동자로 돌아가고 싶다던 이는 1년을 꼬박 피해자로 생존자로 고발인으로, 살아간다. 우리에게 어떤 새해가 찾아오면 좋을까.

유래없던 한 해를 만들어온 이들의 그 전은 어땠을까.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일, 생활을 침범하기에 성희롱, 성폭력, 성차별은 반사회적이고 반인류적이지만, 침범당한 것이 평범한 일상일수록 성폭력을 고발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평범이 깨진 일상을 이어 붙이려 안간 힘을 다하던 6개월, 8년, 10년이었을 것이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약자의 성역할인 사회에서는 더욱. 그 노력으로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 그 때가 바로 자신을 깨고, 세상에 무수한 이들에게 알리는 극적 시간의 시작일 것이다.

안희정 1심 재판부는 이 평범한,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경로를 극적으로 왜곡했다. 평범함을 지향했던 일상에서의 피해자의 노력을, ‘피해자가 아니다’는 증거로 활용했다. 피해 다음 날에도 일을 했으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업무를 유지했던 것을 나열하며 피해자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1심 재판부가 든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이유들은 어느 것 하나 업무 외의 사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업무 고용관계에서 피해자의 노력은 ‘누구’의 평범함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까다롭던 식성을 맞추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식당 예약을 바꾸는 일, 화장실 앞에 담배를 대령하는 것, 새벽에도 기호품을 가져다 드리는 것, 기분 좋을 때는 좋게 안 좋을 때는 좋게 맞추는 것 등등. 그 업무에서 요구된 ‘평범함’은 결국 누군가의 편의는 극대화되고, 누군가의 고행은 무한대가 되는, 불평등한 노동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안희정은 본인이 지시한 바대로 사람들이 움직인 것, 본인이 뜻한 바대로 이뤄지던 것을 평범함으로, 일상성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와 국가와 지방정부와 민주주의를 말하던 사람인데, 본인이 고발된 사건에 대해 전면 반박하며 상대방도 ‘합의해서’ ‘동의해서’ ‘서로 좋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시점으로 몸이 떨지 않고는 그 당시를 기술할 수 없는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있음에도 그러하다면, 안희정은 본인이 지향하고 누렸던 일상성이 모든 이들에게도 같은 일상이었다고 믿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일상에 대한 믿음이 다른 것, 이것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평범한 지표다. ‘누구’의 평범한 일상인가, ‘누구’의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누가 희생되는가. 이것은 페미니즘의 질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법원 판례 흐름에서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이 은밀하게 이루어진 범죄에서, 피해자의 진술에 한점 오류도 없어야 하고 그에 따라 피해자 행실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과거 판례의 남성중심성이라면, 최근 대법원 판례는 피해자가 처해있는 여러 조건을 고려해서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단순하게 배척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피고인의 심문을 통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1월 9일에는 안희정에 대한 피고인 심문이 열린다. 평범했다고, 동의한 일상이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자세히 기술하기를 바란다. 권력 있는 자가 생각하는 동의, 권세 있는 자가 주장하는 애정관계라면, 그것이야말로 한점의 오류도 없이 판단되어야 한다. 그래야 평범함은 평등하게 보장될 수 있다. 미투 이후 새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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