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성으로 구분하는 제도 자체에 저항
젊은 부모들 성별 상관 없이 아이 취향 존중

봉태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아용 핑크 개량 한복을 입은 시하와 남아한복을 입은 시안이의 사진을 올렸다. ⓒ봉태규 인스타그램
봉태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아용 핑크 개량 한복을 입은 시하와 남아한복을 입은 시안이의 사진을 올렸다. ⓒ배우 봉태규 인스타그램

‘남·여 성별에 따른 옷차림을 강요하는 것은 성차별이다.’

최근 젊은 엄마, 아빠들을 중심으로 남아에게 치마를 입히는 등 성별과 관계 없이 아이의 취향에 따라 옷을 입히는 ‘젠더 플루이드’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또 성인들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패션 트렌드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란 사회에서 규정한 남성, 여성의 모습에서 탈피하자는 개념이다. 이는 인간을 성으로 구분하는 제도 자체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여성이 되고 싶은 남성과 남성처럼 보이고 싶은 여성과는 차이가 있다.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에 등장하는 봉태규의 아들 시하는 이러한 흐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슈돌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시하를 두고 ‘남자다, 여자다’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시하가 최근 커트로 머리를 자르기 전까지 항상 성별을 알 수 없는 단발머리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또 핑크색도 좋아하고 치마나 원피스 등 여아 옷을 입기도 했다.

지난 7월15일 방송된 슈돌에서 시하는 한복 대여점에서 핑크색 여아용 생활한복을 대여해 남아 한복을 입은 시안과 외출을 했다. 이에 이동국의 아들 시안이는 시하를 여자로 오해해 ‘나중에 결혼하자’고 고백하고 뽀뽀도 시도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시하가 남자인 것을 확인하고 충격에 빠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러나 방송 이후 시하의 여아 옷차림에 대해 일부 시청자의 비난이 제기되자 봉태규는 다음날 시하를 응원한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는 7월1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시하는 핑크색을 좋아하고 공주가 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저는 이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려 한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떤 기준이 아니라 시하의 행복이다”며 “참고로 저도 핑크색을 좋아하지만 애가 둘”이라고 글을 올렸다.

봉태규는 이에 앞서 5월20일에도 인스타그램에 노랑 치마에 퍼프소매가 있는 백설공주 드레스를 입은 시하의 모습을 ‘백설 공주얌. 예뻐라’란 글과 함께 올리기도 했다.

여아들에게 중성적인 느낌의 바지 만을 입히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남아에게 치마를 입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따가운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한다.

봉태규 외에도 젊은 엄마, 아빠들 사이에서 '남아라고 해서 파랑색 등 특정 색깔을 강요하거나 치마를 못 입게 하는 것은 오히려 성차별'이라며 치마를 입는 아들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원에 거주하는 이유진(34세)씨는 “만 3세인 아들이 예쁜 옷을 고르라고 하면 무조건 핑크색 원피스나 치마를 고른다”며 “아들의 옷에 대한 취향을 전적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성관념을 색깔이나 복장으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는 아빠가 되고 싶으면서도 치마를 좋아하고 핑크색을 좋아한다. 아이는 편견이 없는 상태이니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가 통념으로 여겼던 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언어적 구분이 차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여자, 남자로 구분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남자니깐 파란색’, ‘남자니깐 바지 입어야 돼’, ‘남자니깐 머리 짧아야지’ 등이나 ‘여자니까 치마 입자’, ‘여자는 핑크색, 빨간색’ 등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러한 아들의 취향에 대해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셨다고 덧붙였다.
또 유치원생 아들을 둔 엄마 A씨는 “아들이 화려한 색상의 치마를 원해 원하는 치마를 사줬다. 또 반짝거리는 구두도 원해서 같이 코디해 입혔다”며 아이의 취향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여아, 남아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젠더에 따른 전형화’ 현상으로 하나의 억압 중 하나이다. 아이는 점차 자라나면서 선택권이 없어지는 데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전형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사회 속에서 다양한 선택지를 비난하지 않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패션업계에서도 이 같은 젠더 플루이드 경향은 올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뉴욕 패션 위크'에서 패션디자이너협회(CFDA)는 유니섹스·논-바이너리(non-binary)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논-바이너리 역시 인간을 남자와 여자, 이렇게 이분법으로 나누던 전통적인 구분에 반기를 든 개념이다. 또 올해 신인 디자이너 발굴을 위한 ‘2018 LVMH 프라이즈’의 파이널 리스트의 반 이상이 성별 구분이 없는 옷을 만들었다.

국내 디자이너들도 젠더리스 컨셉트의 옷들을 내놓고 이 같은 해외 트렌드에 발맞추고 있다. 지난 10월18일 박윤수 디자이너는 ‘2019 봄·여름(S/S) 헤라서울패션위크’가 열리는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패션쇼를 통해 젠더리스 트렌치 코트와 품이 큰 코트를 전격 소개했다. 또한 박승건 디자이너도 지난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19 봄·여름S/S 런던 패션위크’에 젠더리스와 오버사이즈 옷들을 공개했다. 특히 최근 패션쇼에서는 남자인 지, 여자인 지 구분하기 힘든 모델들을 기용해 이 같은 젠더 플루이드 흐름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추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