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력'을 남성의 전유물로 간주해온 신화 앞에서 '펜은 곧 페니스인가?'라는 질문을 거듭해야 했던 여성의 역사는 길다.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누가, 무엇을 예술이라고 규정하는가'라는 권력에 대한 물음으로 고쳐 써야 한다는 항변도 이미 존재한다. 이 코너에서는 '여성-창작-새로움'의 의미망을 확장·갱신하기 위해 도전하는 동시대 젊은 여성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여성신문이 공동 기획한 이 인터뷰는 문화연구자 오혜진과 만화평론가 조경숙이 함께 총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 여성신문 공동기획
[‘여성-창작’을 말하다⑨] 체육교사이자 유튜버 “취미 부자” 전해림을 만나다

‘전해림 SEAFOREST’(이전 채널명 ‘취미부자 전쌤’)의 유튜브 채널이 눈에 띈 건, 땀 흘리며 축구하고 난 뒤 삼겹살을 구워 먹는 여자들의 ‘대수롭지 않은’ 모습 때문이었다. 그들의 스포츠는 헬스클럽에서 자기관리를 위해 자신과 벌이는 ‘싸움’이 아니라, 공을 튕기며 풋살장을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는 ‘놀이’였다.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이자, 그 여성들을 담아내는 유튜버이며, 체육교사이기도 한 전해림을 만났다.

‘전해림 SEAFOREST’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투버이며 중학교 체육교사인 전해림
‘전해림 SEAFOREST’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투버이며 중학교 체육교사인 전해림씨.

 

“몸을 통해 느껴지는 성취감을 사랑해요”

조경숙(이하 ‘조’): 학창시절에 저는 체육시간이 즐거웠던 적이 없어요. 공을 받으면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당황스러웠고, 달릴 때에는 가슴이 움직이진 않는지 계속 신경 쓰이곤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학창시절 체육시간은 어땠나요?

전해림(이하 ‘전’): 저 역시 학교에서 제대로 된 체육을 경험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체육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스스로 스포츠를 찾아다닌 것이지, 학교를 통해 흥미를 가진 계기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계기는 학교 밖, 태권도 학원에서 찾을 수 있었죠. ‘여자애가 무슨 태권도야’ 하고 부모님이 태권도 학원에 보내주지 않으셔서, 제가 용돈을 모아 직접 학원에 등록했어요. 매번 새로운 품새를 익히고 실습하고, 발차기와 구르기를 배워나갔죠. 몸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는 경험이 즐거워서,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조: 남성이 조기축구회나 야구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일은 흔해요. 그러나 여성이 축구나 야구처럼, 팀을 필요로 하는 운동을 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선생님은 어떤 경로로 꾸준히 운동을 해오셨나요?

전: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같이 뛸 사람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을 모으고, 단체를 만들었어요. 대학교 때 축구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여성멤버들에게는 주로 물을 떠오거나 남자선수들을 응원하는 역할이 주어졌어요. 저는 체대생이었는데도 축구 리그에 뛸 수가 없었죠.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아 여자축구 동아리 ‘윅스’를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다른 대학교의 여자축구 동아리들과 연합해서 ‘한국대학여자축구클럽연맹’을 발족했고, 매년 여자축구 대회를 열었어요. 지금 한국대학여자축구클럽연맹에는 전국 50개 대학의 여자축구 동아리가 소속되어 있어요. 윅스도 후배들이 바통을 받아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저는 윅스 졸업생들과 함께 ‘오버윅스’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고 있죠.

땀 냄새 나는 여성들이 즐기는 ‘민낯’의 축구

조: 제게 스포츠는 ‘즐김’의 대상이라기보다 강함과 아름다움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과 싸우는 극기훈련에 가까워요. 실제로 유명 스포츠웨어 광고영상을 보면, 엄격한 자기통제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운동선수들이나 미용 및 체형 관리에 성공한 섹시스타들의 모습이 주로 비춰지잖아요.

