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속으로] 현대무용과 소리로 빚어낸 공옥진의 삶
[공연속으로] 현대무용과 소리로 빚어낸 공옥진의 삶
  • 강일중
  • 승인 2018.12.17 15:54
  • 수정 2018-12-17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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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의 ‘주름이 많은 소녀’
1인 창무국의 선구자 공옥진의 삶을 토대로 한 주름이 많은 소녀의 한 장면. ⓒ강일중
1인 창무국의 선구자 공옥진의 삶을 토대로 한 주름이 많은 소녀의 한 장면. ⓒ강일중

공옥진(1931~2012)은 생전에 1인 창무극의 선구자로, 또 ‘병신춤’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던 예인(藝人)이다. 무명 저고리와 쥘부채를 든 광대. 1970년대 후반~1990년대 후반의 가장 왕성했던 활동기에 그는 걸출한 춤·소리·연기로 수많은 관객을 웃기고 울렸다.

그의 사후(死後) 6년이 지나면서 ‘공옥진’이라는 이름 석 자는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는 판소리와 춤, 재담 등을 섞은 ‘1인 창무극’이라는 장르를 개척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전통이 아닌 창작’이라는 이유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 나중에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1인 창무극 심청가’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지만, 전수자가 없어 2016년에 문화재 지정이 취소됐다. 공연되지 않으니 잊힐 수밖에 없다.

서울 중구 정동길의 정동극장 무대에 오른 ‘주름이 많은 소녀’는 공옥진의 춤과 삶을 토대로 이 시대 광대의 아픔을 펼쳐 보인 작품이다. 현대무용가인 류장현이 안무와 연출을, 소리꾼 겸 배우인 이자람이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은 만큼 판소리와 현대무용, 대사가 있는 연기 등이 한데 어우러졌다. 소리꾼 이나래가 관객이 소리의 배경음을 넣도록 유도하는 등 객석과의 소통도 이뤄진다.

1인 창무국의 선구자 공옥진의 삶을 토대로 한 주름이 많은 소녀의 한 장면. ⓒ강일중
1인 창무국의 선구자 공옥진의 삶을 토대로 한 주름이 많은 소녀의 한 장면. ⓒ강일중

작품이 공옥진의 춤과 삶을 무대에서 그대로 재현해 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의 춤이 다섯 명의 무용수에 의해 움직임 이미지로 전달되는가 하면 그의 삶 속 중요한 부분이 이나래의 소리로 소개된다. 아버지인 소리 명창 공대일이 1천 원에 7세의 딸 옥진을 팔아넘긴 일이나 장애인을 희화화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욕을 먹어가면서도 그가 ‘병신춤’ 추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일화 등이다.

공옥진 이야기가 극의 중반부터 ‘주름이 있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바뀌면서 극 속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과거 이 땅의 여성들이 겪어온 고통의 이미지다. 작품의 초반부에는 소리꾼 이나래가 심청이 배를 타고 인당수로 가는 여정을 그린 ‘범피중류(泛彼中流)’ 대목을 부른다. 맨 마지막은 “평생 참았던”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어머니를 닮지 않겠다던 내가 그 모습 똑같이 베껴내어 참기만 하다가 이내 속말 못하고 (어머니를) 보내며 원통해 하는” 딸의 모습이 소리로 그려진다.

여성뿐 아니라 무용수로 대변되는 광대 또한 아픔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역력히 보인다. 윤일식과 황석진 등 두 무용수는 자신들이 춤광대로서 겪는 고통과 좌절감을 마이크에 대고 독백처럼 풀어냈다.

1인 창무국의 선구자 공옥진의 삶을 토대로 한 주름이 많은 소녀의 한 장면. ⓒ강일중
1인 창무국의 선구자 공옥진의 삶을 토대로 한 주름이 많은 소녀의 한 장면. ⓒ강일중

극을 여닫는 장노인과 유노인의 이야기가 길게 여운을 남긴다. 소리를 너무나 사랑했던 두 노인은 늘 “죽은 후 소리를 하며 한판 놀 수 있는 곳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장노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유노인의 꿈에 나타나 천당에도 판이 있다는 얘기를 전한다. 유노인은 맨 마지막 장면에서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저승사자를 따라간다.

잊혀가는 예인 공옥진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광대가 느끼는 아픔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소리꾼 이나래의 소리를 소리북이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라이브 베이스기타 연주가 그 역할을 하도록 한 점이 매우 독특하다. 현대적인 감각의 세련된 조합이다.

제목의 ‘주름’은 류장현 안무가 전남 영광에 가 만났던 공옥진 예인의 주름살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지만 파란만장한 삶의 기록, 아름다움이 있는 삶의 흔적이라는 다원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류장현은 이미 2007년 국립무용단 기획공연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에서 ‘보둠어 가세!’라는 공옥진의 1인 창무극 관련 창작품을 무대에 올렸었다.

‘주름이 많은 소녀’는 “전통 예술이 어떻게 지금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고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탐구하는 정동극장 ‘창작ing’ 사업 프로그램이다. 공연은 12월 30일까지다.

1인 창무국의 선구자 공옥진의 삶을 토대로 한 주름이 많은 소녀의 한 장면. ⓒ강일중
1인 창무국의 선구자 공옥진의 삶을 토대로 한 주름이 많은 소녀의 한 장면. ⓒ강일중

강일중 공연 컬럼니스트

언론인으로 연합뉴스 뉴욕특파원을 지냈으며 연극·무용·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의 기록가로 활동하고 있다.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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