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풍경보다 아름다운 서촌 옥상 절경에 빠져 전업화가로 변신
뉴욕 풍경보다 아름다운 서촌 옥상 절경에 빠져 전업화가로 변신
  • 채윤정 기자
  • 승인 2018.12.20 13:23
  • 수정 2018-12-21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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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옥상화가' 김미경씨, ‘그림 속에 너를 숨겨놓았다’ 새 책 펴내
무아지경의 춤 추는 자신의 모습, 표지에 담아내
미국 뉴욕서 생활하며 억눌려있던 개인적 자아 발견
일간지 기자 출신의 비전공자
3번의 전시회서 그림 '완판' 행진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 작가가 14일 서울 옥인동 자택 옥상에서 작품 속 남산이 보이는 곳을 가리키며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 작가가 14일 서울 옥인동 자택 옥상에서 작품 속 남산이 보이는 곳을 가리키며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미경 화가의 새 책 그림 속에 너를 숨겨놓았다표지에는 한 여인이 무아지경에 빠진 채 치맛자락을 흩날리며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이 표지는 스치는 바람에 맞춰 춤추고 싶을 만큼 춤에 깊이 빠진, 그 모습을 바로 펜으로 그려낼 정도로 그림에 푹 빠진 작가 자신을 보여준다.

김미경 작가(58)는 지난 1115일 한겨레출판사를 통해 브루클린 오후 2’, ‘서촌 오후 4에 이은 자신의 3번째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서촌 옥상화가로 불리는 김미경씨가 지난해 한겨레신문에 김미경의 그림나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과 자신의 그림, 그 그림을 그릴 때의 에피소드 등을 글로 잔잔하게 풀어냈다.

김 작가는 뭐든 절실하고 쌓이면 폭발하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게 너무 좋아서 1, 2달 동안 밤 낮 없이 그림을 그렸고, 한 아카데미에서 춤을 배우면서 춤에도 빠져들었어요. 길거리에서 춤을 추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겠지만 바람이 스치고 새가 날아가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길에서도 춤을 추게 돼요. 그런 저 자신을 그린 표지의 그림에는 무엇이 오더라도 신나게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뒷 배경을 넣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30년 전 한겨레신문 창간 당시 여성 담당 기자로 입사한 그는 옆 자리에 앉던 박재동 화백이 사내 미술동아리를 들어보라고 제안해 박 화백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게 됐다.

일주일에 한번 그림을 그렸어요. 1년에 한번은 야외 스케치도 나갔고요. 가랑비에 옷 젖듯 그림에 젖어갔어요.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지만 비전공자인 제가 화가가 되는 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면 화가로 태어난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는 2000년 인터넷 열풍이 뜨거웠을 때 당시 직급이 높지 않았음에도 인터넷한겨레 뉴스부 부장직 공모에 참여했다. 당시에 40대 초반의 경력 많은 남자 기자 등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는데 그가 부장으로 뽑히는 이변이 일어났다. 알고 보니 입사를 하려면 한겨레신문에 사표를 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지원자들이 포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겨레신문에 사표를 내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냐는 생각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인터넷한겨레 뉴스부 부장을 맡았다. 하지만 1년 만에 인터넷 거품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러던 중 2004년 한겨레에서 진보적인 여성잡지인 허스토리를 창간하면서 팀장을 맡게 됐다. 하지만 이 잡지는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큰 손실을 보며 이 잡지를 폐간할 때 책임을 지고 사표를 써야 했다.

그 때 큰 절망감에 아빠를 따라 미국에 간 딸에게 가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뉴욕으로 갔어요. 뉴욕한국문화원에서 리셉셔니스트(접수 담당자) 일을 할 수는 있었지만 심한 박탈감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를 하던 내가 나의 존엄성을 지켜주던 껍데기가 사라진 지금 나는 존엄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글을 쓰는 데 막 눈물이 나더라구요. 한국에서는 영어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데 한계가 있어 힘들었어요.”

하지만 뉴욕 생활의 경험은 그가 그림을 그리는 데 자양분이 됐다. 회사 근처에 갤러리들이 즐비하고 뉴욕 현대미술관과 첼시 갤러리를 밥 먹듯 드나들다 보니 미국에 살던 7년 동안 명작들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는 줄곧 사회적 자아가 자리를 잡고 개인적인 자아를 억누르며 살았어요. 미국에 가서 사회적인 자아가 없어지며 개인적인 자아가 커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그림도 다시 그리게 됐죠.”