전: 운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늘 아름다움에 초점이 맞춰져요. 여성이 운동을 하는 이유가 반드시 외모를 가꾸기 위한 것만은 아닌데도요. 저는 제 유튜브 채널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해요. 축구하는 여성멤버들 모두 머리띠로 머리카락을 단단히 넘기고, 땀 흘리며 축구하고, 끝나면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처럼 삼겹살에 소주 먹고 그런 모습들을 브이로그(Video Blog의 줄임말, 소소한 일상을 비디오로 기록한 영상채널)로 내보내죠.

조: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보여주고 싶은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들’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세요.

전: 저는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축구를 직접 하는 건 스포츠를 즐기는 여러 방법의 하나일 뿐이에요. 경기를 관람하거나, 미니 마라톤 같은 스포츠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저처럼 스포츠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스포츠를 즐기는 방법이죠. 제가 업로드한 영상 <수행평가 하는 체육 선생님의 모습은?>에서 다룬 건데, 학생들에게 숙제로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 종목 하나를 정해서 그 종목의 룰을 카드뉴스 형태로 만들어오게 했어요. 이렇게 스포츠 룰을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해 콘텐츠로 만드는 것도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방법이죠.

‘전해림 SEAFOREST’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며 서울 시내 한 중학교 체육교사인 전해림이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전해림 SEAFOREST’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이며 서울 시내 한 중학교 체육교사인 전해림씨가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체육교육의 경계 혹은 중학생과 악수하는 법

조: 선생님의 채널을 보고 체육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졌어요. 탁자 위에 놓인 오백 원짜리 동전을 드리블해 골인시키는 ‘동전농구’ 영상은 정말 신선했어요. 아이들에게 나만의 악수방법을 만들게 한 ‘핸드셰이크 창작수업’도 놀라웠고요.

전: 핸드셰이크는 정규 체육수업 과정에 있는 건 아니에요. 외국의 사례를 보고 수업에 사용하면 좋겠다 생각해서 제가 도입한 거죠.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악수 방법을 만들 뿐만 아니라 상대가 만든 악수방법을 따르기도 해요. 이때 핸드셰이크는 단순히 악수가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시도하는 수신호가 됩니다. 저는 체육의 영역이 굉장히 넓다고 생각해요. 몸이 매개가 되고, 움직임을 교육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체육이죠. 체육수업을 그냥 공놀이하는 시간으로 아는 사람들도 꽤 많지만, 이런 건 학생들과 대화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예요. 이런 때에 제겐 유튜브가 큰 도움이 됐어요. 직접 학교에서 학생들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제가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걸 촬영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려요. 그러면 학생들이 그 이야기가 필요할 때 스스로 제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는 거죠. 제가 직접 가르치지 않는 학생들도 ‘선생님 영상 봤어요’ 하면서 말을 걸기도 해요.

조: 중학생들은 ‘중2병, 등골브레이커, 괴물’ 등의 멸칭으로 불릴 만큼 일종의 ‘별종’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데, 학생들과 어떻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을까요?

전: 학생들에게 귀를 기울여주면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예의를 갖춰 이야기할 줄 알아요. 어른들이 오히려 어른들의 방식으로만 이야기하려고 하니 학생들이 마음의 문을 닫는 거죠. 제 유튜브 채널에는 제가 친구들과 노는 영상, ‘오버윅스’에서 축구하는 영상 등 제 일상생활이 담겨 있다 보니 학생들이 그 영상들을 보고 저를 더 친근하게 대하기도 해요. ‘아 선생님도 우리랑 비슷하게 노는구나’ 싶은 거죠.

“제 유튜브 채널이 학생들의 놀이터죠”

조: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를 패러디하여 찍은 영상은 학생들과 함께 기획하신 건가요? 학생들이 직접 배구공을 던져 물병을 맞추는 영상이요.

