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도체 소녀”의 목숨은 누가 지켜줄까
[기고] “반도체 소녀”의 목숨은 누가 지켜줄까
  • 공유정옥 ‘반올림’ 자원활동가
  • 승인 2018.12.03 20:57
  • 수정 2018-12-08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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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도 회복도 불가능한 고통...
아픔을 예방하는 일 더욱 절실
여성 노동자들을 마주하고 싶다
지난 7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농성해제 문화제'에 참석한 반도체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왼쪽부터)씨, 공유정옥 반올림 간사, 한혜경씨 어머니 김시녀씨,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환호하고 있다. 반올림과 삼성전자 측이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에 대해 차후 제시될 중재안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기로 합의함에 따라 1023일째 지속되던 농성도 막을 내리게 됐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7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농성해제 문화제'에 참석한 반도체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왼쪽부터)씨, 공유정옥 반올림 간사, 한혜경씨 어머니 김시녀씨,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환호하고 있다. 반올림과 삼성전자 측이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에 대해 차후 제시될 중재안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기로 합의함에 따라 1023일째 지속되던 농성도 막을 내리게 됐다. ⓒ뉴시스·여성신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2007년 11월에 시작하여 만 11년째 활동하고 있다. 첨단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질병이 산재보험제도를 통해 공식 직업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기업과 정부가 응분의 책임을 다하도록, 노동자들이 건강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보자고 시작한 운동이다.

느리고 힘들었지만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정부와 법원을 통하여 수십 건의 공식 직업병 인정을 받았고, 첨단전자산업 작업환경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첨단전자산업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도 상당히 높아졌다.

특히 지난 11월 23일, 천일 넘는 노숙농성을 포함하여 6년을 끌어온 삼성전자와의 사회적 대화가 중재 합의를 통해 삼성의 공식 사과와 보상, 500억원의 예방기금 출연 약속에 이르자, 많은 이들이 ‘반올림 운동의 한 시기가 드디어 마무리되었다’고 반겼다. 그리고 또한 많은 이들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제 반올림의 계획이 무엇이냐고.

사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기 보다는, 11년 동안 해왔던 반올림 운동의 남은 숙제들을 마저 끝내야 하는 시점이기는 하다. 정부의 산재보상 문턱은 여전히 높고, 첨단전자산업 작업환경의 유해물질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으며,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안전과 건강을 챙길 힘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한가지, 다른 일보다 좀더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다. “예방”을 위하여 현장 노동자들과 더 많이 만나는 일이다. 특히 대부분 십대 후반에 취업하여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최근 어느 방송에서, 반올림 최초의 산재신청자이자 삼성과 정부에 맞서 11년 동안 투쟁의 구심에 서왔던 황상기씨는 이렇게 말했다. 딸 유미와 했던 약속을 지켰으나 정작 유미의 목숨은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많은 이들이 그 인터뷰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필자도 도리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만 스물 세 살을 채우지 못하고 숨진 유미씨를 비롯하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과, 생명은 유지하였으나 평생 통증과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안타까와서 울었다. 이들의 고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깊이 울었다.

보상도 회복도 불가능한 고통이기에, 그 아픔을 예방하는 일이 더욱 절실하다. 이제는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딸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딸들과 만나고 싶다. “꽃다운 나이에 가엾게 희생된” 반도체 소녀의 영정이 아니라, 자신의 일터를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한걸음 나서는 여성 노동자들을 마주하고 싶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여동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게 나서는 멋진 그녀들을 만나고 싶다. 병상에 누운 차가운 손이 아니라, 뜨겁고 힘이 가득한 그 손을 잡고 싶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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