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줄다리기』 펴낸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언어는 과거 반영된 습관
무의식에서 쓰는 언어에
차별·비민주적 표현 많아

번역하듯 성찰·배려하는
‘언어 감수성’ 키워야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문과대 앞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언어감수성을 갖는 것”이라며 “성숙한 소통을 위해 성찰적으로 말하고, 배려하며 듣는 언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망인이라는 말이 있다.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아내를 여의고 따라 죽지 못한 남자를 일컫는 말은 없다. 교수가 여성이면, 여교수라 부르지만 남성 교수는 남교수라 부르진 않는다. 기자, 검사, 의사도 마찬가지다. 모두 단어 앞에 ‘여’를 붙인다. 왜 그럴까? 최근 『언어의 줄다리기』 펴낸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언어는 과거의 가치관이 투영돼 학습된 습관”이라며 “언어 표현 뒤에 숨어있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성차별적인 언어 표현은 과거 우리들의 성차별적인 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람들의 달라진 생각을 낡은 언어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언어는 습관이예요. 습관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이라서 문제를 자각하기 어렵게 만들죠. 습관에는 질문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문제의식을 갖는 것을 불편하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사회의 진보 속도가 빠를수록 언어와 사회의 격차는 커지고요. 그래서 같은 개념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을 붙이자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신 교수가 책 제목을 『언어의 줄다리기』라고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개인이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기 위해 고심하는 과정 속에도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거대하고 치열한 대결이 스며 있다.

신 교수는 ‘언어 탐험가’라는 별명 답게 책에서 ‘대통령 각하-대통령님’, ‘미혼-비혼’, ‘미망인-유가족’, ‘여교사-여성 교사’, ‘청년-젊은이’, ‘자장면-짜장면’, ‘요즘 애들-요즘 어른들’, ‘비정상-정상’, ‘용천-룡천’ 이라는 줄다리기 현장을 세심하면서도 친절하게 분석한다.

이 가운데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민주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단어라는 신 교수의 주장에 눈이 번쩍 뜨인다. 

“미국에서는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단순히 앞에 앉는 사람, 즉 국민 대표 회의의 주재자라는 뜻으로 쓰는데, 이 단어가 일본에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봉건주의적 세계관을 담고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의 대통령으로 굳어졌어요. 주권자가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대통령에 의해 거느려지고 다스려지는 존재가 된 것이지요.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유산이고 비민주적 단어예요. 대통령 대신 ‘대한민국 대표’라고 쓰면 어떨까요? 꼭 대표를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더 좋은 표현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교수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12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교수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 교수는 ‘결혼’을 기준에 놓고 양분하는 ‘기혼’과 ‘미혼’은 적절한 표현인지 되묻는다. 강력한 결혼 이데올로기가 담긴 이분법적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결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모두 기혼으로 불러야 하나요? 아직도 결혼 여부를 묻는 서류들이 있어요. 미혼은 결혼을 해야 하고, 기혼은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혼 이데올로기가 스며든 것이죠. 이혼을 하거나 결혼하기 싫은 사람은 여기에서 빠져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비혼’이나 ‘돌싱’이라는 표현이 쓰이고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인식도 바뀌어가고 있지요. 새로운 생각과 관점에 따라 새로운 표현을 만들고 사용하면 세상도 바뀌는 것이죠.”

신 교수는 “언어를 정확하고 조심스럽게 쓰는 것은 의미의 분열에 대항하는 방법이자 우리가 사랑하는 공동체를 격려하고 우리에게 희망과 전망을 불어넣는 대화를 독려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번역하듯 생각을 말로 표현해보자”고 제안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언어감수성을 갖는 것이예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인 것 같아요. 관계가 가까울수록 소통은 더 쉽지 않죠. 성숙하게 소통한다는 것은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인데, 그게 굉장히 어렵잖아요. 이렇게 생각해본다면 어떨까요? 번역가가 가장 정확하게 표현을 위해 단어를 고르듯이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때도 어떤 표현을 쓸지 고민하는 거예요. 성찰적으로 말하고, 배려하며 듣는 것, 그것이 성숙한 민주사회의 필요조건인 성숙한 소통이 이뤄질 겁니다.”

『언어의 줄다리기』 신지영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언어의 줄다리기』 신지영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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