전: 재밌을 것 같아서 제가 학생들에게 해보자고 했어요. 사실 습작을 하려고 부탁한 거였는데, 나중에는 학생들이 더 즐거워해서 저도 신났어요. 학생들이 나오는 영상을 편집하다 보면, 어떤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집중해서 볼 수 있어요. 평소 제가 보지 못했던 아이들을 조명할 수도 있고요. 제 수업이나 학교 행사를 학생의 시각에서 돌아볼 수도 있죠. 학생들도 자신이 촬영했거나 등장한 영상이 빨리 업로드되길 기다려요. 언제 올라오냐고 채근하기도 하고, 영상 올라왔다고 알려주면 몇 초 몇 분에 친구 나왔다고 서로 아이디를 태그 해주기도 해요. 제 유튜브 채널이 학생들의 놀이터죠.

조: 체육대회 브이로그에서 여학생들이 체육대회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직접 촬영한 것도 인상 깊었어요. 유튜브라는 매체를 통해 체육을 경험하게 된 것이 여학생들이 체육과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했다고 생각해요.

전: 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여학생 스포츠클럽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이 학교에는 남학생 스포츠클럽만 있었는데, 지금은 여자축구팀과 배구 동아리가 하나씩 있어요.

조: 스포츠클럽에 여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 편인가요?

전: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의 실력 또한 월등해요. 어떤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공 컨트롤 능력이 뛰어납니다. 여학생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은 점차 확대되고 있어요. 교육부에서도 여학생 체육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운영비를 지원하거나 여학생 스포츠클럽 리그 개최를 독려하고요.

‘전해림 SEAFOREST’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중학교 체육교사인 전해림
‘전해림 SEAFOREST’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체육교사 전해림씨.

 

‘관종’, 왜 안 되나요?

조: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학생 가운데에서도 유튜버가 있던데요. 선생님이 직접 학교에서 영상 제작과 편집을 가르치시나요?

전: 학교에서 가르치진 않아요.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해서 하는 거죠. 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유튜브 크리에이터예요. 요새 학생들은 창의력이 넘쳐요. 숙제를 하나 해오더라도 우리 때처럼 ‘맑은고딕’ 쓰는 게 아니라 ‘배달의 민족’ 글씨체 넣고 포토샵으로 예쁘게 꾸며온다든지. 최근엔 ‘메이커 교육’이라고 해서, 손으로 만드는 작업들도 권장하고, 직접 발명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발명하고 싶은 것에 대해 기획안이라도 만들게 하는 커리큘럼이 많아졌어요. 그저 말뿐인 창의력 교육이 아니라,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의 손에 쥐어주는 거죠.

조: 유튜브라는 매체를 선택할 때, 부담감이나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유튜브는 출연자의 얼굴이 공개되는데다가 불특정 다수가 보는 플랫폼이잖아요.

전: 그런 건 없었어요. 전 기본적으로 ‘관종’이어서, 제가 창작한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어요. 창조에 대한 열망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전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잘 만들어낼 수 있어요. 만들었다면 보여줘야죠, 당당하게.

참, 여기서 모두가 궁금해할 질문 하나. ‘학교 선생님이 유튜브 해도 되나요?’ 대답은 ‘된다’. 심지어 학교나 교육부에서도 응원한다고. 교사라는 공적인 직무로부터 오는 부담감과 유튜브라는 개방형 채널에 대한 불안 등 창작욕을 위축시키는 조건들은 꽤 많다. 하지만 그 조건들에 맞서 ‘왜 안 되나요?’라고 반문할 때, 장벽은 의외로 쉽사리 무너질 수도 있다. 창작의 열망이 있다면,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일단 ‘당당히’ 시도해보면 어떨까. 학교 바깥으로 자신의 무대를 확장해나가는 전해림처럼.

* 전해림 : 서울 시내 한 중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 중. 축구·버스킹·영상 제작 등 자신의 다양한 취미활동을 내용으로 한 유튜브 채널 ‘전해림 SEAFOREST'를 운영한다. 

‘전해림 SEAFOREST’ 영상이 궁금하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3ntinllXsWA

* 조경숙 : 만화평론가. <주간경향>에 ‘만화로 보는 세상’ 칼럼을 연재한다. 독립연구자 네트워크 ‘궁리’에서 개최한 독립연구 지원 사업을 통해 <코믹스 페미니즘: 웹툰 시대 여성만화 연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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