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유다 /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작가 ⓒ이정실 사진기자
노유다 /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작가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울산에 내려왔다. 아동, 여성, 사회적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성폭력에 맞서 지역에서 상담 실무 활동을 해오신 여성운동 단체들의 합, 울산상담소 시설협의회에서 창립작인 『코끼리 가면』을 위한 대규모의 성폭력생존자말하기 북토크를 마련해 주신 까닭이다. 울산은 내가 겪은 친족 성폭력 사건의 주범이 태어난 공간이라 감회가 더 새롭다.

스스로 밝히자면 『코끼리 가면』은 2년 전 강남역 살인 사건 전후로 작업을 마무리해 2016년 가을 이맘때쯤 독립출판으로 출간된 한국문학이다. 2018년 초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미투 증언으로 한국 사회가 발칵 뒤집히기 전부터 ‘METOO 시리즈’ 첫 권이란 이름을 달고 한영 바이링궐 판으로 편집됐으나 그 물성이 더 작아져 한층 더 잊히기 쉬운 존재감을 갖게 됐다. 그런데도 어렵고도 무거운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를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목소리로 진단하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장을 만들어 주신 울산 페미니스트 동료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대개의 한국 여성들은 이미 ‘살아남은 자(Survivor)’들인데 내가 이런 과분한 애정을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올 한해 무명작가인 나도, 국내 최초의 퀴어 출판사 움직씨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혹자는 젠더 권력조차 가지지 못한 여성 퀴어의 커밍아웃은 엄청난 사회적 고립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라 규정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해군 간부 둘이 피해 생존자가 성소수자임을 빌미로 ‘교정 강간’을 행하고 군 법원이 이를 2심에서 무죄 선고해 범죄자 편을 드는 끔찍한 대한민국이 아닌가.

실제로 2015년 초 퀴어 페미니즘 출판사의 시작을 선언하면서 동성 배우자이자 공동대표인 낮잠과 함께 ‘내지른’ 커밍아웃은 출판단지의 하도급 노동자로 살며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던 우리를 그 일조차 할 수 없는 더 아슬아슬한 지형으로 내몰았다. 우리는 전문직 종사자에서 마치 설국열차의 꼬리 칸으로 내몰린 세계의 삼등 시민이 됐다.

‘도움을 주고 싶다’라는 따뜻하나 시혜적인 시선과 감각 안에서 한껏 방황했던 이유는 정말 그렇게라도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될 배타적인 장을 경험하며 독립과 생존이란 과제를 수행하려면 제대로 의지하는 법에 익숙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방황마저 상처 많은 인간이 부족한 인간으로 태어나 서로 교류하고 교감하며 돕는 관계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울산 북토크에서도 지지적인 눈빛들에 힘을 받을 즈음 의식적으로 ‘레즈비언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코끼리 가면』은 아동 여성폭력에 관한 페미니즘 서사인 동시에 레즈비언 존재를 가시화하는 퀴어 서사이기도 하며, 이는 결코 반으로 가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힘주어 전하고자 했다. 자리에는 기혼 페미니스트뿐 아니라 시청, 경찰청,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정부 부처나 기관에서 나온 분들도 있었기에 여러 불편이 표정에 스쳐 지나갔지만, 그 또한 잠시뿐임을 알고 있다. 일시적인 불편이라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너무 먼 타인의 존재를 굳이 인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우리에겐 더 많은 불편이 필요하다.

사실 얼마 전 움직씨 출판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 페미니즘 문화연구가의 대학신문 인터뷰를 비판한 일이 있다. 그가 최근 게이 작가들의 이름과 출간 도서를 정성껏 호명하며 이를 ‘자기민족지’로서의 퀴어서사 등장이라 명명하는 가운데 소위 ‘제도문학권’에서는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한 작가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여성 퀴어 당사자임을 밝힌 창작·제작자와 페미니스트 문화연구가 사이의 날카로운 논쟁은 많은 혼선을 일으켰다. ‘제도문학권’에도 여성 퀴어임을 커밍아웃한 작가가 있다는 것이 논쟁의 핵심은 결코 아니었다. 인터뷰에 임한 특정 연구자의 의제 설정(agenda setting)에 따라, 예컨대 ‘제도문화권’으로 논의에 대상을 한정하는 태도만으로도 1) 레즈비언 존재가 가려지는 것 2) 비주류 여성 퀴어 예술인들이 적극적으로 형성한 성소수자 문화 생산의 역사가 후발주자로 나선 주류 게이 생산자를 중심으로 교묘하게 선후 맥락을 뒤집어 인식될 때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했다. 이러한 문학사적 인식이 남성 중심적인 주류 문학을 부수고자 하는 ‘페미니즘 문화연구가’의 이름으로 무심코 자행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권력이 임의로 정한 경계를 해체하고 넘어서려는 페미니스트 존재만을 신뢰하며 그 신뢰를 통해 무지개 너머를 함께 볼 수 있다는 희망에 익숙해진다.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는 1980년 에세이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Compulsory Heterosexuality)」를 발표하며 레즈비언 비평에 활기를 부여했다. 한 지엽적인 인터뷰가 도발한 분노의 해시태그(#존재를지우지마세요)가 어떤 페미니즘 비평의 맹점을 공박한 촌극에 그치지 않고 주류 문학을 산산이 부수는 레즈비언 비평들의 태동을 자극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