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성매매 집결지 화재…
여성 2명 사망·2명 중태
10평 남짓 2층에 방 6개 밀집
비상통로 없고 창은 막혀 있어
경찰, 여성감금·불법 증개축 여부 수사
여성단체들, 공동대책위 구성
“위험 몰아넣는 착취 공간서
일어난 예고된 비극” 비판
화재 발생 단 16분만에 여성 2명이 숨지고 2명은 중태에 빠졌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 업소 화재 사건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여성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착취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예정된 비극”이라는 게 현장 활동가들의 지적이다. 재개발 때문에 철거가 코앞인데도 성매매 업주는 더 많은 이주비를 챙기기 위해 ‘버티기’를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들을 위한 탈성매매 지원도 변변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생존’해야 했던 여성들이 ‘천호동 423번지’를 떠나지 못한 이유다.
불은 지난 12월 22일 오전 11시4분께 이곳 2층짜리 성매매업소 건물에서 발생했다. 불은 16만에 진화됐으나 박모(50) 씨 등 2명이 사망했으며 2명이 중태다. 1명은 경상을 입었고 1명은 큰 부상 없이 구조됐다. 화재가 난 건물은 일명 ‘천호동 텍사스’로 불리는 성매매 집결지 초입에 위치해 있다.
서울 강동경찰서와 강동소방서·국립과학수사연구원·한국가스안전공사·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 40여명은 사고 이튿날 오전 화재현장에서 합동감식을 벌였다. 이들은 최초 발화 지점이 1층의 홀 주변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는 불이 1층에서 시작되는 바람에 유일한 계단으로 화염이 뿜어져 올라왔고 별다른 비상 탈출 통로는 없었던 데다 창문은 아예 막혀 있거나 방범창으로 막혀 있어서 빠른 대피가 불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전선 등 증거물에 대한 국과수 감정 결과를 종합해 최종 발화지점과 화재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성감금·불법 증개축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화재가 비교적 빨리 진압됐는데도 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성매매 집결지 특유의 건물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불이 난 건물은 2개 층으로 40평 남짓한 2층을 방 6개와 화장실 1개, 복도로 나눠놓은 상태다. 1층과 통하는 계단 구역을 제외하면 40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여성들이 잠을 자고 생활하는 방 6개가 좌우로 3개씩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조로 알려졌다. 화재 당시에 여성들은 대부분 잠을 자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낡은 건물도 문제로 지적됐다. 화재가 난 건물은 1968년 7월5일로 지어져 올해 50년이나 됐다. 스프링쿨러 같은 소방시설은 없었다. 건물은 1960년대 공수부대가 들어오면서 시작된 천호동 성매매 집결지의 번성과 쇄락의 역사와 함께 했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 정책과 재개발 사업이 맞물리면서 이 오래된 건물은 묵인 혹은 방치된 셈이다. 정부는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특별법)을 통해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착취로 규정하고 불법화했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도 성매매를 주 목적으로 하는 성매매 집결지는 전국에 42곳(여성가족부 ‘2016년 성매매 실태조사’)이나 된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반성매매 단체는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구성하고 이번 화재 사건의 진상 규명과 함께 탈성매매를 위한 지원 등 종합대책 마련과 성매매 집결지와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담팀 구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성명서를 통해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극이 또다시 되풀이됐다”며 “국가와 사회가 방치한 성 착취의 현장에서 얼마나 더 많은 여성들의 죽음이 필요한 것인가”라며 반문했다. 공대위는 성매매 업주와 함께 지자체와 경찰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단체는 “철거가 코앞인데도 업주들은 자신들의 영업권을 행사하며 더 많은 이주비를 받기 위해 여성들을 볼모로 삼고 있었다”며 “공권력은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기 위해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위한 지원과 불법적 이익 환수 등 수요 차단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성매매 집결지 건물주들에게 재개발의 이익이 돌아가는 부동산 개발사업에만 급급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