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피의 연대기’ 등 작지만 강한 영화 주목
김태리, 김가희, 김다미 등 신예 여성 배우 활약도 눈길
페미니즘 관심 커지며 여성 캐릭터 보는 관객 눈 달라져

ⓒ(주)NEW·KT&G 상상마당
(왼쪽부터) '허스토리', '피의 연대기'의 한 장면. ⓒ(주)NEW·KT&G 상상마당

올해도 영화계에서는 다양한 작품이 관객을 울리고 웃게 했다. 특히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흐름을 타고 영화계에서도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또 눈에 띄는 신예 여성 배우들의 등장은 영화계의 장래를 밝게 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해 ‘아이 캔 스피크’가 있었다면 올해는 ‘허스토리’(민규동 감독)가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과를 받기 위해 힘든 여건 속에서도 재판에 나선 모습은 슬픔을 넘어선 용기의 모습이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민 감독은 인터뷰에서 “승리의 기록과 그 안에 담긴 더 큰 서사를 영화로 만드는 게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는 여성의 생리(월경)를 공론화했다. 영화는 월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과 싸워온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각자 몸에 맞는 생리용품에 관한 정확한 정보도 제공했다. ‘B급 며느리’(선호빈 감독)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을 날것으로 보여주면서 고부갈등이라는 문제를 끄집어냈다. 그러면서 가부장제, 독박육아, 독박가사 등을 넌지시 다룬다. 영화는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집안문제’에 다양한 세대가 생각해볼 기회를 줬다.

영화 밖에서는 관객들이 목소리가 여성 영화에 힘을 보탰다. ‘허스토리’에서는 ‘허스토리언’, ‘미쓰백’에서는 ‘쓰백러’라고 불린 여성들이 ‘N차 관람’과 ‘영혼 보내기’(영화표를 사고 영화관에 가지 않는 것) 등을 통해 영화의 장기 상영을 독려했다. 덕분에 ‘미쓰백’은 적은 영화관과 좌석 확보율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70만 명)을 넘어섰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박화영' 김가희, '마녀' 김다미, '버닝' 전종서.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CGV 아트하우스·(주)리틀빅픽처스·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리틀 포레스트' 김태리, '박화영' 김가희, '마녀' 김다미, '버닝' 전종서.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CGV 아트하우스·(주)리틀빅픽처스·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주목할만한 여성 배우

올해 충무로에서 눈여겨 볼만한 젊은 여성 영화인의 등장도 반갑다. ‘1987’에서 민주화에 대해 배워가는 평범한 대학생을 연기한 김태리는 ‘리틀 포레스트’에서 특유의 온화한 얼굴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박화영’의 김가희는 겉모습은 강하고 폭력성을 드러내지만 실상은 외로움에 사무친 고등학생을 연기해 주목받았다. 영화 ‘버닝’에서 이창동 감독과 호흡을 맞춘 전종서, ‘마녀’(박훈정 감독)에서 원톱 주인공으로 발탁된 김다미는 차기작이 궁금해지는 배우들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여성 배우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주목받은 여성 배우는 늘 있었지만 여성이 등장할만한 시나리오가 기획되지 않았고 제작이 안 된 게 문제였다. 지금은 ‘미쓰백’처럼 여성이 원톱 주연으로 나온다. 수준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배우들의 연기폭도 한층 두터워졌다. ‘미쓰백’(이지원 감독)의 한지민은 청순했던 모습을 벗어던지고 차가운 세상과 마주한 백상아를 맡았다. 거칠지만 아동학대를 당한 아이를 위한 따뜻한 내면을 동시에 그려내 박수를 받았다.

‘허스토리’에 출연한 김희애를 비롯한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은 관록의 연기로 베테랑이 무엇인지 확실히 각인시켰다.

황 평론가는 “페미니즘 등이 부상하면서 관객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여성을 폭력적으로 다뤘을 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면 지금은 인식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영화 속 여성 캐릭터가 양적이나 질적으로 개선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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