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만남]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헬조선’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될 마지막 기회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알파걸’ 신화 만들고
상대적 박탈감과
여성혐오 부추겨

2018년 #미투가 세상을 흔들었다. 검사 서지현, 도지사 비서 김지은을 시작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분노와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밖으로 토해낼 수밖에 없어서다. 여성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70)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혐오와 적대, 불신이 넘치는 한국사회를 ‘전장’에, #미투를 외친 서지현과 김지은을 ‘안티고네’에 비유했다. 절대 권력 앞에 숨죽이던 고대 그리스 왕국에서, 절대 권력자 왕의 명을 어기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여성, 안티고네 말이다.

“남북이 화해무드로 가면서 잠재적 전쟁 체제였던 한반도가 해빙기로 가고 있다고 흥분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 사회 내부를 들여다보면 혐오와 불신, 적대가 넘치는 전장이 어 있죠. 일상 자체가 위협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서지현, 김지은씨는 왕을 향해 ‘당신이 틀렸다’고 안티고네처럼 용기 있게, 국가를 향해 ‘이것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제대로 국가 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조한 교수는 ‘실천하는 지식인 페미니스트’로 불린다. 그의 실험은 연구실 안에서 걸어 나와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돼왔다. 1981년부터 2014년까지 연세대 강단에 선 그는 연구실 안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여성주의 동인 집단 ‘또 하나의 문화’(또문)를 만들어 여성주의운동을 펼쳤고, 서울시립 청소년 직업 체험 센터인 ‘하자센터’를 세워 대안교육의 장을 여는데 앞장섰다. <여성신문>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해온 그에게 2018년 현재 가장 뜨거운 이슈인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물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21일 서울 평창동의 한 카페 테라스에서 주변 경치를 둘러보고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혐오와 적대, 불신이 넘치는 한국사회를 ‘전장’에, #미투를 외친 서지현과 김지은을 ‘안티고네’에 비유했다. 절대 권력 앞에 숨죽이던 고대 그리스 왕국에서, 절대 권력자 왕의 명을 어기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여성, 안티고네 말이다.

2015년부터 ‘#나는 페미니스트다’ 선언이 쏟아졌고, ‘메갈리아’가 등장했으며, ‘#○○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됐다.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분출된 여성들의 목소리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거치며 응집되기 시작했고, #미투를 통해 오프라인으로 분출됐으며, ‘혜화역 시위’를 통해 극히 개인화된 여성들에 의한 집단적 목소리가 발화했다. 주변부에서 ‘발화의 객체’로만 존재했던 여성들이 ‘발화의 주체’에 선 순간이다. 그 배경에는 ‘페미니즘’이 있다.

그런데 광장에 선 10대, 20대 여성들은 ‘여성운동 선배’들은 그동안 도대체 어디 있었느냐고 묻는다. 여성운동의 성과로 법·제도가 마련됐으나, ‘능력’으로 각계에 진출한 여성들은 견고한 남성 중심 조직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풀기에 급급했다. 그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이 화성과 금성에서 온 존재처럼 됐버렸다”. 2018년 한국 사회는 ‘혐오의 시대’를 민낯 그대로 보여주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 즉 ‘백래시’가 세지면서 여성운동과 여성학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으로 확대되었다. 조한 교수는 “일반 여성이 여성학 이론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벽도 있었지만, 페미니스트는 촌스럽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몰고 간 미디어 정치도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해법은 무엇일까? 여성만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갑질과 폭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조한 교수는 말한다. 일상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여성국민’들의 움직임은 점점 거세질 것이고 10대들은 미투 운동을 통해 ‘의식있는 시민’으로 새로 탄생하고 있다. 적대가 적대를 낳는 식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현 시점에서 피해자를 돕는 식의 근시안적 해법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그는 말한다. 여성국민을 위한 국가가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남녀대결구도로 갖고 가서는 안됩니다. 그동안 ‘비빌 언덕’이 없었던 청년세대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으로서 ‘청년배당’이 주어져서 청년들이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조한 교수는 “그런 전향적 제도는 이미 복지제도가 잘 마련된 북유럽에서 시행할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과 직권남용 범죄를 고발한 이후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미투 운동은 폭발적인 힘으로 확산됐습니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말하기’를 통해 가해자를 고발하고 사회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번엔 양상이 달라보입니다.

