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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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출범 한 달을 맞은 인수위측에서 호주제 폐지의 대안으로 1인1적제를 검토 중이라는 기사는 호주제 폐지 논의가 일보진전되었다는 점에서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1인1적이 바람직한 이유는 몇 가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는 가족의 범위를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이 불합리하고 불필요하다는 점이다. 현행 호주제와 같이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규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기에서 여성차별을 상당부분 제거한 가족별 편재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문제점이 남는다.

1인1적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이혼가정의 증가 때문이 아니다. 호적의 본래 기능이 족보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에 대한 신분등기제도인 만큼 개인의 가족관계를 등록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기재할 경우 그 가족이라는 범위 또한 상당히 애매할 수 밖에 없다. 흔히 법으로 가족관계를 규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면 가족의 유대가 옅어진다는 등의 가족정서를 내세운다. 그러나, 그렇게 얘기되는 ‘정서’는 가족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더라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현 호주제에서도 민법상 가족은 결혼한 여성은 친부모와 가족이 아니며 결혼한 형제간은 가족이 아니다.

결혼한 자녀와 함께 등기한다는 것은 결국 남자측 집안 또는 여자측 집안의 일방에 기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럴 경우 다른 집안에 편입되는 일방은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똑같이 키운 자식이 성별에 따라 남의 집 가족이 되거나 혹은 자기 집안의 대를 잇는 식으로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차별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호주제의 부가입적이 불평등하며 그 반대의 부가입적의 길을 열어두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인 이유는 결혼한 자녀가 어느 일방의 집안에 입적하는 시스템 자체가 어느 일방에게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결혼한 자녀의 동적을 금하는 가족별 편재는 어떨까? 이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양성평등의 문제는 해결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자. 가족별 편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가족정서이고 이것은 사실 부계혈통의 수직적 연속성을 뜻한다.

부모와 미혼의 자녀가 한 가족이라는 건 어떤 방식으로 기재되던 두말 할 것 없는 본능에 가까운 감정이다. 1인1적을 채택하는 외국이라고 해서 family란 단어에 부모, 형제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듯 부모와 미혼자녀가 동적하든 안하든 일반 가정에서 피해 볼 일도 득 볼 것도 없는 상황인데 비해 그렇지 않은 소수의 가정은 ‘정상 가족’을 지향하는 시스템에서 소외당하게 한다면 어느쪽을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가의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가족의 범위를 부모와 미혼자녀와 같이 혈연관계로 규정했을 때 독신가정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동거하는 가정, 미혼모가정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가정들이 차별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1인1적제를 지지하는 이유는 양성평등의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처럼 어떠한 형태의 가정을 선택하든지간에 차별받거나 소외당하지 않고 개인의 존엄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미래지향적인 신분등기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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