뉴욕 생활이 딸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미국에서 새롭게 대학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한국에서처럼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그가 다니던 문화원의 정년 퇴임도 55세여서 잘못 하면 길거리의 노숙자들처럼 될 수 있겠다는 위기감도 컸다. 의료보험도 너무 비싸 가입하지 못하다 보니 큰 병이 날까 항상 불안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 돌아오겠다는 생각에 지원한 아름다운 재단에서 취업이 돼 사무총장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막연히 일간지 기자를 할 때처럼 열심히 하면 되겠지 했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어느 날 아름다운 재단 옥상에 올라갔는데 뉴욕의 풍경보다도 그 풍경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기와집, 적산가옥 등에 빠져 스마트폰인 갤럭시 노트로 단숨에 그림을 그렸죠. 대학 때 서촌에 살 때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기만 했는데 말이죠. 그 그림이 바로 서촌옥상도 0번이예요.”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 작가가 14일 서울 옥인동 자택 옥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 작가가 14일 서울 옥인동 자택 옥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는 그 때부터 다만 1년이 될 지라도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 몸이 아파 큰 수술을 받다 보니 그 결심은 더 확고해졌다. 그래서 2014년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선배한테 돈도 빌렸다. 그리고 54살의 나이에 전업화가로 변신, 하루에 무려 10시간씩 그림에만 몰두했다.

서촌의 빌라에서 계단 청소를 하며 한 계단씩 오르다 문득 옥상에 올라갔는데 그 절경에 가슴이 뛰었어요. 인왕산과 기와지붕, 집들 사이의 나무들, 서울의 옛모습을 간직한 서촌이기에 마치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그 때부터 옥상의 전경을 한 작품에 많게는 100시간 이상씩 그렸다. 이 옥상 저 옥상을 찾아다니고 비가 오거나 추운 날에는 옥상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5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첫 전시회를 열었다.

보통 화가들은 초대전을 하는데 갤러리들과 작가들이 판매금액을 절반씩 나누게 돼요. 그래서 그림 값도 2배로 뛰는 거죠. 저는 제가 직접 보도자료도 쓰고 발로 뛰는 기획전을 했어요. 미대 출신이 아니어서 아직까지 화단에서 인정을 받지는 못 하지만요.”

그림을 하나도 팔지 못 할 거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작품은 완판 행렬을 이어갔다. 페이스북에 그림을 소개하다 보니 그림에 친근감과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직 언론사 출신이다보니 지인들의 지원 사격도 큰 도움이 됐다. 작품을 사기에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전 작품을 비싸게 팔기 싫었어요. 호당 10만원 정도를 유지해왔어요. 20호면 200만원 정도가 되는 거죠. 더 비싸게 팔아서 해외여행도 가볼까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꽃들을 그렸는데 꽃에게 초상권을 주는 것도 아니고 비싸게 팔면 사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촌 꽃 그림은 10cm×25cm 100장을 전시했는데 액자까지 15만원에 팔았죠. 스스로에게 말해요. 가난한 게 축복이라고. 다 마련돼 있으면 열심히 못 그린다고.”

그가 서촌 옥상에서 가장 크게 그렸던 작품은 50호였는데 가수 양희은이 구입했다. 양희은이 암 수술 후 몇 발짝씩 걷는 연습을 한 곳이 옥인아파트 옥상여서 김 작가가 그리는 풍경이 그 때 봤던 풍경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김미경 작가가 14일 서울 옥인동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미경 작가가 14일 서울 옥인동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사람들이 소질 있어서 잘 그리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요. 한겨레 그림 동아리에서 제가 제일 못 그렸어요. 하하 1년에 한 번씩 한겨레 창간일에 전시회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창피하지 않냐고 물어봤어요. 하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미술반을 했던 친구들이 제 작품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해요. 소질이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지 그 이상이 아니예요. 여기에 엉덩이 힘이 합해지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녹아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그가 서촌에서 100개의 꽃을 그리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꽃이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도 정성을 다해 펴요. 질 것을 알면서도요.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 꽃처럼 살아야겠다 마음을 다 잡게 되죠. 최근에는 우리 집 앞에 있는 나무도 그리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한겨레신문에 과감히 사표를 낼 수 있었던 것처럼, 아름다운재단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또 내 마음이 뛰는 다른 일도 할 수 있겠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거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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