“서지현 검사와 김지은씨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꽃이 피웠던 한국이 만들어낸 훌륭한 시민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돌풍 속에서 각자도생하느라 너무 오래 참았다는 생각이 있지만 홀로 사투를 벌이다 ‘이건 아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나온 이들이죠. 여성운동의 핵심이 자매애와 여성들간 네트워킹을 통한 문제 해결인데 그런 운동이 사라진 상황이어서 아주 어렵게 이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이제 한국의 두 번째 거대한 여성운동은 여기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서양에서는 참정권을 얻는 운동이 1차 여성운동, 그 이후 경제사회문화적 자립권을 얻는 것이 2차 운동이었다면 한국은 참정권을 해방과 함께 저절로 얻게 된 것이라 나는 1980, 90년대 대중적 여성운동을 1차 여성운동이라고 봅니다. 그간 외롭게 싸우던 여성들이 ‘국왕의 통치 시대는 끝났다, 그것을 넘어서는 제대로된 국가 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선언하고 나섰고 이 발언은 대한민국이 바로 서는데 굉장히 중요한 발언이죠. 그래서 이들의 발언이 어떻게 사회에 수용, 논의되고 사람들의 자각에 이르고 변화를 이끌어가는지 계속 관찰하고 있습니다. 수전 브라운 밀러는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에서 성폭력은 여성 통제 핵심 기제라고 말하고 있죠. 잘나가는 여성 검사를 많은 남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추행 하는 것이 엄청난 통제 기능을 한다는 것을 남자들이 알고 있는 거죠. 많이 배우고 전문성을 가진 여성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런 반복되는 상황으로 여성들은 그간 아주 많은 괴롭힘을 당해왔죠. 어릴 때부터 ‘정의로운 검사’가 되려고 했던 서지현 검사는 정의로운 검사로 활약할 수 있어야 하고 정의로운 시민으로 좋은 나라를 만드는데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던 김지은 비서는 그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희망이 없는 헬조선으로 급격하게 추락하는 선망국이 될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 남녀간의 전쟁 같은 상황이 타개하는 것이 남북 화해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이 미투를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법체계가 여전히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거나 안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도 있고, 법은 있지만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거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이 대표적입니다. 여성들은 변하는데 법, 권력자, 사회인식은 바뀌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안희정의 무죄 판결 직후 채효정씨가 쓴 ‘오입쟁이가 너를 재판할 것이니 너는 너의 오입을 두려워하지 말라’ 시작하는 글이 생각납니다. 법이 오입쟁이들의 것이라면 그간의 방법으로 판결을 바꾸어내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래도 이겨야 하고 이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직 대한민국은 그렇게까지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레토릭(수사학, rhetoric)의 시대’에는 레토릭을 제대로 쓸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공론화를 해내야 합니다. 언론 환경도 폭로하고요. 데스크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고 기자들은 하루 하루 버티는 것조차 힘들어서 새로운 관점의 기사를 쓸 여력이 없죠. 이 상황을 직시하면서 작전을 짜야 하지요.”

9일 오후 서울 혜화역 앞에서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가 열렸다. 시위 참가자들이 성차별 수사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6월 9일 서울 혜화역 앞에서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가 열렸다. 시위 참가자들이 성차별 수사 중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동학혁명의 민초들처럼

-지금 ‘메갈’ ‘워마드’ ‘영영페미’ 혹은 ‘넷페미’로 불리는 10~20대 여성 주체들의 등장과 ‘혜화역 시위’ 등의 움직임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불법촬영으로 24시간 여성의 일상이 포르노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 나라에서 여성들의 일상은 한 순간에 공포로 변하고 있어요. ‘여성에게 국가가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남녀 대결로 치닫는 무수한 범죄와 혐오의 감정을 분석해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습니다. 이미 많은 여성들은 이 ‘오입쟁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않겠다고 선언을 하고 있죠. 그동안 단순히 좋은 대학만 가면, 취직만 하면 연애가 저절로 될 줄 알고 살았던 남자들, 취직을 해서 가장이 되어 여우같은 아내와 오순도순 살 수 있을 줄 알았던 남자들의 당혹감도 이해해야 하죠. 지금 2030세대는 신자유주의 돌풍 속에서 자랐어요. 초경쟁 사회에서 초경쟁적 입시 교육으로 역사적·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각을 시간을 놓쳐버린 세대죠. 바로 그 세대에서 여성들이 더 이상 살수가 없다고 발언하기 시작한 겁니다. 민초들이 들불처럼 일어난 1894년의 동학혁명처럼 여성들이 들고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여성운동은 짧은 시간에 적잖은 제도적 성취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호주제 폐지 이후 여성운동의 동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1980년대 여성들은 대학까지 졸업했는데도 결혼을 이유로 해고되거나 퇴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투쟁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쟁의 성과로 공적 영역 진출과 호주제 폐지를 이뤄냈어요. 시민적 권리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한 결과였죠. 1차적으로 제도적 권리가 마련되자, 그때부터는 보수화되면서 ‘백래시’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나요. 여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생기면서 제도화·관료화되면서 보수화 된 것이죠. ‘이 정도면 됐다’는 반응들이요.”

