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에 걸린 한 사진.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에 걸린 한 사진.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 A양(18)은 어릴 때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 집을 탈출해 파출소로 도망갔지만 경찰은 A양의 친권자인 부모에게 연락한다. 다시 집을 나온 A양은 이번에는 청소년 쉼터로 간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부모에게 연락을 하자 A양이 간 곳은 결국 길거리. 그는 채팅 앱을 설치해 남자들을 만나며 잘 곳과 먹을 곳은 해결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A양은 괴롭다.

십대여성인권센터가 11월 28일부터 이 달 9일까지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열었던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60여 개의 작품이 전시된 내부에 들어서면 적막만 흐른다. 교복 옆에 목욕가운이 걸려 있는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와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다. 작품 제목은 ‘친절한 아저씨’다. 사진을 지나가면 메시지 터널이 등장한다. “야한대화”, “안녕하세요. 용돈 만남 가능하세요?” 등 실제 오픈채팅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이 성인남성들에게 받은 메시지로 채워져 있다.

터널을 지나면 한 청소년이 성착취를 당한 현장에서 직접 휴대전화에 남긴 메모가 벽에 걸려있다. “섹스 장난감이 된 기분이 절절이 느껴진다. 하지만 버려지는 게 더 무서웠다”는 구절에서 피해자들은 외로운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9일까지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개최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장에 설치된 메시지 터널.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9일까지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개최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장에 설치된 메시지 터널.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9일까지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개최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장에 설치된 전시물.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9일까지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개최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장에 설치된 전시물.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 제공
ⓒ십대여성인권센터 제공

하지만 피해자들에게도 희망의 싹은 오른다.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풍경화와 가면, 형형색색의 조형물, 신체 본뜨기는 피해자들이 치료과정에서 그리고 만든 것들이다. 자신의 감정을 꺼내 마주하면서 피해자들은 관객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행사는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일본 여고생 지원센터 ‘콜라보(Colabo)’와 함께했다. ‘콜라보’가 일본에서 비슷한 전시를 한 것을 알게 된 희망씨앗기금이 십대여성인권센터에 전시회 개최를 제의했다. 희망씨앗기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목소리와 기억을 젊은 세대에게 올바로 알리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이후 사진작가와 서울위기청소년교육센터의 도움을 받아 전시를 열었다.

전시를 본 대학생 이지희 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오른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저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도 문제다"라고 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9일까지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개최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응원 메시지.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십대여성인권센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9일까지 이화여대 ECC 대산갤러리에서 개최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응원 메시지.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왜 이런 전시회를 열었을까. 성착취 피해 10대 여성을 ‘피해자’가 아닌 ‘문제아’로 바라보는 현실을 고쳐나가기 위해서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전 세계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에 대해 무관용으로 엄격하게 가해자를 처벌하고 있다. 아동청소년은 무조건 범죄 피해자로 보호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성범죄 피해 청소년을 범죄자로 본다. 현행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은 성착취 피해 대상이 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 아동·청소년’으로 간주해 보호처분을 내린다. 때문에 국내 반(反)성폭력단체들은 지난 4일 국회 앞에서 아청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대상아동·청소년’ 이라는 개념을 없애고 모든 성착취 범죄 피해 청소년을 ‘피해아동·청소년’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혜진 여성활동가는 성매매를 강요당한 한 피해 학생이 가정법원으로 송치돼 보호처분을 받았다며 “이 아이는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라는 오명으로 자신을 꽁꽁 숨기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청소년들에게) 왜 가출을 하게 됐는지, 어떤 이유로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아이들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빠져 나오니 한쪽 벽면에 성착취 피해자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쪽지가 가득 붙어있었다.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너 탓이 아니야. 언니가 그 사람들 다 혼내줄게”,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등이었다. 피해자들을 향해 이제 사회와 어른들이 제대로 응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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