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가게' 이숙경 감독
사회적기업 '소풍가는 고양이' 5년 영상 찍어
가파른 노동현장에서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 보여
“매출이 적었으면 모두가 괜찮았을 거다"

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숙경 감독을 만났다.
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숙경 감독을 만났다.

“사회적기업이라는 이름에는 딜레마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형태라고 알고 있죠. 하지만 사회적기업도 결국 기업이에요. 영업수익을 올려야 생존할 수 있어요. 이걸 알리고 싶었어요. 내가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입니다.”

이숙경 감독이 다큐멘터리 ‘길모퉁이 가게’를 완성한 건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2014년 지인이 하는 사회적기업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인턴십을 하는 10~20대들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촬영은 한 달만 하고 끝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숙경 감독은 영상을 찍으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여기…살아남을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찍던 시기가 세월호 사건과 겹친 것도 촬영에 영향을 끼쳤다. 가게 안에 열심히 살겠다고 뭉친 청소년들을 보면서 세월호 학생들이 겹쳤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더 들게 됐다.

“세월호 사태가 있었다면 이걸 찍었을지 모르겠다. 그때는 분명한 계기가 됐다. 가게 안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수학여행 갈 나이와 비슷했다. 그들이 작은 가게에 갇혀 있는데 배처럼 보였다. 주변의 사이렌, 자동차 소리가 폭력적으로 들렸다. 밖은 험한데 아이들은 살아보겠다고 칼질을 하고 있고. 카메라를 들고 못 떠나겠다는 느낌에 휩싸여있었다.”

‘길모퉁이 가게’는 최근 열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했다. 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이숙경 감독을 만났다. 그는 사회적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처음에는 좋은 취지로 시작하지만 매출이라는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 구성원들의 관계는 깨질 수 있다고 했다.

“매출 5000만 원을 올리기 위해서는 구성원에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 관리자는 그게 괴롭지만 그렇게 한다. 그래야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을 저는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다큐멘터리는 작은 도시락가게 ‘소풍가는 고양이’의 성장과정을 담았다. 학교에 다니지 않은 ‘홍아’와 ‘원주’ 같은 10대 후반 20대 청소년들과 가게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년 여성 ‘씩씩이’의 이야기가 주인공이다. 2014년 봄만 하더라도 연평균 매출이 1000만 원이 안 되던 작은 가게는 2017년 12월 월 매출 5000만 원을 달성했다. 그렇다면 ‘소풍가는 고양이’에는 봄바람이 찾아온 것일까.

 

'길모퉁이가게' 스틸컷
'길모퉁이가게' 스틸컷

모든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일은 바빠지면서 원래 깔깔 웃던 구성원들의 표정은 점점 굳는다. 한 명의 구성원이 삐걱해도 분위기는 심각해진다. 씩씩이는 실수를 연발하는 원주를 점점 더 다그친다. 이렇게 구성원들은 매출이라는 목표 아래 조금씩 금이 간다.

“선 하나만 넘으면 사람을 해치는 거다.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는 거다. 씩씩이는 끝까지 가 본 거다. 3000만 원이 목표면 모두가 괜찮을 수 있다. 그런데 매출이 높은 상황에서 사람이 조금 실수하면 짜증이 난다. 그게 사람의 모습이고 노동의 속도다. 어쨌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이게 안 되면? 문을 닫아야 한다. 이 현실을 봐야 한다. 이걸 모르면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은 구성원들의 능력이 없다고만 말한다.”

그렇다면 원주는 정말 일을 못하는 걸까. 이숙경 감독은 “어디에나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과를 내는 사람만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원주는 일은 느리지만 주변사람을 챙길 줄 안다. 그렇다면 원주같이 일하는 사람이 있는 일터는 안 는 걸까? 많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매출이라는 목표 아래 서 있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언제나 흔들릴 수 있는 존재일 수 있다. 이숙경 감독이 작품 제목을 ‘길모퉁이 가게’라고 지은 이유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 가게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위태로운 경계에 서 있는 거다.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하는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이숙경 감독이 우산을 쓰고 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거리를 걷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숙경 감독이 우산을 쓰고 3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거리를 걷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숙경 감독은 영화감독이면서 여성들의 자주 모임인 ‘줌마네’ 대표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일상을 풀 공간이 없는 게 아쉬웠던 이숙경 감독이 2001년 이숙경 감독이 시작한 커뮤니티다. 그는 “막연한 불편함을 가진 여자들이 자기 일상을 풀 수 있는 공간이 학부모 모임이나 교회 정도밖에 없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도 갈 곳이 없는 거다”라고 ‘줌마네’를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줌마네’는 현재 여성들을 위한 글쓰기 교육, 출판사와 공동으로 책을 출간한다. 현재 150명이 활동하고 있다. ‘소풍가는 고양이’의 씩씩이도 ‘줌마네’ 출신이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이숙경 감독은 세상에 대한 온갖 질문을 가지고 있던 20대였다. 여성학을 공부하며 세상 곳곳에서 많은 여성의 문제에 귀를 기울였다. 마흔이 넘어 영화감독으로 뛰어든 것도 다양한 여성에 대해 좀 더 인상 깊게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다큐 뿐 아니라 영화에 많은 공을 들일 계획이다.

“영화를 통해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재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영화 속 여성캐릭터들은 ‘정말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문자로 전하기 힘든 상황도 영화가 되면 더 직관적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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