-활동가와 연구자들은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했지만, 요즘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선배 페미니스트들은 다 어디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에 신자유주의·보수화 경향이 더 강해져요. 여성운동이 신자유주의와 만나면서 힘을 잃게 되는 거죠. 동시에 페미니스트들은 자기주장만 하고 못나고 촌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나름 취직도 하고 남자상사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여자들은 페미니즘이라는 것과 거리를 갖고자 했죠. 여성운동과 여성학은 점점 성숙해져서 백인중심, 기득권중심적 페미니즘을 넘어서 이민자들, 동성애자들, 장애인들도 다 수용하는 페미니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고요. 그래서 여성학을 하면 후기 구조주의적인 주디스 버틀러를 읽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 텍스트들은 아주 어렵죠. 일반 여성의 문제와 연결되기에는 한참 거리가 있어요. 한국도 학내 여성학은 후기구조주의적 철학이 주도하는 쪽으로 흐르면서 사실상 현실싸움에 개입하기보다 상아탑에 머물게 된 편이고요.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대부분의 여성들은 신자유주의적인 주체로서 각자도생하는 삶을 개별적으로 개척해 살아야 했고요. 그 과정에서 ‘시민’이라는 주체로 형성된 여성들도 있지요. 이전 선배 페미니스트 세대와 달리 광장에서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고, 남성들의 섹시한 몸매에 대해 말하는 등 성적, 직업적으로 ‘엄숙주의’를 벗어던진 당당한 주체들이요. 그래서 오히려 정치에 관심을 가진 여성들은 페미니즘보다 김어준의 나꼼수를 들으면서 깨시민이 되어갔었지요. 자기계발과 개별화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는 이런 움직임이 페미니즘으로 나아가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직장 내에서 여성들끼리 연대해 일상에서 변화를 만들어갔어요. 여성에게만 주어지던 커피타고, 책상을 닦는 일을 대졸 사원, 고졸 사원 할 것 없이 손을 잡고 투쟁해서 제도를 바꿔 나갔지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에서는 나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바뀌었어요. 잘난 여성들을 ‘알파걸’로 부르는 때도 이때였지요. 여성이라는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시기였지만, 법과 규정 모두 그대로인 거죠. 낯선 존재를 키우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했지만, 가부장장적인 변태 근대국가는 내버려뒀어요. ‘끼어줄테니 살아남으라’라는 방식으로요. 양육강식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먹이사슬 제일 밑에 있던 거죠. 서지현 검사의 케이스가 대표적이라고 생각해요. 정의로운 검사가 되기 위해 살았지만, 처음 검사가 됐을 때부터 일상적인 성희롱을 당해야 했어요. 장례식장에서 술 취한 상사가 성추행을 했으나, 동석한 남성 동료들은 모른 체 했어요. ‘네가 아무리 잘나도 여자’라는 메시지를 준 거죠. 각자 생존하고, 성공을 향해 달려온 개별적 존재들은 단단함과 전문성을 갖춘 여성들이예요. 이 주체들이 자기 의지에 반해서 겪어야 했던 모든 행동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외치며 나오기 시작한 거죠. 이게 도도한 흐름의 시작이예요.”

-우리사회는 ‘알파걸’이 모든 면에서 남성을 능가한다며 추켜세웠지만 실제로 이 여성들은 여전히 일상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을 겪으며 ‘알파걸’이라는 신화 속에 갇혔던 것 같아요.

“나는 79년 유학에서 돌아와 대학에 섰는데 인류학자로서의 나의 관찰은 한국 대학에서 80, 90년대 대단히 능력있고 기고만장한 여성들을 대거 키워냈다는 점입니다. 60, 70년대 태어난 여성들은 사회의 축복을 받으며 탁월한 개인이자 시민이자 전문가로 성장했고 지금은 회사 사장부터 국회의원, 예술가와 사회적 기업과 마을의 코디네이터 등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나라가 그들을 키워내면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외국인 기업이 들어올 때도 이 여성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키우고자 했고 한국 기업에 들어간 여성들도 팀장이나 과장까지 무난히 승진을 하였지만 그 후부터는 가정을 희생시키거나 전력 투구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뛰어난 능력으로 차장까지 가도 그 때부터는 변두리로 돌게 하면서 더 이상 끌어주는 이가 없어집니다. 남자들 카르텔이 지배하면서 더 이상 시스템이 진화를 못하게 되지요. 군대식으로 달리는 장시간 노동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버티긴 하지만 사실상 오래 버티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도 탁월한 여성들을 활용하지 못하고 여전히 남자 패거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서 헬조선 상황으로 전락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90년대에 비해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이고 패거리의 폭력적 문화가 강화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라 생각합니다. 1차 근대의 시점을 지나 2차 근대로 진입한 대한민국이 순조롭게 ‘근대화’를 해가고자 한다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가능한 변신을 해내야 하는데 그것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나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80, 90년대 청년기를 지낸 여성들은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갖가지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에 시달리면서 국가발전에 이바지 하지도 못하게 된 편이지요. 남성중심적 체제에 빌붙지 않는 한 말이지요.”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인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81년부터 2013년까지 연세대 사회학과‧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일했다. 1983년 여성학자 조은, 조형과 함께 여성주의 동인 집단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여성운동을 펼쳤다. 1999년 서울 시립 청소년 직업 체험 센터인 ‘하자센터’를 만들어 새로운 대안교육을 제시했다. 제자들에게도 ‘교수님’ 대신 ‘조한’으로 불린다. 저서로 『한국의 여성과 남성』, 『탈식민지 시대의 글 읽기와 삶 읽기』,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자공공-우정과 환대의 마을살이』를 펴냈다. 최근 4년 만에 신작 『선망국의 시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안을 분석하고, 대전환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길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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