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생리의학상 수상
혼조 타수쿠 부부
기모노 입고 입장
일본이 노벨수상자
49명 낼 동안
한국은 평화상 1명

12월 9일 오후 스톡홀름 시내는 눈이 흩날리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 스톡홀름은 외국손님들로 붐빈다. 관광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노벨상 수상식에 참가하는 수상자들과 동반가족, 그리고 노벨위원회에서 초청한 국제 및 국내인사들이 스톡홀름 시내를 점령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묵는 호텔은 수상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모인 국내외 기자들과 관광객, 일반인들이 섞여 북적인다. 왕궁과 행사장까지 꼬리를 문 수백 대의 행사 차량이 시내를 관통하는 모습이 대장관을 이룬다. 외교사절들도 시상식에 초청받아 참가하기 때문에 스톡홀름 콘서트하우스 앞은 순식간에 주차장으로 변한다. 그것도 모르고 차를 몰고 시내에 나와 낭패를 당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노벨상 수상식을 지근거리에서 30년째 지켜보는 나로서는 감회가 새롭다.

올해는 몇 가지 점에서 노벨상 수상식이 예년과 다른 풍광을 담고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지 못했다. 스웨덴을 휩쓸고 지나간 미투 사태로 인해 야기된 스웨덴아카데미 회원 간의 내분으로 문학상 후보자들의 작품을 심사하는 시기를 놓친 것이 원인이 됐다. 1차 세계대전이 개전된 1914년과 종전이 있었던 1918년 그리고 자발적으로 취소한 1935년과 2차대전 때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한 오점을 남긴 해로 기록된다.

내분의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직을 내려놓고 종신위원을 반납한 사무총장 사라 다니우스(Sara Danius)는 올해 수상식의 가장 주목받는 인사가 됐다. 노벨위원회 위원자격으로 참석한 수상식에 진노랑드레스에 보라색 망토를 걸친 의상으로 참석한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이색상의 조합은 스페인 마타도우들이 들고 있는 빨간색과 뒷면의 주황색 천을 연상케 한다. 스페인 마타도우 협회는 다니우스의 의상은 저항과 용맹성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 구닐라 부루드레이 (Gunilla Brudrei) 엑스프레센신문 문화부 기자는 기성세력에 대한 저항과 경고를 날린 의상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녀의 의상은 만찬장에 입장하는 행사에서도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만찬장을 일순간에 술렁이게 했다.

노벨상 수상식에 이어 시청 블루홀에서 치르는 만찬행사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제공한다. 우선 규모에 압도당한다. 초대받은 손님은 총 1300명에 이른다. 1300명에게 일시에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35명의 미셀린 급 전문요리사, 10명의 후식 전담 제빵사들이 주방을 책임진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왕실 가족, 수상자들과 가족, 그리고 노벨위원회 위원들을 제외하고 모든 초청인사는 만찬비용 부담을 원칙으로 한다. 올해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년 기준 2인 참석자 기준 6500크로네(한화 80만원 가량)을 만찬비용으로 낸다. 초청받은 것만으로 영광이기 때문에 비싼 만찬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줄을 서 있다.

올해 만찬행사를 보면서 한순간에 착잡함이 엄습해 온다. 올해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혼조 타수쿠 부부의 만찬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자극한 것이리라. 일본인 노부부는 기모노를 입고 자랑스럽게 입장했다. 국제행사에 전통의상을 입고 입장하는 것이 무슨 감성을 자극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언제 한국인은 세계에서 인정하는 노벨상을 받아 이 자리를 빛낼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1949년 이후 일본인은 벌써 올해까지 총 27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문학상이 3명에 이르고, 화학, 물리, 생리의학이 23명, 그리고 평화상 1명이 이미 스톡홀름 만찬장을 다녀갔다. 최근 5년 동안에는 매년 일본 과학자들이 수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은 쓸개의 활동을 더욱 자극한다.

강남스타일이 등장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더니 지금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영화, 드라마와 아이돌그룹 등의 활동은 3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한국의 위상을 바꿔 놓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국제적 위상은 매우 미약하다. 정치 수준은 바닥이고, 과학 수준은 중급, 경제 수준은 고급, 그리고 문화 수준은 최고급이라고 한다. 첫 번째 두 개의 수준이 높아질 때 우리의 국격도 더욱 상승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인 과학자들과 문학인들이 스톡홀름 만찬장에 입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격에 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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