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 29]

성희롱은 성폭력범죄로 처벌되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의 다양한 언동을 규율한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로 평가되지는 않지만 여전히 중대한 성희롱에 해당되는 사례들이 있을 수 있다. 검사의 불기소처분 또는 법원의 무죄판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성희롱으로 보아 징계 또는 징계에 준하는 조치를 내릴 수 있는 이유다.

강의에서 이런 설명을 하였더니 어느 수강자가 질문을 했다. ‘변호사님,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까지 내려진 거라면 이건 이미 한 번 조사가 끝났다는 이야기잖아요. 이렇게 다 끝난 내용을 가지고서 또 한 번 징계를 내린다면 이건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는 거 아닌가요?’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을 담고 있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누구든지 동일한 사실관계에 기하여 거듭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이른바 ‘일사부재리’ 또는 이중처벌 금지는 대한민국헌법 제13조 제1항이 명시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하지만 불기소처분 또는 무죄판결이 있었음에도 같은 사실관계에 대하여 징계 등 조치를 내리는 것이 이중처벌 금지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 조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처벌이 내려졌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도 물론 아니다.

대법원 입구에 서있는 정의의 여신상.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법원 입구에 서있는 정의의 여신상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선 첫 번째. 이중처벌 금지의 원칙은 ‘형사처벌’에 대해서 적용된다. 징계 등 조치는 형사처벌과 성격이 다르다.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별도로 징계 등 조치를 하는 것이 이중의 ‘처벌’이 되지는 않는다. 성폭력으로 파면된 사람에게 또 다시 유죄의 형사판결이 내려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중처벌 금지에 담겨 있는 기본적 원리나 정신 자체는 징계나 징계에 준하는 조치에 있어서도 준수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래서 이중처벌 금지와 유사하게 이중징계 금지의 원칙이라는 것도 보편적으로 인정된다. 징계에 있어서도 동일한 내용을 두고서 거듭해서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질문자도 바로 이런 부분을 찜찜해 하였던 것일 수 있겠다.

그렇더라도 걱정하기에는 이르다. 말 그대로 이중으로 징계한 것만 아니라면, 그러니까 하나의 행위사실에 대해서 한 번 징계를 했다가 시간이 지난 다음에 또 다시 징계를 하였던 것만 아니라면, 수사기관에서 조사된 사실관계에 대하여 기관 나름대로의 심의를 거쳐서 징계를 내리더라도 기본적인 법 원칙에 어긋나는 문제는 없다.

다만, 거듭된 징계는 금지되는 것이 맞다. 이미 징계를 한 번 내려서 집행하고 있던 중에 수사결과가 새로 나왔다고 해서 이를 이유로 또 다시 징계 등 조치를 내리는 것은 곤란하다. 그래서 사실 여부를 확정하기에 혹시라도 조금 불안한 점이 있다면 ‘일단 잘 모르겠지만 징계부터 내리고 보자.’라고 섣불리 결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비전문가로서 도저히 사실관계를 확정하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국가인권위원회나 수사기관 등의 전문적인 판단 결과를 기다린 이후에 차분히 심의하여 적정 조치를 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이 밖에도 이중징계 금지와 관련하여 실무현장에서 종종 자문요청이 들어오는 점이 있다. 동일한 사실관계를 근거로 삼아서 징계도 내리고 그 밖에 교육이수나 봉사활동 등의 의무도 함께 부과하게 되면 이것이 혹시 ‘이중의 징계’가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관해서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징계 이외에도 부수적으로 교육이수 등을 명할 수 있음을 정하는 규정상의 근거만 확실하다면 아무 문제없다.

한 번의 결정에서 징계와 그 밖의 조치가 함께 부과되었다면 이중징계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 최근의 실무관행 및 제반 규정사례에 비추어 볼 때, 기관 내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에서 징계위원회에 대한 징계요청과 그 밖의 부수의무 부과가 결정되고, 그 요청을 받아서 징계위원회가 징계 여부 및 그 양정에 관한 심의만을 다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이처럼 두 위원회에서 권한범위에 따라서 나누어 결정하더라도 이중징계의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연동된 하나의 절차 안에서 결정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설명해 보자면, 교육이수 등 별도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거듭된 불이익의 부과’가 아니라 조치의 ‘병과’에 해당한다. 근거가 마련되어 있는 이상, 조치의 병과는 금지되지 않는다. 이때는 이중의 불이익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가해사실의 정도에 비해서 전체적인 조치의 정도가 혹시 지나치게 무거운 것은 아닌지의 여부만 문제될 수 있다.

징계 등 조치를 결정함에 있어서 이중처벌의 문제를 고민할 이유는 없고, 이중징계의 문제도 여간해서는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유의해야 할 초점은 다른 데에 있다. 피해가 발생하였음에도 그 책임에 상응하지 못하는 경한 조치만이 내려지는 것, 특히 조치는 이미 내려졌는데 나중에 더 밝혀진 내용을 보니 그 피해의 정도가 조치 수준에 비해서 훨씬 심각한 것. 이럴 때는 이중징계 금지의 원칙이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한 번의 절차진행과 그에 따른 처분에서 적정한 결론이 내려질 수 있도록 신중함과 엄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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