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 끝]

‘높으신’ 양반과 둘이서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 분보다 30살이나 어린 신입직원이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를, 이렇게 지체 높은 분이 왜 따로 불러내어 밖에서 밥을 먹자고 하는 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나. 나오라면 나갈 수밖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분위기가 기묘해져만 갔다. 조금 지나니 이 인간께서는 ‘애인이 있느냐?’, ‘나 같은 사람은 네 남친으로 어떻겠느냐?’, ‘둘만 있을 땐 오빠라고 불러 달라.’ 라면서 나를 ‘이쁜이, 우리 이쁜이’ 라고도 부르며 수작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헐! 이런 광인스러운 아버지뻘 같으니!) 급기야는 ‘나랑 뽀뽀하자.’, ‘안고 뒹굴고 놀자.’, ‘성생활을 가르쳐 줄게.’, ‘다른 건 몰라도 선은 넘지 않을게.’ 운운하기까지 하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인 성희롱 발언을 계속 뿜어댔다.

온몸의 혈관에서 분노의 역류가 느껴지면서 ‘이 인간이 미쳤나, 아니면 노망이 나셨나!’ 라는 말도 목구멍 끝까지 솟구쳐 나오기도 했지만, 이제 갓 입사한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은 내가 차마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당장에 도망가고픈 마음을 꾹 누르고, 말 같지도 않은 이런 헛짓거리가 한시라도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끝없이 쏟아지는 성희롱에도 태연한 척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릴 수밖에는. 저 추악한 면상에 ‘김치 싸대기’를 ‘시전’하고 싶은 생각이야 앉은 자리에서 수십 번도 더 했지만, 나는 내일도 이 인간의 하급직원으로 출근해야 하는 것을.

아무리 이 풍진세상(風塵世上) 곳곳에서 성희롱이 횡행하고 있다한들 설마 저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진짜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위의 이야기는 실제 사례 몇 가지를 조금씩 버무린 것이다. 현실은 이토록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법의 이름으로 철퇴를 가해야 마땅할 진짜 가해자들은 이처럼 세상에 아직도 수두룩하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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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내용 중에는 대개 이런 것이 있다. 불쾌하고 모욕적인 발언이나 행동이 있거나 있을 우려가 있는 때에 그에 대한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피해의 발생 또는 그 확대를 막을 수 있는 방편이 된다는 것. 더 나아가, 이를 통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비슷한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 일을 사전에 막을 수도 있다는 것.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조금은 위험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사견(私見)으로는 거부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알리는 것도 좋지만, 그 반대로 피해자들은 중대한 피해를 입은 경우일지라도 그 모욕감과 굴욕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때가 아주 많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가 설령 겉으로는 웃는 낯을 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특정의 말과 행동에 대한 긍정이나 동의의 의미가 아닐 수 있다는 것, 특히 거부의사를 곧바로 표현하지 않았다 해서 피해자가 자책할 이유는 단 한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본다. 왜냐고?

가해자들은 종종 이런 반론을 제기한다. ‘그 자리에서 성희롱이 정말로 있었다면 왜 그때는 거부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던 거죠? 누구나 다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고요! 그 피해자라고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어요. 성희롱 같은 거 없었어요!’ (네. 그건 너만의 착각이십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진실이지만 아직도 이런 식으로 피해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주변인들도 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거부의사를 표시하신 적이 있나요? 왜 안했지요? 그때 곧바로 불쾌하다고 하셨으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깊은 상처에 다시 소금을 뿌리고 있다는 건 혹시 알고 계신지요?) 더욱 더 서글픈 일이지만 이런 질문을 해 오는 이들도 있다. ‘제가, 좀 불쾌한 일을 겪었는데요. 근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려요. 그 자리에서는 아무 표현도 내색도 안 했었는데, 그래도 지금 와서 문제제기할 수 있는 건가요?’ (그럼요! 지레 우려하셔야 할 아무 이유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자. 엄청나게 높은 직급의 임원이나 관리직 같은, ‘힘 있고 영향력 있으신’ 인간이 나이 어린 신입직, 비정규직 인턴 또는 학생 면전에서 실로 기상천외한 망발을 계속 해대고 있을 때, 그 자리에서 아무 고민도 없이 분연히 떨쳐 일어나 ‘입 닫으시죠. 골로 가시기 전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고백하건대 필자조차도 그렇게 용기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올해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을 다룰 때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 서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그 피해자가 처해 있는 독특하고 고유한 상황과 처지를 백분 고려하라는 취지다. ‘내가 바로 저 피해자였다면,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관점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깊이 있게 이해해 보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

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냐고? 당신이라면 할 수 있었을까? 당신이 그 자리에 외로이 홀로 서 있어야 했던 바로 그 피해자 본인이었다면.

* 이번회를 끝으로 '박찬성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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